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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14. 2020

엄마의 사랑이야기

워킹맘 다이어리

<블라인드러브>라는 사랑실험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인종과 직책 등 아무 것도 알지 못 한 채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며 사랑에 빠진다. 목소리만에 의지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마음에 드는 상대와 약혼을 한 후 서로의 얼굴을 공개한다.      

재밌었던 건, 여러커플이 이 과정을 통해 커플로 성사된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커플들은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커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커플이 하나 있었는데, 남자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날 사랑한다면 내가 무엇이든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눈물을 보였다. 자신도 자신을 사랑하기 벅차 보이는 불안정한 얼굴을 한 남자는, 결국 여자와 헤어지게 된다.      

나는 대학생 때 cc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헤어진 후 그는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했다.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커밍아웃을 하다니. 거기다 나와 cc였던 것을 모든 사람이 아는데 말이다.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인 동시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커밍아웃을 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그 후 나는 사춘기가 다시 온 것처럼 20대를 지냈다. 사랑에 대한 철학적사유 없이, 연애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어차피 사람은 100프로 알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으며, 연애를 일종의 실험처럼, 이 사람에게서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찾고, 또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해왔다. 버림받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는 방식으로,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랬다.      

조아를 낳고 키우며, 사랑의 의미를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전제로 본다면,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는 수동적 관점이 아닌 능동적 관점이 대입되어야 한다.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의 참뜻은, 사랑은 나라는 존재에서 비롯됨이다. 그래서 사랑은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잘 알아야, 나라는 존재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만나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다. 나라는 존재는 엄마와 아빠의 교집합 같은 존재인 셈이다. 엄마와 아빠도 각자의 존재가 그런 교집합의 존재이며, 창조는 집합과 집합의 교집합에서 일어나기에, 우리는 동시에 창조의 결정체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런 이치대로라면, 우리는 매일 사물과 생명, 문화와 사회, 관계와 의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무수한 집합과 집합을 연결하며 살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창조하며, 사랑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결정체다. 좋아하는 것들은 매일 나의 인생을 일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왜 나를 사랑하는지”라는 묻기보다 “왜 너를 사랑하는지”를 대답해주는 게 더 유의미하다. 우리 존재는 모두 태어나기로 결심한 존재들이며, 사랑하기로 결심한 존재이기에.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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