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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21. 2020

그냥 나

워킹맘 다이어리

어렸을 적부터 나의 꿈은 아빠와 함께 글을 쓰는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나는 합평 시간이 싫었다. 합평은 말 그대로 모두가 각자 써온 작품을 원을 그리고 앉아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수업이 끝나도 선후배들은 술자리에서 곧잘 합평을 이어갔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글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렇게 당연한 일들이 나에겐 매번 버거웠다.      

졸업 후 결국 작가 말고 다른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사회생활에서도 합평의 시간은 매일 나를 찾아왔다. 작품이 품은 의미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계획서를 제출하고 수정내역을 확인하고 결과물을 제출하는 합평의 시간 말이다.     

스물두 살에 처음 국회라는 곳에서 인턴비서로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사회에 나가 처음으로 한 일이 나보다 한참 어른을 보좌하는 일이라니.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여자아이에게 국회 앞마당은 너무나 넓었다.        

스피치라이터인 보좌관님의 업무보조 역할이 나의 주 업무였고, 블로그와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 채널을 관리하는 업무가 부 업무였다. 그곳에서 SNS라는 걸 처음 전담하게 되었고, 그때의 경력으로 지금까지 SNS홍보 업무를 해오고 있다.      

보좌관님이 항상 연설문이나 기자회견문을 뚝딱 10분 만에 쓰는 게 신기했다. 나한테 가끔 의원이 읽을 원고를 써오라고도 하셨는데, 10분 만에 쓰는 건 고사하고 34년의 세월을 점프하는 방법을 너무 알고 싶었다. 일하면 할수록 나의 자신감은 낮아졌다. 너무 쉬운 맞춤법과 정치용어들을 틀리거나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 할 때는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좋았다. 내가 찍은 사진과 글이 의원의 채널에 실리고, 내가 찍은 사진이 포털메인에 뜨는 게 재밌고 신기했다. 국회에서 일하며 좋았던 건 뉴스에만 일어나는 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것, 그리고 뉴스 밖에 채 실리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리고 싶은 이야기와 실제로 기사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달랐다.          

그 후 나는 시청 홍보과로 이직해 햇수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더이상 사회에서의 합평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결정적인 요인은 이곳에서의 일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최대의 역할값을 해내는 경험을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직장에서 정말 열심히 일해봤고, 또 그만큼의 성과를 내봤다. 그런데 그 후로도 내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극도의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겪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회사의 일이 좋았다. 매번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는 어렵지만, 홍보담당자로서 해내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여전히 유효한 의미로 내게 남는다.   

최근에는 회사의 브랜드가 아닌 나의 브랜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회사 일에 소홀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회사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의 브랜드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함’에서 나온다. 나의 고유함은 남들과는 다른 차이에서 온다. 설령 그 차이가 나의 단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현재를 쓸모 있게 살고,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일만큼이나, 내 삶의 족적을 쫓고, 그것의 의미를 재해석하며 재평가하는 일 또한 우리 개개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의 고유함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그것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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