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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an 25. 2021

선배, 잘 지내죠?

워킹맘다이어리

요즘 글을 쓴답시고 페이스북을 재개하니 한 선배에게 카톡이 왔다. 잘 지내느냐고. 이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전 직장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 직장을 그만둔 지는 햇수로 9년 정도가 됐다. 그런 선배의 페이스북 피드에 최서영이란 오래된 후배의 이름이 다시 뜬 거다. 그렇게 짤막하고 통상적인 안부를 시작으로 선배는 내게 만나자고 했다. 사실 아이를 키우느라,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모임을 자제하는 나지만, 연차를 내서라도 선배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선배를 만났다. 그것도 전 직장 앞에서. 약속 시간 5분 전, 횡단보도를 끼고 멀찌감치에서 전 직장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시끄럽던 스물두 살로 돌아갔다. 내 첫 직장, 크고 차가웠던 회색 건물은 더 반듯하고 커져 있었다. 회사건물은 옛날처럼 나를 무섭게 하고 떨리게 했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심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이 건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초심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아낼 것처럼 연약하고 유약했다. 솔직함이 무기라 하지만 나에겐 무력 그 자체였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지하철과 버스에 가득하던 퇴근길 사이에서, 회사건물을 사진 한 장에 담았다.       


도착한 곳에는 선배 말고도 한 명의 선배가 더 있었다.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서먹하고 어색해 괜히 고개를 떨구고, 입안에 든 밥알을 조용히 오래 씹었다. 선배들의 모습은 그때처럼 젠틀하고, 보다 카리스마 있었다. 선배들은 지금의 내 직장생활이 어떤지, 아이는 잘 크는지, 아이는 어떻게 하고 온거냐 등을 물었다. 나는 잘 살고있다, 다 괜찮다 답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책들이며,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들을 선배들 앞에서 펼쳐 보였다. 마치 ‘선배님들 보세요. 저 이렇게 컸어요’라고 숙제 검사를 받는 자세로 주저리 떠들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왜 계속 다니냐.” 선배가 또 질문했다. 나는 바로 대답 못 하고 조금 머뭇거렸다. 솔직히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만큼 당황하고 횡설수설이었다. 선배들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질문을 다시 내게 해보았다. 솔직한 마음이니 술술 나왔다. 첫째는 이 직장이 익숙해서, 둘째는 아이를 케어하기 적절한 환경이어서, 셋째는 내가 그동안 만든 실적이 아까워서, 넷째는 이 직장과 도시가 주는 안정감이 마음에 들어서, 다섯째는 유정한 동료들 때문이다. 더 이유를 댈 수 있는데 생각이 멈칫해지는 것은, 유정한 동료들의 얼굴이 스치기 때문이었고, 나는 눈물 한 방울이 찔끔 고였다.      

유정한 동료들이라니. 내가 생각한 말이지만 가슴이 저릿하면서 웅장해졌다. 그러면서 오늘 만난 선배들의 얼굴도 또렷해졌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선배들과 쌓은 추억 말이다. 불 꺼진 복도에서 장우산을 들고 선배가 퇴근하길 기다리던 날, 치맥을 먹던 날, 취해서 선배 차에 토를 했던 날, 같이 로텐더홀에서 쭈그려 자던 날, 매일 갔던 카페와 자몽에이드, 전부 다 어제 일처럼 또렷해지는 것이었다. 선배는 기억도 못 하겠지? 다시 마음이 오그라들다가도, 주머니 속에 택시 타고 가라고 선배가 찔러둔 지폐가 내게 말해주었다. 네가 못 하는 기억을 지금쯤 선배는 떠올리고 있을 거라고. 선배도 너를 보고 싶어 만난 거라고.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행동과 말들이 그때는 몰랐지만, 삶의 순간순간에 찾아와 내 인생의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만난 유정한 동료들의 얼굴이. 지금처럼 삶의 순간순간 찾아와 뭉클한 마음을 안겨줄 당신들의 얼굴이. 맙소사 9년 근속이라니. 나는 그들이 있어 회사를 사랑했고 일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있어 가능했던 시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열어 연락처를 열어보았다. 소심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잘 못 챙기는 성격탓을 하며 짧은 안부조차 안 하는 인간이 나다. 그 몰염치함이 오늘 유난히 싫다. 이참이다 싶어 “송구하지만~ 송구합니다”라고 끝나는 안부 문자를 보냈다. 수상한 용건 있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 아니, 이건 정말 수상한 용건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되는 비문으로 사이로 진심을 보낸다. 선배, 잘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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