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이들의 '도전적 행동'에 긍정의 마인드 갖기!

by 북울림


여러분,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의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여덞단어』박웅현. 북하우스. p.116



“오늘 비 와요, 선생님. ○○이 또 예민하겠네요.”


교실 앞에서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창문을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침부터 좀 달라요. 눈빛이요.”


창밖으론 빗소리가 규칙 없이 들렸다.
창문을 치는 소리, 복도 천장의 물방울 소리, 축축한 냄새.
아이들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한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책상 밑으로 들어갔고,
다른 아이는 커튼을 잡아당겼다 놓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조차, 갑자기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면 늘 그렇다.
습한 공기, 낯선 소리,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아이들의 반응은 커진다.


한 학생이 책상을 밀쳤다.
다른 한 학생이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점프를 했다.

또 다른 아이는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특수교사라면 익숙해진다고들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올해 들어 피로감이 달랐다.
같은 행동인데도 예전보다 더 버겁게 느껴졌고, 웃음도 줄어들었다.
무언가 단단히 막혀 있는 기분이었다.
수업 준비보다, 교실 복도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행정실에서 마주친 동학년 교사가 물었다.
“그 아이는 왜 자꾸 그래요? 수업할 때 갑자기 소리 지르니까 다 놀라요.”
“… 음… 글쎄요, 요즘 좀 예민하긴 해서요.”
나는 얼버무렸다.
사실, 나도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 행동 기록지를 다시 꺼내 읽었다.
최근 들어 자해 행동이 늘었고, 수업 중 이탈 시도도 반복되고 있었다.
기록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행동 그 자체보다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눈이 갔다.


‘쉬는 시간에 반 친구가 등을 툭 쳤다.’
‘화장실에서 자동 손건조기 소리에 놀랐다.’
‘식사 중 반찬이 섞였다.’


도전적 행동은 그 자체로 이해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건 그 아이가 감각 과부하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 꺼내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요청이고, 때로는 저항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그냥 ‘문제 행동’이라고만 분류했다.

그날부터 내가 먼저 바꾼 건 표정과 말투였다.


“하지 마.” 대신 “무섭구나.”

“그만해.” 대신 “싫었구나.”


반응은 없었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울음의 지속 시간이 줄었고, 도망가는 횟수도 적어졌다.
어쩌면, 이 아이도 나를 관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뛰고, 울고, 던진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제 나는 덜 지친다는 사실이다.
예전보다 아이의 행동을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조금씩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명심하기 위해서 교실 앞에 포스트잇 하나를 붙였다.
<이 행동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도전적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라는 말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외면하면, 교실은 점점 더 지옥처럼 변한다.
그러니 교사가 먼저 시선을 바꿔야 견딜 수 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다’는 말에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긍정의 마인드’란 게 대단한 철학은 아니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일.
그게 전부였다.


오늘도 곁눈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내가 오늘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다 찾아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