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피해갈 수 없는 여름의 햇빛처럼 서로에게 이끌리는 두 청년의 환한 사랑을 다룬다.
독특하게도 원작 소설과 영화에서 묘사되는 이들의 성애는 두 사람이 실제로 육체적 접촉을 하는 장면보다 주인공 엘리오가 혼자 있을 때 상상을 하거나 성적 긴장감을 느끼는 대목에서 더 관능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된다. 엘리오가 자신의 공간에서 살구를 가지고 자위를 하는 장면이 그 중 하나다.
엘리오의 과수원에서 나는 살구는 유난히 영글고 과육이 풍부한, 그래서 그 자체로 넘치는 생명력을 품고 있는 대상이다. 침대에 누운 엘리오가 손에 쥔 묵직한 살구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 우리는 그의 시점에 따라 이 과일의 모양에 주목한다. 살구는 많은 과일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던 꼭지 부분이 움푹 파여 있을 뿐만 아니라, 원형의 과육을 가로질러 새겨진 듯한 선에 의해 특유의 실루엣이 굴곡져 있다. 인간의 둔부를 연상하게 하는 이 과일을 보며 엘리오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는 엉덩이를 상상한다. 소꿉친구지만 이제는 함께 성적 유희를 나눌 줄 알게 된 마르치아의 엉덩이와 매일 밤 그토록 간절히 탐하고 싶었던 올리버의 엉덩이. 두 사람의 신체는 하나의 살구 위에 포개어져 엘리오의 몸과 하나가 될 준비를 마쳤다. 그는 선택해야 한다.
마르치아인가 올리버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혹은 둘 다인가.
기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살구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는 대개 4월 5일 경이다. 절기상으로 청명과 한식을 지나는 완연한 봄의 한가운데 살구꽃이 피어난다. 옛날 술집에서는 살구나무를 심어 꽃구경을 나온 선비들을 불러들였고, 이는 술집을 일컫는 다른 말인 행화촌(杏花村)의 유래가 되었다. 유교 전통에서 풍류와 쾌락을 상징한 살구가 지구 반대편의 지중해 근처에서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그것은 살구라는 과일의 본래적 속성, 모양과 맛과 향이 인간의 감각을 통해 불러일으키는 보편적인 심상을 반영하는 것 같다.
언제 어디에서나 인간은 은밀한 욕망을 자기 안에 품고 그것을 또 다른 대상에 투영하며 감추거나 부정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우회를 통해 오히려 인간은 자신이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실에 도달한다. 씨를 발라낸 살구가 녹진한 과즙을 뚝뚝 흘리며 엘리오의 바지 속으로 미끄러지듯 천천히 들어갈 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는 방식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가 아닐까. 모호하게 바라보다 확신 없이 다가가서 끝내 확인하게 되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질문에, 진정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본질에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것. 그렇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내면의 욕망을 탐구하는 모든 이들을 한여름의 밝은 햇살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