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보라색이라 부르지 못한 마음

by 보라

봄이 왔다.

벚꽃은 망설임도 없이 만개했고,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환해졌다.


봄날이 유난히 고운 날이면,

가끔은 그 아름다움이

조금 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이 아직

계절을 따라가지 못해서일까.


그날, 우연히

나태주 시인의 '서러운 봄날'을 읽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순간,

며칠 전 내가 쓴 글에 남겨진 한 문장이

불쑥 떠올랐다.


봄이 서러운 것은
마음이 봄빛을 따라가지 못함인가요?


이 문장을 남겨주신 그분이 떠올랐다.

내 마음 어딘가에 고여 있던 밑줄처럼.


나는 존경하는

Morpheus 작가님의 공간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여러 번의 망설임 끝에

하얀 댓글 창을 채워 나갔다.


삼키려 했던 말들이 그날은 조금씩 밖으로 나왔다.

"작가님, 오늘은 제 마음을 먼저 건네고 싶습니다."


며칠 전 내 글에 남겨주신 문장을 떠올리며,

텅 빈 마음과 서러운 봄의 풍경을 조심스레 건넸다.


아직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였다.


작가님의 답글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서 도착했다.

그 안에는

떠나간 누님과,

먼 하늘만 바라보게 된

또 다른 누님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분의 문장 속에서 목련은

더 이상 봄꽃이 아니었다.


그리움이었고,

기억이었고,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어떤 시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글 앞에 머물렀다.

내 마음이 작아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무게의 슬픔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작가님은 내 마음을 '자목련'이라 불러주었다.

보라색 목련이라 하지 않고

굳이 한자로 남겨둔 그 이름.


답글을 달기 위해 커서를 가져다 대었으나,

이내 멈추었다.


무언가를 더 보태는 순간,

이 고요한 울림이 흐려질 것 같았다.

건네진 마음과 그에 대한 응답,

그리고 그 사이에 남겨진 여운까지.


벚꽃은 지고,

목련의 빛도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서러운 봄을 지나겠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작가님께 이 글의 허락을 구하며 느꼈던 떨림과

조심스러움까지도 나의 봄이었고,


마음이 닿는다는 것은

많이 말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결을 알아보고

그 곁에 잠시 머물러 주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더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그날의 문장들은

아직도 조용히 이어져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러나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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