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일기_01
문득 바라본 창문 밖에는 어느덧 가을이 한창이었다. 나의 생일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발갛고 윤기 나는 홍시가 시장의 매대를 채우고, 알록달록하지만 전혀 유치하지 않게 - 약간은 탁한 가을만의 필터가 씌워진 잎사귀들이 여기저기서 운치를 뽐내는 계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을.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품에 안고, 곧 세상 빛을 보게 될 아이를 또 배에 품고 정신없이 하루를 달리다 보니, 창 밖을 감상할 여유는 사치가 되었다. 사치일 뿐 아니라, 나아가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환절기마다 감기와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식구들을 챙기고, 옷장 안에 계절에 맞는 옷들이 걸리도록 한바탕 뒤집어엎고, 집안의 온습도가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에어컨, 보일러, 가습기 따위를 수시로 켜고 끄며 부지런을 떨다 보면 새로운 계절을 음미할 틈도 없이 다음 계절이 성큼 다가온다. 그럼 또다시 일련의 과업들을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움으로 꽉 찬 마음이 무겁다.
이쯤 생각하면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이 들 법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딱히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정취를 즐기는 낙을 잃었고,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책임들에 시달리고 있지만, 계절을 대신하는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 내 삶에 주어졌고, 그것을 따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낙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자녀의 성장. 누에고치처럼 누워만 지내던 신생아 시기를 지나, 뒤집고, 되집고, 기고, 서며 때를 따라 점차 성장해 나가는 아이를 보는 낙은, 이것을 위해 무엇을 잃고 놓쳤는지 떠올릴 틈을 주지 않고 쉼 없이 내 안에 행복을 불어넣는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를 따라 철새처럼 떠날 채비를 한다. 이러다 조만간에는 하얗게 쏟아지는 눈을 타고 겨울이 오겠지.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한껏 들떠 폴짝폴짝 뛰어다닐, 작은 조랭이떡 같은 내 아가를 떠올린다. 상상 속 풍경만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한껏 행복한 숨을 들이마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풍경,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 그 위에 자리 잡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무엇이 된 너.
나는 그런 너의 엄마인 것이 좋아. 아가야, 엄마는, 엄마라서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