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벼락 Oct 29. 2024

[덕터뷰] 과학자가 화가가 되면 이렇습니다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잘 지냈어? 나 이번에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작가님 덕질하고 왔거든. 썸네일에서 이미 봤겠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맞아. 서유영 작가님이야! 우리 서최애로 말할 것 같으면, 계약하는 시점부터 '아 이 사람은 찐이다!'라고 느끼게 해 준 작가님 중 한 분이야. 정갈하게 온 메일과 정확한 질문들을 보면서 '친해지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었거든. 그 동안 나 혼자 내 맘 속의 멋진 언니로 고이고이 모시고 있었다가 드디어 밥도 같이 먹고 차도 한 잔 하면서 성덕이 될 기회를 잡았지! 법인카드의 은혜로 우하하하하 (+_+)


사실 이 날 내 몸이 정말 안 좋았어(ㅠ_ㅠ) 약속 전 날 저녁 9시부터 39도가 넘는 고열이 시작됐는데 약속을 변경하기에는 너무 늦은거야. 그 다음날 아침까지 온갖 해열진통제를 교차복용하면서 컨디션 끌어올려서 나갔지. 33도에 육박하는 8월 말이었는데도 날에도 긴 후드집업을 입고 약빨로 고속터미널까지 기어갔는데 말 그대로 눈 앞이 하얗게 되면서 혼절할 뻔했지 뭐야(@_@) 그치만 내 최애의 뿜어져나오는 긍정에너지 덕분에 인터뷰 하는 동안에는 정말 신기하리만치 상태가 좋았다? ^ㅡ^*


너에게도 우리 서최애의 긍정에너지가 닿길 바라며, 시작해볼게! ^ㅁ^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서유영 편



초파리와 균을 키우다 그림 그리게 된 썰


내향인임을 호소하는 모태이과 우수생
본인이 알고보면 내향인 성향이 많다고 주장하는 서최애의 수줍은 손


많은 E들은 말하지. 자기는 I인 것 같다고. 그런데 I들은 절대 의심하지 않는대. 본인이 E라고. 누가봐도 E인 서최애는 요즘 MBTI를 할 때 I가 나와서 놀랐다고 하더라고! ㅇㅁㅇ! 나 서최애랑 같은 MBTI를 가지고 있는데 나도 가끔 내가 I성향이 되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쵸? 우리 혼자 있는 시간 되게 중요하잖아요? 책도 좋아하잖아요 그쵸? 둘이서 짝짜꿍이 맞아가는데 함께 자리한 다른 멤버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지.


그런데 내 최애와 나는 아주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가 있어. 서최애는 모태이과에 아주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학생이었고 나는 물포자(수학은 포기 안했어! 물리만...) 문과에 어중간한 학생이었다는 거. 많은 작가님들이 회화과나 디자인과를 나와서 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서최애의 길은 시작이 달라.


서최애: 실험실에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돌아오는 삶을 살았어요. 연구실 생활은 정말 밤 낮이 없어요. 저는 또 생물을 키워서 실험을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걔(실험체)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서 주말에도 출근해서 걔네 밥 먹이고 그랬어요.

엘덕후: 누구요? 뭘 먹인다구요?

서최애: 초파리랑 균 키웠거든요. 쥐는 센터에서 키워주는데 균이랑 초파리는 안 키워줘요. 그래서 그런 건 실험자들이 직접 키워야 돼요.


자, 잠깐... 내가 뭘 들은거지? ㅇ_ㅇ??



과학처럼 미술을 대하다 보면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내 최애는 여러 균을 직접 키워서+_+? 멸균 초파리한테 먹이고+_+? 하루에 500마리 정도의 초파리를 해부하면서+_+? 우리 몸에서 어떤 균이 왜 이롭게/해롭게 작용하는지-ㅁ-? 를 연구하는 뼈이과였대! (나의 이해는 문송하지만 여기까지야. 더 기대하지 말아줘.)


엘덕후: 듣다보니까 과학 그만두시고 미술 하신 게 오히려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서최애: 그런데 과학이랑 미술은 너무 연관성이 높아요. 과학이랑 미술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요? 실험을 설계하고, 예상하고, 결과값을 도출하는 과정들이 많이 비슷해요. 실험의 방법도 천차만별인데, 실험 자체도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값을 얻을까'를 고민하는 거거든요. 미술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철학을 잘 표현해서 설득시키고 이해를 도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예요.


전시를 오며가며 서최애랑 대화한 적이 두 세 번 있었는데, 그림을 올릴 때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어. 모래도 써보고, 밧줄도 써보고 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여기서 나오는 거구나 했지! 그러면서 정말 유치하지만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쭤봤어!


엘덕후: 작가님과 처음 대면한 날 마띠에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게 뭔가 찾아보니까 입체감 있는 작업 방식을 부르는 것이더라구요. 그 단어를 배운 후에 여러 전시를 통해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마띠에르가 뭔지 조금 더 유심히 보다보니, 정말 작가님 작업은 두께가 엄청나더라고요. '작품이 꽤 무겁겠어요?'하고 여쭤봤더니 맞다고, 무게가 있는 편이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나요.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여러 덧을 올리다보면 뒤에 깔린 색깔들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서 오는 허탈함은 없으신가요?

서최애: 제가 작품의 밀도감을 높이려고 노력을 엄청 하는데, 색을 쌓아가면서 밑에서부터 은은하게 사아아악 올라오는 그런 내공이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선생님들 그림을 보면 그 사아아아아악 올라오는 게 있는데 저도 그런 포인트를 보여드리려고 엄청 애쓰는 중이에요.


속에 깔린 재료나 물감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청순한 뇌가 상당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어 히히히히히히히히. 그래도 용기내어 물어보길 잘했어. 우리가 서최애의 작품에서 보는 다양한 색깔과 질감들이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의 오묘한 조합이라는 걸 알게 된 거잖아! 나의 무식한 질문을 통해 너네가 작품을 더 가까이서 볼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부끄러움이야 뭐 *>ㅁ<*


멀리서 보면 연분홍이지만 우리가 보는 연분홍 뒤에 얼마나 많은 색이 깔려있는지 한 번 봐봐! 아리랑 51, 53.0ⅹ45.5cm, Mixed Media on Canvas, 2


귀찮아도 다시 보자!
공부를 무지무지 잘 했다는 서최애는 말도 참 조리있게 해~ 넋 놓고 듣는 내 모습!


내 최애가 이렇게 색을 사---악 올라오게 하기 위해 여러 단계의 공을 들이면서도 아직도 해결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두고 보기'래. 더 깊은 색을 나게 하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그림을 묵혀서 두고 봐야 하는데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잘 안 된다는 거야.


서최애: 어떤 선생님들은 저한테 한 번 그려놨다가 몇 개월만 저어기 처박아놓으라고도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게 안 되는거에요. 끝이 왔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냥 그 자리에서 색 입히고 계속 덧칠을 하고 이렇게 되더라구요. 내공이 입혀지려면 몇 년까지도 묵혀 두고도 다시 꺼내서 보는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건 제가 선생님 소리 들을 때나 가능할까 싶어요.

엘덕후: 색을 작가님이 원하는 대로 올리려면 멀리서 지켜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걸 몇 시간은 해 도 몇 날 며칠은 어렵다는거죠?

서최애: 네, 전 더 늙어야 될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려고 하잖아요. 늘 마음이 급해요. 그래도 요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귀찮아도 다시 보자." 이거 한 번 더 하면 좋아질 걸 알지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3~4일 정도 걸릴 걸 뻔히 아니까 계속 주저하게 되는 저에게 정신 차리고 말하는 거죠. 저는 10호를 한 달에 네 점 밖에 못해요. 그러다보면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빨리 끝내고 싶어지죠. 매 해 작품 리스트를 정리하면 작품 수가 줄어들어요. 한 작품에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되니까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데 '다시 보기'까지 하다 보니 작품 수가 줄어든다는 내 최애.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한 작품이 가진 내공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지금도 참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인데 더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다는 건 서최애가 정말 멋진 작가를 넘어서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서유영의 작가노트



인간은 농경 생활의 시작과 함께 한 곳에 정착하여 집을 짓고 살았다. 그 곳은 나와 나의 가족들이 함께 부대끼며 겪는 기쁨과 슬픔, 성장과 배움, 고민과 갈등 등 나의 모든 역사가 담겨 있는 공간이다. 즉, 집은 그 곳에 사는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아지트인 것이다. 따라서 집 안을 들여다보면 그의 가치관과 문화를 알 수 있고, 은밀한 내면 세계까지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의미를 바탕으로 본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은 특정 가치관과 자아를 지닌 개개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여럿과 서로 관계를 이루며 더불어 함께 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 존재 의미를 갖는다. 사람과 사람들 간의 관계는 서로 뜻이 잘 맞아서 순탄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가치관 차이로 혹은 이해관계가 달라서 얽히고 꼬여 있기도 하다. 뒤엉킨 실 뭉치처럼 어렵게 얽히고 꼬여 있는 관계는 서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끈을 무조건 싹둑 자르기보다는 잘 풀어가려고 대화도 해보고, 타인에게 도움도 청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아름다운 사회는 사람들과의 배려와 존중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가 다양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집의 색과 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캔버스는 우리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이라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살아가기에 그리 만만치 않기에 캔버스에 부정형의 마띠에르를 만들어서 집 하나를 그리더라도 결코 쉽게 그려지지 않도록 하였다. 현재와 같은 마띠에르를 만들기 위해 종이와 모래, 물감을 사용하는데, 이면지를 캔버스에 붙이면 종이가 울면서 생기는 주름 위에 모래와 물감을 일정 비율로 섞어 나이프를 이용하여 얇게 여러 겹 쌓아올린다. 어떤 작품에는 실과 로프를 사용하여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보다 시각적이고 운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감하고 소통하여 서로 닮아가고 스며드는 사회적 존재의 모습을 색채의 그라데이션으로 나타낸다.


행복한 삶이 더 이상 나에게서 느껴지지 않을 때, 관계로 인한 피곤하고 지친 삶에 본인의 작품으로 힘을 주고 싶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 외롭고 힘들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선물하고 싶다. 보다 나은 관계 맺기를 꿈꾸며, 개개인으로 표현되는 집으로 희로애락이 담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작업에 담아보고자 한다.  

이전 05화 [덕터뷰] 수많은 꽃잎이 달린 저 연꽃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