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를 대하며-‘고귀한, 세상의 모든 닭에게’

by BRG

<어느 양계장, A와 B의 대화>

A: 이것 좀 봐! 먹을 것 천지야. 이곳은 천국?

B: 누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먹을 걸 주겠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봐라.

A: 생각? 닭 대가리라는 말도 못 들어봤냐?

B: 어쨌든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어쩌면 병아리 시절..그러니까 병아리 대가리였던 때가 좋았는지도 몰라.

A: 나는 여기가 좋아. 비좁긴 하지만 힘들게 먹이를 찾아다닐 필요도, 고양이나 들개 같이 날 귀찮게 하는 놈들도 없고 말이야. 이따금씩 자리에서 일어나 빙글빙글 돌면 답답함도 잊게 돼. 애초에 날 수도 없는 날개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는데...아이고 어지러워라..

B: 그만 좀 돌아, 나까지 어지러우니까. 문제는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삶이 지속될 수 있느냐야. 모두가 언제까지 여기에 있게 될까?

A: 불과 몇 초 전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해? 너 정말 멍청하다. 즐겨!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먹고, 자고.


<몇 주 뒤>


B: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 바람 소리...아니 음악 소리인 것 같기도...우린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분명 이렇게 살면 안 돼.

A: 어울린다는 게 뭐야? 날지도 못하는 게 그래도 새라고...어디 태평양이라도 건너겠다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게 뭐가 어떻다고...생각하지마, 제발 심각해지지 마. 날이 갈수록 살이 오르잖아. 배 부르고 등도 따시고.. 난 이걸로 됐어. 충분해.

이것 봐!...분명 아까 먹었는데...또 채워주고 있어! 너, 배가 고파 객사하는 불쌍한 동물들 얘기도 못 들어봤냐? 배부른 소리하지마.


<며 칠 뒤>


B: A, 너 너무 살찐 거 아냐? 며칠 새 내 두 배가 된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어제 웬 남자들이 C를 데리고 나갔는데 어디로 간 걸까?

A: 그러니까 마음의 소리니, 음악 소리니 하는 헛소리 좀 집어치우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여봐. 매일 같이 나오는 방송을 들어보란 말이야. 먹고 자라. 자고 나면 먹어라. 이 얼마나 간단하고 명쾌해? 그리고 가장 잘 먹고 잘 자는 닭은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지 않아? 거긴 아마 더 넓고 더 쾌적하겠지. C가 우리 구역에선 최고로 살찐 닭이었잖아. 분명 좋은 보상이 있었을 거야. 너도 생각 좀 그만하고 먹고 자기나 해.


<일주일 뒤>

A: 어이, B! 먹지도 않고 날마다 수척해가지고는...그런데 눈은 어딜 그렇게 쏘아보는 거야? 난...살이 너무 쪘나 그나마 파닥거리기라도 했던 날개가 이제는 들어 올리기 조차 벅차고, 답답해도 옴짝달싹 못 하겠다고! 똑바로 디디고 서 있기도 힘겨워!

B: 난... 날마다 여위어 가는데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맑아. 그리고 그 소리... 대나무 소리가 들려. 갇힌 신세지만 꿈속에서 만은 끝도 없는 대나무 숲을 훨훨 날아다녀. 그리고 확신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분명 여기가 아니라고...

A: 아이고 또 저 헛소리네. 앗, 남자들이 온다. 이번엔 내가 뽑히게 될까? B! 그들이 나에게 와! 너도 그만 정신 차리고 나처럼 살이나 찌워, 그러면 나처럼 좋은 날이 올 거... 악!



A는 지금 내 접시에 놓여있다. 엄밀히 말하면 가슴 부위는 내 접시에, 다리는 어느 육류코너에서 정체불명의 닭다리들과 뒤섞여 팔려 나가길 기다리고 있겠지. 발은 발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내장까지 야무지게 발려 각기 제 갈 길을 갈 게다. 몇몇 병든 닭들은 숨통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랜더링(rendering) 기계에 갈렸다. B는 야윈 몸이었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살처분될 운명은 피했다. 함량 미달 닭들은 대개 ‘영계’로 포장되어 목이 잘린 채 팔려 나갔다. 그러나 B는 기어이 자신의 운명을 그들에게 내어주기를 거부하고 굶어 죽기를 선택했다. 그는 땅에 묻혔고 영혼은, 그의 선조들이 마음껏 뛰놀던 대나무 숲에 가 있다.

그러면 나는 A의 삶이 헛되다 말할 수 있을까?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Cage Free’, ‘Organic’ 딱지는 못 붙였지만 A에게서 도려 낸 가슴살은 지방 덩어리인 인간이 죄책감 없이 배를 채우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뜬금없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지어낸 이유가 있다. 내가 바로 밀식 사육장의 닭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지은 닭장’에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먹고 또 먹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 영혼을 팔고, 먹으면서 시간을 대충 때우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고 나면 남는 건, 덕지덕지 자리 잡은 셀룰라이트와 쾡한 눈뿐이었다.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느냐 묻는다면, 글쎄 간단히 말해 삶이 너무 평온해졌달까. 날마다 치열하게 해치워야 하는 일들이 없었다고 하면? 예고 없는 인생, 불쑥 찾아들던 불행의 그림자도 하필(?) 그때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불행은 끔찍하지만 적어도 인간에게 절실함을 안겨준다. 나는 그때 어떠한 절실함도 없었다.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서 나는 행과 불행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었던 것 같다. TV에서 떠드는 것처럼 나는 도파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건 지도 몰랐다.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하면 무기력하고 우울할 수 있다나. 그러나 사실 내가 앓고 있던 건 ‘무기력증’이라는 그럴듯한 병명으로 포장된 게으름이었다. 게으름은 중독 밖에는 낳을 것이 없다. 도무지 살아나지 않는 삶에 대한 전투적 의지. 먹는 일로 위로받는 삶. 내가 만약 신앙이 없었더라면 얼마간 나를 그 닭장 안에 방치해 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닭장에 앉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냐..’

닭이 있어야 할 곳이 접시 위인지 대나무 숲 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인 내가 닭장에서 나와야 함은 자명했다. 양계장(養鷄場)을 박차고 나와 양계(陽界)로 향하는 길, 나는 애써 축적한 지방을 태우기로 작정했다. 그러려면 먼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운동기구에 힘겹게 몸을 앉혀야 했다. 억지로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신기하게도 몸보다는 머리가 가벼워졌다. 그리고 식탁에 올린 닭 가슴살.


식탁에 앉아 A를 대하며 말한다. 누가 너를 비난하는가? 아낌없이 주고 간 너를... 네가 대책 없이 찌운 살은 나에게 와 단백질이 되어 주었다. 걸핏하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을 들먹이며 금수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인간들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오늘 누구에게 무엇이 되어 주었느냐? 어쨌든 A를 대하며 나는 부끄럽다. 고귀한, 세상의 모든 닭 앞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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