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찬식사

[프롤로그] 먹고, 사는 일

by 보람찬








제주라는 이름의 작은 섬으로 작업실을 옮긴 지 햇수로 벌써 어언 4년 차.
나의 작업실에 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 중 하나는

‘제주살이 어떠세요?’.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이 좋아 보이는 제주의 삶에도 매 순간 풍파는 가득하고
기쁜 일, 슬픈 일은 늘 종이 한 겹 같은 차이로 서로를 바짝 추격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아직 제주를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되돌려 놓는 힘’ 때문이다.
해 질 녘 걸어 나간 바다의 하늘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든 여름의 저녁,
진하게 눈 내린 깊은 숲 한가운데를 신나게 달렸던 겨울의 아침.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닐 이 슬픔과 화를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이 아름다운 섬이 가진 자연이었다.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처음의 방향으로 조금 더 쉽게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
더 긍정적이고, 별거 아니고, 진지해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힘.

그렇게 힘을 얻으면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육지에서 누리던 편리함이 조금은 부족한 섬의 생활이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작업실 밖을 잘 안 나가는 나는 내 공간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무엇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큰 행복 중 하나이다.
비록 요리 전문가가 아니기에 도통 제대로 만들어 먹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 누군가가 주신 것, 아까 장 본 것, 누구의 집에나 다 있는
흔하고 별거 아닌 재료로 마음껏 만들어 먹는 그런 것이 즐겁다.

물론 다행히도 내 곁엔 그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하고.
가끔 이 행복함도 언젠가는 깨지고 사라지겠지라는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지금 나는 충분히 넘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참 감사하다.

오늘도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중요한, 먹고사는 것을 고민해본다.
저녁은 뭐 먹을까, 라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오후에 천천히 메뉴를 정하고
‘모두들도 보람차고 힘이 되는 식사 하시길!’ 하며 슬그머니 바라고 나니
어느새 작업실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너무 예뻐서
잘 쓰지도 못하는 이 짧은 글을 쓰느라 받은 스트레스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