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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가장 어렵더라

by 봉남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이 간극은 내 인생 가장 괴로운 난제다.


9월이면 복직을 할 줄 알았다. 2월에 감축으로 학교 옮길 뻔했는데 어쩌다 그대로 남게 됐고, 감축전보 쓰러 간 학교에서 처음 본 관리자와의 만남은 안 그래도 길어진 휴직으로 쥐꼬리만큼 남아있던 학교에 대한 소속감마저 사라지게 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때, 그 관리자와 함께라면 참 서러울 것 같다. 이젠 누가 직장 소속을 물으면 진짜 잠시 생각하게 되는데, 휴직한 기간이 길어져서만이 아니고 정말 그곳을 떠나고 싶어 져서가 아닐까 싶다. 결국 인사결과 그대로 남게 되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돌아갈 때쯤엔 승진해서 나갔겠지. 그런 사람들이 승진은 더 잘하더라. 그때 느낀 나쁜 감정들을 갈겨쓰듯 쓰고 내보이고 싶기도 했는데, 내 일기에나 적고 말았다. 어쨌든 9월에 복직 안 해도 되니 좋다.


그 시기와 맞물려 오랜 친구였지만 왜인지 마음 한편은 불편하기도 했던, 그러나 나를 몹시 좋아해 줘서 고마웠던 친구와 더는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나눌 우정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그 친구를 달래줄 마음이 없다. 매일 오던 전화를 더 이상 받을 일이 없다. 그때부터 이유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던 증상이 사라졌다. 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이 역시 글로 쓰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그 친구가 이 공간을 알기에 쓰지 않았다. 한동안 이 공간을 멀리하고 싶었던 이유기도 하다.

온라인의 어떤 공간이든 누군가 내 생각과 마음을 내가 모르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 자꾸 멈칫하게 된다. 나에겐 그 사실이 때론 무겁게 느껴진다. 자아가 너무 비대한가?


고민하다 복직할 줄 알고 그전에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했던 책 쓰기 모임. 모임이 아니었으면 쓰는 시간도 멈췄을 거다. 글쓰기가 아니라 책 쓰기 모임이어서 책이 되는 상상을 계속하며 글을 쓰게 된다. 사실 책이 될 수 있는지도, 책이 되더라도 괜찮은지도 늘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내가 쓴 게 딱히 읽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내가 왜 쓰는지도 모르겠는 마음. 모르니까 하고 있나 싶기도 한 마음. 나의 이야기라지만 나의 삶 속에 뒤섞인 타인들을 생각하면 자꾸 써도 되나 싶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는 혹시 모르게 내 글을 보고 상처받을 타인에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빼두었다는 걸 알았다. 소름이 돋았다. 내 시선의 엄마를, 엄마는 보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무언가를 어찌 그리 자유롭게 썼나 싶어 놀랐다.

내게 돌아올까 무서워 타인에게 상처주기 싫은 마음도 있는데,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되돌리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엄마의 상처와 내 상처는 서로 뗄 수 없어서였을까. 내 상처라고 해도 나는 막 써도 되나.

어쩌면 엄마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못하는 간극. 내 인생의 난제는 주어를 나로 바꿔도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 후회하겠지. 알면서도 엄마에게 친절하지 못한 마음.


"선생님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인 사람 같은데요?"

"내가요? 아닌데. 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거 결국 다 하는데."

오해라고 생각한 동료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나에 대한 오해는 동료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었나?

아니다. 고정된 내가 어디 있나. 나는 계속 변하는 존재다. 그의 말도 내 말도 필연적으로 지나고 나면 오해가 뒤섞일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슬픔을 미뤄둔 건지, 내 일상과 할머니가 떨어져 있어서인지, 고통스러워 보였던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때문인지. 나는 괜찮고 많이 슬프지 않다. 그런데 왜 잠을 잘 못 자나. 할머니. 미안해.


나는 내가 닮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닮고 싶은 것만을 담고 싶다.

쓰고 싶지가 않을 땐 내가 쓸 글이 닮고 싶지도, 담고 싶지도 않아서인 듯하다.

그래서 결국은 어쩌면 내가 쓰는 말은 반쪽의 이야기일지도.

지금 이건 누가 읽어주길 바라고 쓰는 글일까. 잘 모르겠다.


남편의 수술, 임신 초기 몸의 변화, 육아 고민. 지나고 보니 씩씩하게, 지나갈 것을 믿으며 지나온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올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많은 일이 짧게 느껴지는 건 풀지 않고 압축해두고 싶은 마음인가. 꼭 그런 마음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힘들었지만 다정한 마음들, 감사한 일들이 꼭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컸기에 지나왔는데. 힘들기도 했다.


나에게 한 해의 시작은 3월 같아서, 어쩐지 8월이 꼭 한해의 반을 지나는 시점인 것 같은 느낌.

내 기준. 2025년의 반이 지났다. 남은 반은 조금은 더디게 느껴져서 압축해버리고 싶거나, 행복해서 붙잡고 싶은 시간보다, 있는 그대로 흐르는 시간 속에 더 많이 머무르고 싶다. 흔들리는 나뭇잎과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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