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뼈

by 박보람


우리 동네에는 치킨과 칩스를 파는 가게들이 많다. 런던은 러프한 동네일수록 게일즈나 폴같은 가격대가 있는 베이커리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에 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나라의 식료품 가게나 (우리 동네는 캐리비안) 치킨 코티지, 또는 쓰러져가는 오프 라이센스들이 즐비한데 우리 동네가 딱 그렇다.



치킨 가게는 장사가 성황리에 잘 되고 있다. 특히 아이들 하교 시간에는 문 밖으로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치킨 집이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다는 것도 장사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오후 수업을 하러 출근할 때쯤이면 이미 치킨 가게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한국에서 하교 후에 떡볶이 집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분식을 먹는 것처럼 영국에서는 치킨과 칩스가 담긴 상자를 포장해서 길에서 먹는다.



하루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무리들이 치킨과 칩스가 담긴 상자를 들고 치킨 가게에서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열심히 치킨을 뜯던 아이들은 닭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버렸다. 주위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말의 양심도 없이. 키가 나보다 작은 남자아이들이었으니 끽해봐야 초등학교 고학년처럼 보였다. 우리 동네 길에서 유독 많이 보이던 닭뼈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는데 이날 아이들을 보며 근원지를 찾은 것 같았다. 주변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어른들 중 뭐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 유니폼의 학교에서 작년에 칼부림 사건으로 학생 한 명이 죽은 적이 있다. 어른들도 괜히 한 소리 했다가 학생들에게 칼빵을 당할까 봐 무서웠던 게다. 물론, 그 어른들 중 한 명은 나다.



딱 봐도 한동안 세탁하지 않은 것 같은 꼬질꼬질한 유니폼을 입고 입과 손에는 기름 범벅이 되도록 치킨을 뜯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닭뼈를 길에 버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영국의 리얼한 실상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서다. 못된 마음으로 저들의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머릿속에서 실컷 상상도 했다.





올해부터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영국인을 가르치게 됐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미국 시스템을 따르는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악센트가 완전히 미국인이다. 영국에서 프라이머리, 세컨더리, 식스폼이나 컬리지가 아니라 엘리멘터리, 미들 스쿨, 하이 스쿨을 다녔다고 했다. 나는 그게 영국에서도 가능한지 몰랐다.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인데 그 사이에 갭이어를 가지는 중이라고 했다. 학생의 한국어는 이미 한국에서 십 년 정도는 산 사람의 수준이어서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본인이 언어에 재능이 있는 걸 알고 한국어 선생님을 구해주셔서 계속 과외를 받았다고 했다.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은 대개 다 이렇다. 메릴리본에 살면서 스쿨버스를 타고 저 멀리에 있는 사립학교를 다니거나 바비칸에 살면서 승마 수업을 위해 2주에 한번 헛포셔에 있는 할머니의 저택에 간다. 이런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 동네 버스 정류장에 가면 기묘한 이야기처럼 현세계에 구멍이 뚫려 upside down 된 세계로 떨어진 것만 같다. 그리고 생각한다. 영국에서의 빈부격차는, 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의 격차는 한국 사회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라고. 아직도 귀족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루이샴 버로우에 사는 저소득층 흑인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지. 사실 나 조차도 감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좀 속상하기도 하다. 저 아이들이 처음부터 길바닥에 닭뼈를 버리며 태어나진 않았을 테니. 저 아이들도 깨끗하게 세탁된 유니폼을 입고 치킨과 칩스보다는 더 맛있고 살이 덜 찌는 간식을 먹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보다 더 힘든 산고 끝에 세상의 빛을 봤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저소득층의 자녀로 태어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부모 또한 같은 심정일 것이다. 물론 개차반으로 '아이는 낳으면 알아서 큰다'는 마인드셋으로 사는 부모도 있겠지만 내 소중한 아이를 굳이 칼부림이 일어나는 학교에 일부러 보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사회 전체의 교육 수준이 너무 높아서 너도 나도 모두가 사교육을 받는 사회가 나은 건지, 아니면 특정 계층은 하늘을 훨훨 날고 또 다른 특정 계층은 기름 묻은 손으로 닭뼈를 빨아야 하는 이 사회가 나은 건지 이 날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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