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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see Jan 11. 2017

조선일보 인턴기자 이야기2

이론보단 경험이 최고다

요즘에는 인턴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15기였으니 지금은... 여름 겨울 꼬박꼬박 대학생 인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면 이번 1월에 활동하는 인턴들은 28기? 정도 되겠다. 거진 절반 차이가 나는 기수이니 참 옛날 옛적 일이다 싶다. 하긴 우리 회사 9년 차 되는 선배가 나보다 5기 앞선 조선인턴기자 활동을 했는데 차라리 그 선배랑 기수를 맞춰보는 게 오히려 더 빠르다는 사실은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거 같아 슬프다. (ㅋㅋㅋㅋ)


인턴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언론사에서는. 나는 6년 전에  두 달간의 짧은 인턴생활을 지금까지도 우려먹고 있다. 그때 느꼈던 기자의 감각, 경험, 언론사의 시계 등등은 내가 무리 없이 기자생활을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그만큼 중요한 활동이다. 단 몇 주를 해도. 다만 요즘에는 워낙 인턴제도가 늘어났고... 인턴제도가 늘어나도 내가 경험했던 정말 클래식한 기자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문 것 같다. 왜냐?


1. 그만큼 언론 환경이 변했다. '온라인 중심'으로 변하다 보니 온라인에는 지면의 한계라는 것이 없다. 굳이 지면에 까지 아마추어 인턴들의 기사를 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로 온라인 기사, 우라까이, 전화 취재 등이 주를 이루는 인턴활동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환경이 변한 만큼 기자의 취재 방식도 온라인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클래식한 기자의 생활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인턴을 추천한다. 대표적인 건 역시 조중동이 되겠다.


2.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먹는 곳이 많다. 한 번의 경험을 위해 인턴에 목매다는 언시생들을 후려치기 하는 ㅠㅠ 최근에는 머니투데이 인턴을 경험한 사람의 수기가 아랑에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곳을 알아보고 제하는 능력은 역시 정보력이다. 스터디원, 주변 선배들에게 빠짐없이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이런 귀찮은 작업이 싫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조중동 인턴을 하시라.


 워낙 예전에 인턴 1편을 써놓고 2편을 쓰는 거라 중복되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사전 양해 부탁드린다.


◇ 3일간의 오리엔테이션

2009년 12월 28일이 첫 출근 날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해서 회사 세미나실에서 30명이 넘는 동기들이 전부 모여 자기소개,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와 기자의 역할, 명함과 사원증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3일 내내 회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했다.


당시에 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하루하루 인턴 경험을 적어놨는데.. 오리엔테이션 때 적은 내용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첫 시간엔 조선일보 역사에 대해 설명해 줬는데 결론은 절대로 친일은 안 했다는 방응모가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간 건 검증되지 않았다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조선일보에 대한 날 설득하지 못한 설명과 두 번째는 뉴미디어 관련해 강의했는데  역시나 미디어법 통과돼서 방송 만들어져도 방송인력 증가는 개구라였고 세 번째는 편집기자가 와서 편집에 대해 설명하고 기사 내용 보고 제목 쓰기 훈련을 했다. 창의력이 많이 요구되는 매우 피곤한 부서라는 느낌과 마지막은 글을 잘 쓰는 법.  인턴기자 생활을 책으로 만들라는 나는 네 번째 강의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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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과 사원증

지금은 조선일보 CI도 변경돼서 아마 이런 디자인의 명함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인생 처음으로 거대한 사회적 집단에 속해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명함을 받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 사원증도 꽤나 뿌듯해서 광화문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에 매 걸고 다녔던 경험이 있다. '나 여기 다닌다'는 일종의 속물 같은 자랑질이었다. 순수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 부서 배치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새해 첫날, 1월 4일이었다. (이날은 KBS의 박대기 기자가 어깨에 눈을 잔뜩 쌓아놓고 하루 종일 기상특보를 현장 중계해 유명세를 탄 날이었다) 나는 무슨 일 때문인지 늦게 들어가서 마지막 남은 사회부 법조팀 자리를 맡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친구들은 사회부 지역별 경찰서 마와리, 국제부, 디지털뉴스부, 엔터테인먼트부, 사회정책부 이렇게 돌았다.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부'에는 인턴은 절대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이후 국장 등에게 부탁해 정치부 경험을 한 인턴들이 몇 명 있었지만 실제로 정치부는 현직 기자들도 5~6년 차는 돼야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세태가 변했다. 인턴들도 정치부에 들어가 국회의원들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모양새니. (채널A 실무를 갔을 때 현직 정치부 출입 기자는 샛 병아리들까지 국회에 모여들어 정신이 없다며 하소연을 한 일이 있다) 암튼 내가 인턴 할 때만 해도 정치부는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윗선에 부탁해서 몇 명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각자 부서 배치를 받고 2주에 한 번씩 부서를 바꾸게 된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 법조팀

그리하여 나는 법조팀 배치를 받고 2주간 서울중앙지법 기자실로 출근을 하게 된다.  법조는 서울중앙지법과 대검찰청을 출입한다. 나는 검찰청은 가보지 못하고 중앙지법만 왔다 갔다 했다. 법조팀 인턴기자가 하는 일은 매일 재판 일정을 체크해 중요한 재판에 들어가 기사거리를 찾는 것이다.

나는 인턴기간 동안 경찰서 마와리는 돌지 못했지만 재판을 방청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만나게 됐다. 경찰서 마와리만큼이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들리는 곳이 바로 이곳 형사재판부다. 물건을 훔친 딸을 선처해달라는 어머니의 눈물을 봤다. 나와 비슷한 연령의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남자는 방청석에 유일하게 홀로 앉아 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었다. 한명숙 재판도 봤고, 용산참사 재판에 들어가 조선일보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정에서 끌려나갈 뻔도 했다. 여러모로 참 의미 있는 곳이 바로 법조팀이다. 사실 법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었던 것도 흥미를 더해준 이유이기도 하다.

하도 방청석에 앉아 있으니 한 판사가 나에게 "어디서 오셨냐"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또 원래 법정은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곳이다. 전자기기는 불입이라 노트북도 안 된다. 재판 내용을 받아 적으려면 오직 '수첩과 연필'만이 허용된다. 그런 곳에서 사진 찍을 기회를 얻었다. 법정을 관리하는 관리자분의 배려덕분 이었다. 증인 선서문도 찍고 ㅋㅋㅋ 판사석에 앉아보기도 했다. 참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중에 기회를 잡아 반드시 법조 전문기자로 성장하고 싶은 포부도 살 밝혀본다.


이 곳은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이다. 내가 찍은 자리는 방송 3사와 YTN 기자들의 고정석이다.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이 이 곳에 모여 자신의 기사를 쓰고 때로는 업무 이야기도 공유하며 지낸다. 인턴 하기 전에는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 기자는 눈도 안 마주칠 줄 알았는데 전혀. 기자도 결국엔 다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이념적 차이보다 더 굳건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한 번은 엠바고를 어긴 한국경제 기자가 기자실에서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분위기는 심각했지만 기자들은 이내 해당 기자가 피자를 쏘는 걸로 마무리했다. 재밌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다.


그렇게 재판을 듣고 오면 선배에게 보고를 하고 기사가 될만한 이야기는 스트레이트 형태로 써보기도 했다. 선배들의 첨삭을 받고 맛있는 점심 먹고 저녁도 먹고 하는 게 일과였다. 우리들은 6시면 퇴근을 했지만 선배들은 10시, 11시 정도에 퇴근을 하고 출근은 우리와 똑같이 9시에 했다. 당시 우리를 담당했던 3년 차 선배는 "돈을 조금 줘도 좋으니 일 좀 덜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한 하소연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평생의 숙원인가 보다.   

지금도 이런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턴들은 아침에 기자실에 출근하면 한가운데 책상에 놓인 매체들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현직이 되고 기자실에 출입하니 대부분 현직 기자들도 조간을 대충 훑어보는 걸로 하루를 출발한다. 기자의 삶은 방송이든 신문이든 뉴스와 떠날 수가 없는 직업이다.


법조 출입을 하면서 나는 무한도전에 나왔던 (지금은 국민의당 대변인) '장진영 변호사'도 만나고 판사실에 올라가 '판사'도 대면해봤다. 다양한 로펌 변호사들도 만났다. 어떤 출입처에 드나들 때는 해당 출입처에 대한 파악이 가장 중요한데,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법조계라는 것이 철저히 학연, 지연 등으로 지배되는 곳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조선일보 소속보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를 더 궁금해하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었다. 실제 '법률신문'이라는 곳에 최종면접을 본일이 있는데 법학 전공자 우대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학교와 부모님 직업 등까지 세세히 물어보는 것을 보고 경악을 한 일이 있다. 법조계가 그만큼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나는 법이 좋다. 가장 기본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이 흔들릴 때 법 만은 흔들리지 않고 최후의 기둥이 되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법률만능주의는 아니다. 어쨌든 내가 느낀 벽을 뛰어넘어 훗날 법조 전문기자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다시 한번 밝히며, 혹시 지금 인턴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법원 출입도 꼭 한 번 해보시길!


경험은 단순히 기자가 이런 삶을 살 것이다 예상, 확신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나의 경우 기자의 꿈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인턴 동기에게는 '기자라는 직업은 자신에게 맞지 않다'라는 결정을 내린 터닝포인트가 됐다. 물론 인턴경험 없이 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체력'이 매우 중요하고 또 지망생 시절에는 되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저녁이 없는 삶을 겪다 보면 내가 뭐 하는 건가 회의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을 미리 겪어보고 판단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가능하면 인턴경험을 추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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