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가 없는 생활이 시작된다.

by 보라성운

긴 연휴가 끝나간다. 이번 연휴는 엄마의 지방 이주를 돕는 데 대부분을 썼다. 그 자체로 보람 있었다. 마침 추석 연휴가 겹쳐 내려갈 채비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이제 엄마가 없는 생활이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편리함과 시간의 여유가 끝난다. 어쩌면 너무 오래 지속된 편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친구들은 이미 각자의 공간에서 독립해 살고, 집안일을 스스로 해내며 생활을 꾸린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아직 서툴고,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다.

생활을 꾸린다는 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잡일을 신속하게 처리해내는 일이다.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나는 늘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이제야 새삼 느낀다.
이제는 나도 독립된 성인으로서 내 생활을 정돈하고 돌볼 때가 되었다. 부지런하게, 종교의식을 지키듯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더 이상 ‘이따가 할게’라는 핑계나 미루기는 통하지 않는다. 매일 빨래를 하지 않으면, 내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몸으로 느끼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이제야 오롯이 성인으로 살아간다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엄마는 “설거지를 해야지, 이것들이…” 하시며 쌓인 접시를 닦고 계신다. 설거지야말로 자신이 하지 않으면 결코 줄지 않고, 결국 다른 사람의 피로로 이어지는 일이다. 누군가의 삶이 유난히 고달프다면,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제 몫의 설거지를 미뤄둔 탓일지도 모른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이런 잔소리도 이제 거의 마지막일 것 같다. 문득 그 소리조차 그리워진다.

나는 늘 방 안에 틀어박혀 핸드폰을 하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이렇게 일기를 쓰곤 했다. 그럴 때면 문밖에서 깽그랑깽그랑, 접시와 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일상의 소음이 곧 엄마의 존재였다. 이제 이 집은 얼마나 고요해질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조금 서글프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전부터 품어온 감정도 떠오른다.
엄마의 단조로운 삶, 자기계발에 관심이 없고, 돈을 쓸 줄만 아는 태도에 대한 내 피로감. 엄마가 잘못된 건 하나 없지만, 그저 거리를 두고 싶었던 마음.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다. 타이밍도 적절하다. 슬프고, 덤덤하고, 아쉽고, 그러면서도 응당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밤이다.
그저 바랄 뿐이다. 엄마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잘 적응하시길. 무엇보다 건강하게.

작가의 이전글엄지를 못쓰는 사람은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