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의 진화, 현대판 빨래빵

론드리프로젝트, 어반런드렛

by borderless

론드리 프로젝트

https://www.laundryproject.co.kr/

런드리 프로젝트 공간 내부

이태원 주택가에 위치한 론드리 프로젝트는 카페와 코인 빨래방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주택 사이, 언뜻 보면 조용한 여느 카페와 차이 없어보이지만 공간에 들어서면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은 뒤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마시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7년 전쯤만 해도 이태원은 어둡다는 느낌을 받곤 해서 잘 들여다보진 않았는데, 이곳에 앉아 보니 생기가 흐른다.




세탁의 진화는 언제부터


초등학교 시절을 그려보면 작은 화장실에 덜컹거리는 세탁기 한 대와 여름이면 벽돌색 대야에 이불을 넣어 발로 밟아 땡볕에 말리곤 했다. 지금은 이불과 베개를 빨래빵에 맡기거나 작은 침구류는 손쉽게 세탁기에 넣는 시대니 참 편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 옛날엔 세탁으로 계급이 나눠지기도 했다고 한다. 상위층 계급은 하층 계급에게 옷을 맡겨 빨래 전문직종이 생겼고 산업화 이후 세탁기의 발전으로 계급이 사라졌다. 한국은 1980년대 자동 세탁기가 개발되고 이와 더불어 혼족,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코인 빨래빵의 수요도 늘어났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올라가기 전까진 할머니 댁 개울가에 방망이질 하는 모습도 봤었는데 말이다.



코인 빨래빵은 어떻게 운영될까?


론드리 프로젝트의 spinning life'릴레이 전시 프로젝트

코인 빨래빵이라고 세탁만 하는 곳은 아니다. 론드리 프로젝트에서는 2019년 6월부터 릴레이 전시 프로젝트인 spinning life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지원해주고 있다. 카페 역할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여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매장 내 귀여운 엽서와 천 포스터

이전에는 작품 자체만을 위한 전시가 열리곤 했지만 요즘은 예술, 음식, 책 등의 결합을 통해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페에서 전시도 보고 커피 한 잔도 즐길 수 있는 이상적인 소비 문화가 빨래빵에도 적용된 모습이다.



빨래방 내부에도 전시되어 있는 귀여운 그래픽
외국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빨래방


요즘은 골목 어디든지 코인 빨래방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오래된 운동화를 깨끗하게 빨기 위해 근처 코인 세탁방을 이용했다. 물론 사장님께 돈을 직접 지불하고 제품을 맡겼지만 생각보다 편리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자취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유용한 시설이다. 이태원 경리단길을 가보면 신기하게도 음식점과 카페는 많지만 의식주 중에 의를 다루는 곳은 많지 않아 주택가에 코인 빨래방이 있으니 희소가치가 있어 보인다.


카페에 디스플레이되어있는 세탁 제품들

론드리 프로젝트는 시대에 맞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카페에 세탁소 아저씨는 없지만 세탁 기계가 있고, 공간 안에 여행 서적과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곳은 감성과 이성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빛 좋은 날 밝게 빛나는 런드리 프로젝트



어반런드렛

https://urbanlaunderette.com/

어반런드렛은 독일의 가전브랜드 밀레와 함께 세탁 실 구축과 세탁서비스를 제공한다. 런드리 프로젝트의 경우 빨래방과 카페가 결합된 공간이라면 어반런드렛은 사업군을 분리시켜 운영하고 있다. 서초, 청담에서 운영되는 곳은 세탁 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코인 세탁기 대신 무인 계산기에서 결제 후 사용할 수 있게금 되있다. 코인보다는 개선된 시스템으로 보인다. 대신 카페는 서울이 아닌 용인에 자리잡아 차와 간단한 베이커리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세탁 서비스와는 분리시킨 모습이다.


어반런드렛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적인 24시 무인 빨래빵과 달리 환경 문제를 고려하여 운영한다는 점이다. 비영리재단 서울그린트러스트와 협약을 맺어 수익금의 일부를 캠페인에 지원하고 생분해 되는 친환경 원료를 사용한다. 근래 환경 문제로 민감한 소비자들에게는 작은 어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정말로 생분해 세재를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세재 공급사와 정부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 해야되지 않나 싶다. 유통망에 친환경 세재 광고를 뿌리고 공공기관에서 친환경 세재를 사용하는 시민과 기업에 지원을 해주고 일정 부분 세금 감면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세탁 원료의 역사를 찾아보면 초기 세탁 방법은 단백질을 잘 분해시키는 잿물을 사용 하였고 조선말 개항 이후 가성소다가 들어오면서 이를 서양에서 들어온 잿물이라 하여 양잿물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세탁 비누를 사용한 시점은 전기세탁기가 들어온 시점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액체형 세재는 계면활성제가 들어가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고 한다.


나 같은 일반 소비자는 집안에 세탁기가 있으니 무인 빨래빵 갈 일이 많지 않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면 친환경 세재 가격과 실질적으로 세탁 성능이 좋은지 고려해볼 것 같다. 요즘은 정말 내가 한 60대가 될 때쯤 지구가 멸망할 것 같아서 무섭다. 환경보호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건 세재뿐 만이 아니다. 최근 이슈인 택배 쓰레기 문제 조차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재생 포장지 가격이 일반 스타트업 부터 소기업들이 사용하기엔 비용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감면이나 아무런 자재비 지원 없이 자발적 친환경을 해야되는 부분이 힘든 것이다.




도시에 오래 남는 로컬브랜드를 기대하며

지역 브랜드의 역사를 보면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차의 발전으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고 슬럼화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운동이 1893년 미국 시카고 무역박람회 도시미 운동 city beautiful movement이다. 그 시기에도 지역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는 사실은 지금과 변함없다.


이제는 오래된 추억이지만 울퉁불퉁 돌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도로를 힘들게 걸은 끝에 웅장한 판테온을 볼 수 있고, 파리 지하철은 쾌적하지 않지만 눈발 휘날리던 몽마르뜨 성당의 고요함은 잊을 수가 없다. 골목에서 우연히 예쁜 상점들과 길거리 카페들을 보다 보면 느리게 걷는 것은 일상이 된다. 그에 비해 서울은 어느새 대형 프렌차이즈가 도로변과 마을을 금방 집어삼켜 그 지역만의 고유한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상권 내 지역 브랜드가 골목 문화로 유지된다는 건 쉬워 보이진 않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그 지역만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공간이 남아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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