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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Dec 01. 2019

미국 출산의 단점

미국 산부인과 체험기 11 - 번외 편 (임신 일상 4)

* 미국 산부인과 체험기 1편에서 8편까지는

브런치북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brunch.co.kr/brunchbook/bostondiary



임신 중기에 접어들고 난 뒤, 학교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것. "그래서 아기는 한국에서 나을 계획이야? 미국에서 나을 계획이야?" 대학원 학기를 지속하고 있는 유학생 신분인 나는 망설일 게 없었다. 일단 야심차게 시작한 학위과정이니 중도에 잠시 멈춰두는 건 내 스스로 허락할 수 없는 이야기. 남편 역시 보스턴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으니, 중도에 모든 걸 멈추고 '출산만을 위해' 한국에 들어가는 건 여러모로 앞뒤가 맞지가 않는 이야기였다. 각각 학업과 직장생활을 미국에서 이어오고 있는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임신 첫확인부터 출산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유 캔 두 잇! 엄마는 스터딩맘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요.


다행히 내 출산 예정일이 봄학기 종강 시즌과 비슷하게 맞물린 덕분에 학기말 과제만 미리 마무리해둔다면 학교 일정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걸 두고 태어나기 전부터 효자라고 하는 건가?) 교수님과 어드바이저로부터 혹시 모를 돌발상황 (이를테면 예정일이 일찍이 앞당겨진다든지, 갑작스레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져 누워만 있어야 한다든지) 들에 대해서는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것이므로 양해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학교 측에 재차 확인해두었다. 미국은 여름방학 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긴 편이다. 4월에 한 학기를 마무리 짓고 내년 가을 학기 전까지 약 120일가량, 넉 달가량 푹 쉬고 (라고 적고 신생아 육아라고 적어 본다), 새 학기 준비를 하며 학교에 복귀하면 되겠다는 계산이었다.


내 학업 일정과 남편의 직장 사정상, 미국 출산을 망설일 이유도, 아니 망설여서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때때로 아쉬움이 밀려들 때도 있기 마련. 30년 훨씬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게 타지생활 + 임신출산 콤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주변에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일부 몇몇은 원정 출산도 감행하고 싶어한다는데 난 오히려 정 반대. 한국에서 정기검진받고 출산하는 친구들, 선배들이 얼마나 부럽기만 하던지. 익숙한 병원 시스템도 그렇고, 한국의 잘 갖춰진 산후조리원 문화도 내겐 그림의 떡. 수십 년 익숙한 '내 공간'에서 아기를 품고 키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사실 타지에서 공부하며 적응하며 임신과 출산이라는 제 2의 인생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실 모험과 도전, 그 이상이다.


대학원 유학생활을 병행하면서 40주 여정을 걸어가기란!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음식'이다. 임신 40주간 가장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식생활. 다행히 우리 부부는 미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이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한인마트 데이트를 정기적으로 하는 편이다. 즉, 고향 음식을 못 먹어서 서러울 일은 최소화하고 있다는 이야기. 홀푸드나 스톱 앤 숍과 같은 일반 대형마트는 집 근처에 있지만 한인마트는 20-30분 차 타고 달려야 하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 이후엔 더 적극적으로 한인마트를 향해 달리곤 했다. 한국 물가에 비하면 상당히 비싸지만 '바가지 쓰는' 기분을 감수하고서라도 때때로 한국과자와 한국표 인스턴트, 한국산 재료들을 열심히 사들였다.


그럼 아쉬울 게 없지 않겠냐고. 노노. 이렇게 노력하고 있을지언정, 미국에서의 임신출산을 감당해내고 있는 자에게 '못 먹어서 아쉬운' 음식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조금 거창해보이기는 하지만 난 이것을 '미국 출산의 단점'이라고 명명하겠다. 적당히 참을 수도 있는 건데, 뭐 굳이 '단점'이라고까지 부풀릴 필요가 있겠냐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호르몬의 영향일지, 구할 수 없고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생겨서 눈물까지 날 때가 있는 걸 보면 임산부에게 '잘 먹고 지내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거다. 우리에게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한 이슈는 정말이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대한 판단기준이 된다.



한국판 초코우유를 먹고 싶은데


진작에 밝힌 바 있듯이, 나도 모르게 식성이 변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방송 생활을 할 때는 물, 커피 이외의 음료수류는 잘 입에 대지 않는 편이었다. 그게 아무리 건강에 좋다한들, 목 건강에 좋다는 배즙도, 우유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페라테를 주문할 땐 무조건 저지방 우유, 혹은 무지방 우유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조금이라도 칼로리를 낮춰서 깔끔하고 담백하게 마시고 싶어서.


딱 이 버전의 초코우유가 먹고싶은 건데요? 미국에 온 지 10개월차, 아직 초코버전의 한국 우유는 찾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그랬던 내가 '초코우유'가 먹고 싶어졌다. 카페에서조차 초콜릿 시럽이 들어간 커피가 싫어서 '카페모카' 한번 주문하지 않던 내가, 이게 먹고 싶어지다니.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도 먹지 않았던 한국판 초코우유가 먹고 싶어졌다는 것.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미국 제조사의 초콜릿드링크는 너무 달 것만 같아서 내가 원하는 그 맛이 아닐 것만 같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그리운 걸까? 중고교시절 이후로는 초코우유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하필 그 맛이 그리워진 걸까. 불행히도 한인마트를 여름부터 싹싹 뒤졌으나 딸기우유, 바나나우유, 커피우유만 있었을 뿐, 초코우유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딸기맛, 바나나맛, 커피맛을 두루 섭렵해보았으나 완벽한 대체제가 되어주진 못했다. 출산 전까지 단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한국판 초코우유!


가장 맛있는 딸기,
한국 만한 곳이 없다니


자주 사 먹는 사과, 허니크리스피. 빨갛고 맨질맨질 탐스럽기도 하지

미국에도 과일은 많다. 집 근처 홀푸드, 학교 근처 늘 지나다니는 스타마켓에 가면 아쉽지 않게 다양한 과일을 골라담을 수 있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과가 종별로 예쁜 빛깔을 자랑하며 옹기종기 풍성하게 놓여있을 때의 행복이란. 신기하게 주차가 거듭될 때마다 먹고싶은 과일이 바뀌곤 하는데 초기엔 자두와 딱딱한 복숭아에 꽃히기도 했고 조금 지나선 연두빛 아오리 사과가 좋았다. 좀 더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선 귤이 너무 좋아서 학교 책가방에 귤을 20개씩 꽉꽉 채워다니기도 했다는 이야기.


미국 딸기 맛없다는 거 알면서 속는셈 치고 덜컥 구입해 버린 이것. 어찌나 먹고싶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겟잇. 그 맛은?


그.런.데 !  최근엔 하필 딸기가 끌린다. 한국에 딸기 시즌이 시작된 탓일까. 소셜미디어 지인 계정마다 탐스러운 딸기 사진에 매혹당한 덕분일까. 자그마한 한 팩에 만 원을 족히 지불해야 한다고 할 지라도 꿋꿋이 사먹고 싶은 '딸기' 녀석. 불행히도 미국산 딸기는 맛이 없는 것만 같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건가? 했는데 주변 지인들 역시 미국 딸기는 배신이다. 미국 딸기는 진짜 맛없다... 같은 소리를 낸다. 먹지 못할 정도로 최악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맛보던 맨질맨질하고 탱글탱글한 느낌의 자태는 아니다. '앙' 깨물었을 때 아사삭 터지면서 달콤하게 입안 가득 번지던 그 느낌은 한국 딸기에서만 가능하다. 왠지 이곳의 딸기는 퍼석하고, 까슬한 느낌. 단맛이 없진 않지만 신맛도 비슷하게 어우러져서 영 딸기같지가 않다. 마음에 안들어.


담양 딸기? 한국에서 자주 들르던 마트에 담양 지역명이 붙은 딸기 팩을 자주 사먹었던 기억이 나서 며칠간 담양 딸기 노래를 불렀다. 남편이 나를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담양 딸기를 구하러 보스턴에서 한국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생각해보니 농산물은 가져오지도 못하겠구나. 미국에도 딸기는 많이 있는 탓일지, 한인마트에도 '한국판 딸기' 입고는 예정에 없어보인다. 내 스스로 한국행을 하지 않는 이상 먹을 수 없는 한국판 농산물! 정 안되겠어서 며칠 전 하굣길에 슈퍼에 들러 6달러어치 딸기 팩을 샀다. 작은 팩 치고 싼 가격은 아니었으나 어찌나 먹고 싶었던 건지 기대이상으로 맛이 괜찮기는 했다. 하지만 뭉글뭉글 씹을 수록 한국 딸기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갓 만든 김장김치에 보쌈 수육,
어디서 먹나요

잠들기 전에 소셜미디어 속에서 해시태그 #보쌈 만 검색해본 적이 있다. 당장 배달앱으로 주문하지 못할 먼 곳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배달시켜 야무지게 먹은 보쌈에 김치가 어찌나 맛있어보이던지. 겨울이 시작될 무렵 김장 김치를 담근 이야기들이 쏙쏙 업데이트 되면서 갓 담근 김치와 수육을 둥글둥글 말아 입에 쏙 넣는 맛이 그리워졌다. 이 역시 어릴 때나 느꼈던 맛이다. 따끈따끈하게 삶은 고기에 막 만든 김치 한 입. 임신 전엔 김치에 손을 대기는커녕, 밥도 거르기 일쑤였는데 내게도 참 생경한 상상인 걸.


3만원 짜리 1인분 보쌈.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왠지 내가 바라던 맛은 아닐 것만 같아서.


보스턴 한식당에도 '보쌈정식' 메뉴는 있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공수해온 냉동제품이고 맛이 썩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주변 평을 듣고 막상 시도해보진 않게 되더라. 집에서 만든 엄마표 겉절이에 정육점에서 갓 떼어다가 삶은 따끈하고 몰캉한 고기 한점을 겹쳐 입에 넣을 수 있는 행복. 고국에 있지 못하는 내겐 이런 소확행마저도 곧 대확행으로 번져 피어날 것만 같다. 이곳에서는 쉽게 시도할 수 없는 특유의 맛이라서.


먹지 못하는 고국의 맛을 대신해 남편이 만들어 준 전복죽으로 한국맛 애틋함 달래보기


미국 출산의 단점이라고 명명하기엔 세 가지 맛을 느낄 수 없는 이곳의 한계가 너무도 조촐하고 소박할까? 적어도 21주차를 넘어서고 있는 내겐 적잖이 간절한 세 가지. 땡쓰기빙 연휴 내내, 이웃집에서는 터키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지만, 뼛속까지 한국여자에겐 초콜릿 우유, 딸기, 보쌈에 대한 애틋함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리. 한국 현지에서만 가능한 특정 맛들을 마음껏 누릴 동지들이 마냥 부럽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배달앱을 클릭할 수있는 위대한 나라이지 않던가! 타국에서의 임신출산은 고단한 인내와 그리움을 동반하는 것. 미국에서 쉽지 않은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11월 마무리.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의 맛. 난 왜 피자도 한국 동네피자가 그리운 걸까. 어릴 적 9,900원에 라지 한 판 먹던 그 피잣집!


학교 근처 카페에서 흔히 마주하는 브런치 풍경. 학교 앞에 김밥집, 떡볶이집이 있다면 10배는 더 힘낼 수 있을텐데!
이런저런 미국 출산의 고된 여정은 남편의 꽃으로 살짝 달래보기

 


* 미국 산부인과 체험기 1편에서 8편까지는

브런치북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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