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토리X] 청맹과니

[방구석5분혁신.초단편소설]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손 안에 들어온 것은 거울 파편이었다. 각기 다른 크기, 다른 모양, 그리고 다른 빛깔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파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일그러지거나 늘어지거나 다른 색으로 물든 모습. 하지만, 그것이 가장 선명한 나 자신의 존재 증명 같았다. 세상의 유일한 진실인 양 파편의 빛깔이 곧 자신을 나타내는 색깔이 되었다.


사람들은 손 안의 파편을 들고 살았다. 서로 마주치면, 자신의 조각을 눈앞에 내밀었다. 상대방의 파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깔은 모두 달랐다. 푸른 조각을 든 자는 붉은 조각을 역겨워했다. 은색 조각은 금색 조각을 업신여겼다. 네 조각은 가짜라고, 내 색깔만이 진짜라고 소리 질렀다. 비난했다. 조롱했다. 증오였다. 혐오였다. 필사적으로 자기 파편의 진실을 지키려 발버둥 쳤다.


소통은 불가능했다. 같은 사물을 봐도 파편의 빛깔에 따라 달리 보였다. 잿빛 조각을 든 이는 시들어버린 장미꽃을 보았다. 분홍 조각을 든 이는 화려하게 만개한 꽃을 보았다. 서로 증명하려 들수록, 파편에 대한 집착은 깊어졌다. 그 안에 갇힌 현실은 더욱 일그러졌다.


모두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모두가 보고 싶은 대로 보았다. 진실이란, 내 손 안 차가운 유리 조각에 새겨진 좁디좁은 세상. 그 세상은 진실의 일부였지만, 동시에 전체의 왜곡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맹신했다. 아니, 맹신을 넘어 광신이었다.


왜 그랬을까? 부서진 하늘 아래 움켜쥔 유일한 것. 파편 없이는 자신조차 정의할 수 없다는 두려움. 오직 그 파편 안에 비친 그림자만이 자신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불안. 그게 전부였다. 다른 파편은 적이었다. 그 빛깔을 부정해야만 내 파편이 진짜가 될 수 있었다.


전쟁이었다. 물리적인 총칼 대신, 서로 다른 빛깔의 시선들이 서로의 마음을 난자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 도시는 조용한 비명으로 가득했다. 서로의 조각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파편 속에 갇힌 이들의 피비린내 나는 악다구니.


온전한 진실은 없었다. 애초에 조각들뿐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조각 속에서 자기만의 진실을 살았다. 세상은 반으로 갈라진 게 아니었다. 무한개의 파편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각 파편 속에 갇힌 수천만의 외로운 자아들이, 자기 손 안의 유리 조각을 부여잡고,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서로에게 발악할 뿐이었다.


진실은 그렇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스러져가는 잿빛 도시, 차가운 파편들과 그 조각에 갇힌 고독한 악다구니만이 하릴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 '방구석5분혁신' 브런치 글이 내 일과 삶의 행복한 경영혁신에 도움이 되었다면 잊지 마세요, 구독!^^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토리X]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