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디지털&AI]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1854년, 런던을 덮친 콜레라 앞에서 당대의 지성은 무력했다. 정부는 환자 발생 지역을 목록으로 만들었고, 의사들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기록들은 흩어진 점일 뿐이었다. 어제 몇 명이 죽었고, 오늘 몇 명이 아프다는 사실의 나열. 기록은 쌓여갔지만, 그것은 과거를 확인하는 절망의 통계였을 뿐, 미래를 바꿀 통찰은 되지 못했다.
의사 존 스노는 달랐다. 그는 '사망자의 집 위치'라는,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새로운 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점들을 '콜레라 확산 원인 규명'이라는 목표 아래 집요하게 연결했다. 그러자 패턴이 드러났다. 거의 모든 죽음이 특정 공동 펌프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기록의 연결을 통한 새로운 가치, 즉 콜레라의 전염 경로를 밝혀낸 것이다. 다른 이들의 기록이 단순한 죽음의 통계였다면, 존 스노의 기록은 생명을 살리는 지도였다.
170년 전 런던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의학사의 전설이 아니다. 바로 오늘 내 책상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기록한다. 회의 시간에는 빼곡히 메모하고, 책을 읽다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나중에 쓸모있을 것 같은 아티클은 스크랩해둔다. 그 순간만큼은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수백, 수천 개에 달한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그 기록들을 다시 꺼내 본 적이 있는가? 서로 연결해본 적은? 대부분의 메모는 작성된 그 순간, 다시는 열리지 않을 운명으로 묘지에 묻힌다. 점을 찍는 데는 능숙한 우리, 그 점들을 이어 선으로 만드는 데는 무관심하다. 우리의 기록들이 각자의 서랍과 폴더 속에서 말라 죽어가는 이유다.
기록의 진정한 가치는 '연결'에서 나온다. 개별 기록이 흩어진 점이라면, AI는 그 점들을 연결하는 강력한 엔진이다. 과거의 도구가 우리가 ‘원하는 점’ 하나를 찾아주는 검색 엔진이었다면, AI는 우리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선’을 그려주는 연결 엔진이다. AI는 분리된 기록들 사이에 숨겨진 패턴, 미세한 관계, 예상치 못한 유사성을 드러낸다. 기록의 가치는 이제 축적의 양이 아니라 연결의 밀도에 의해 결정된다.
혁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하여 ‘창발(Emergence)’이다. 개별 요소의 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속성이 나타나는 현상. 훌륭한 기록 A와 뛰어난 기록 B가 있다고 하자. 과거의 우리는 A와 B를 각각 활용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A와 B를 연결해 완전히 새로운 통찰 C를 창조할 수 있다. 마케팅팀의 고객 불만 기록과 R&D팀의 신소재 실험 데이터가 연결되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차세대 제품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식이다.
문제는 아날로그 시대에 멈춘 우리의 기록 방식이다. 우리는 기록을 ‘완결된 문서’ 단위로 생각한다. 보고서 한 편, 기획서 한 부. 이건 살아있는 정보가 아니다. 연결 가능성이 차단된, 굳어버린 화석이다. 이런 형태의 기록은 재조합이 어렵다. 서로 다른 블록처럼 맞물리지 않고 겉돈다. AI라는 강력한 연결 엔진을 손에 쥐었음에도, 정작 연결할 무언가가 없는 셈이다. 필요한 건 AI 시대에 걸맞는 운영 체제로의 전환이다. 그 시작은 ‘연결’을 기본값으로 만드는 다음 세 가지 사고 전환에 있다.
첫째, 기록의 문법을 바꾼다. 거대한 문서는 AI에게 해독이 어려운 긴 만연체 문장과 같다. 기록은 이제 AI가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단어이자 문장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결정, 하나의 아이디어, 하나의 데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잘개 쪼개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모든 지적 자산을 AI가 활용 가능한 모듈로 재탄생시키는 전략적 설계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