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질문인간]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기업 현장에서 만난 CEO들이 AI에 대해 가장 많이 토로하는 불만? “생각보다 멍청하다”는 것이다. AI가 업무 혁명을 일으킨다더니, 정작 맘에 드는 마케팅 메시지 하나, 영업 시나리오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는 하소연. AI가 산업의 판도를 바꾼다는데, 왜 유독 우리 회사에서는 ‘말귀 못 알아듣는 골칫덩이’ 취급을 받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AI의 지능 문제가 아니다. 우리 회사의 ‘일하는 방식’ 문제다.
대한민국 수많은 중소기업은 시스템이 아닌 ‘눈치’와 ‘맥락’으로 굴러간다. 업무 지시는 앙상하기 그지없다. “김 차장, 이번 입찰 건, 신경 써서 제대로 잘 좀 해봐.” 이 불친절한 지시가 현장에서 기적처럼 작동하는 이유? 산전수전 다 겪은 김 차장이 지난 10여년간 쌓아온 경험과 눈치, 즉 ‘암묵지’를 발휘해 사장님의 빈약한 지시를 찰떡같이 보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팀워크’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특정 개인의 경험과 감각이 공백을 메워주는 거다. 경영학적 관점에서는 ‘시스템 부재’다. 조직의 운영 논리가 사람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거다.
문제는 경영자들이 이 익숙한 ‘소통 방식’을 AI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점이다. 입력창에 대충 몇 줄 적어 넣고는, 기계가 김 차장처럼 행간을 읽고 의중을 파악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AI는 조직의 암묵지를 모른다. 사장님과 함께 ‘으쌰으쌰’했던 추억도 없다. 맥락이 제거된 모호한 지시가 입력되면, AI는 인터넷상의 수억 개 데이터 중 가장 확률이 높은 ‘평균값’을 기계적으로 가져온다. 그 결과? 그럴듯하다. 하지만 우리 회사엔 별로 쓸모가 없다. 우리 회사 맞춤형 결과값이 아니라서다. 모두를 위한 벙벙한 내용이라서다.
결국 AI 도입의 실패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다. 업무 지시의 실패다. 일하는 방식의 실패다. 더 뼈아픈 건, 우리 회사의 업무가 특정 개인의 ‘감(Feeling)’과 '경험칙'에만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리더들은 어떻게 하냐고? 그들은 프롬프트를 ‘발주서’로 여긴다. 외주 업체에 일을 맡길 때, “알아서 잘~해주세요”라고 계약하는 사장은 없다. 결과물의 납기, 규격, 반드시 써야 할 부품, 절대 쓰면 안 되는 재료 등 시시콜콜 명기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
AI와의 협업도 똑같다. 단순히 “신제품 홍보 문구 써줘”가 아니다. 타깃 고객(40대 자영업자), 강조할 핵심 가치(가격보다는 내구성), 톤앤매너(신뢰감 있되 딱딱하지 않게), 금기 사항(과장된 형용사 배제), 출력 형식(블로그 포스팅용 3문단 구성) 등 원하는 바를 꼼꼼하게 규정해야 한다.
이 과정이 주는 경영학적 함의는 막대하다. AI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조직의 핵심 노하우를 끄집어내어 회사의 ‘표준 매뉴얼’로 만드는 작업이라서다. AI에게 완벽한 작업 지시서를 입력할 수 있다는 것은, 신입직원이 들어와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 품질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뜻이다.
“우리 회사는 사람이 없어서 AI를 못 써”라는 말은 틀렸다. 사람의 눈치에 기대느라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기에 못 쓰는 것이다. AI는 리더의 불명확함을 센스로 덮어주는 '김 차장'이 아니다. 리더의 지시가 얼마나 논리적이지 못한지를 있는 그대로 출력하는, 정직한 거울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사람’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막연한 기대 대신 명확한 ‘작업 지시서’를 쥐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AI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이다.
우리 회사의 업무는 AI가 이해할 만큼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몇 사람의 감각에만 기대고 있는가. 우리 조직의 경영이 AI와 일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는 냉정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