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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ㅏ4ㅏ로운 이야기
by 배낭멘곰 May 12. 2017

28. 생일만 되면 왜 외로워질까

늘 비워 두고 있어요, 당신을 위한 심장 한 켠의 자리

 9월 13일. 내 생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태어난 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 '축하받아야 하는 날' 정도. 그런데 마지막 하나가 걸린다. 축하받아야 하는 날. 축하? 나의 탄생은 축하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탄생에 있어서 자격을 운운하자니 벌써부터 우울해지지만, 솔직히 내게 생일은 우울한 날이 맞다. 나는 생일만 되면 우울해진다. 친구들을 만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도, 어느 한순간이 오면 폐 속 깊이 새벽의 마른 공기 같은 공허함이 차오른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카톡창엔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이 가득 쌓여오고,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 작은 선물을 건네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가족들은 케이크를 사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하나 우울함은 꼭 이 이후에 내 방문을 두드리고야 만다. 손님을 가려 받을 수만 있다면야 문고리를 잠가버리고 말 텐데, 우울함, 이 녀석은 눈치 없는 손님처럼 들어와 내 속을 마구 휘저으며 떠들어댄다. '선물을 좀 적게 받았네?', '그 친한 친구는 왜 네 생일에 연락 한 통 없다냐?', '생일이 뭐 별거냐?' 사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특히 마지막. 생일, 그게 뭐 별거예요?

 그래, 그게 뭐 별거이겠는가. 그냥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수만 단위로 올라갈 인구수 통계치에 +1 더해줬을 뿐인걸. 나만 탄생을 겪은 것도 아니고, 탄생하지 않는 사람도 없는걸. 이러고 보니 정말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다 싶은데, 꼭 생일만 되면 그게 별거가 되어버린다. 그게 문제였구만. 생일만 되면 왜 외로워지나 싶었는데 이미 답이 있었어. 내가 생일 때마다 우울해지는 이유는, 생일만 되면 생일이 별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됐어, 충분해, 너무 감사해,라고 입으로 되뇌는 반면 진짜 속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더 축하받고 싶어',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다른 날도 아니고 나란 사람이 탄생한 날인걸', '왜 다들 이렇게 가볍게 넘어가고 마는 거야', '나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연락하지 않는 사람은 내게 관심이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은 적당한 선에서 멈춰주면 좋으련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까지 정착한다.

 '과연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사실 나는 주위의 관심에 태연한 척, 귀찮은 척 하지만 누구보다도 관심과 애정이 고픈 사람이다. 무대에 서는 이유도, SNS에 내가 그린 그림이며 사진 등을 업로드하는 이유도 어쩌면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인지 모른다.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누군가 좋아요 하나 더 눌러주면 괜히 흐뭇해하곤 하잖아.

 그러니 일 년 중 한 번밖에 없는 '나만을 위한 날'인 생일에 누군가의 연락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건 어찌 보면 참 당연해 보인다. 겉으론 애써 생일이란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하지만, 실은 그 날이 나를 향한 관심을 확인하는 날 같아 몹쓸 기대를 해 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인간관계에 있어 유난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던 난 언젠가부터 나를 향한 관심에 벽을 쳐 두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그래서인지 차갑다는 말을,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을 많이도 들어왔다.

 사실 그건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음을 고백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들에 동화되기보단 내 마음의 문고리를 걸어 잠가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만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성된 지금의 내 인간관계는 완전히 수동적인 태도로 완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내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내게 먼저 손 내밀어준 이들이다.

 학창 시절, 나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곤 했었다. 내 이름을 불러줬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수동적으로, 그리고 방어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서부터 멀리 떨어지려 했지만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심장 한편이 아려올 정도로 사랑과 관심이 고팠던 여린 아이였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팽개쳐지는 것이 두려웠다. 사실 내팽개쳐지는 것, 그것 자체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내가 두려웠던 건 그럼으로써 확인되는 나란 존재의 의미였다. 관심받을 자격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걸 확인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때부터 난 내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재능을 보였던 그림이나 노래 같은 분야에서 눈에 띄는 결과물들을 내보이기 시작했고, 생각했던 대로 친구들은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원동력은 관심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살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결과적으로 지금 내 곁엔 (비록 수동적 태도로 닿은 인연이긴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남게 되었고, 나 스스로도 많이 성장하고 단단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생일만 되면 외로워지는 걸 보아선, 난 여전히 같은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구나 싶어 진다. 나는 정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건가, 하고.


 스물두 번째 생일날, 유난히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자취를 하며 지내던 나는 홀로 자취방에서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다 우울함과 외로움에 사무쳐 누나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누나, 너무 우울해'

 누나는 내게 밥을 사주겠다고 서울로 오라고 얘기했고, 우리는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났다. 멕시코 음식이 먹고 싶다는 말에 누난 온 더 보더에 나를 데리고 갔고 두 볼이 미어터질 정도의 멕시칸 음식을 사 주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누난 나이키 매장에 나를 데려갔다. 그리곤 15만 원이 넘는 나이키 운동화를 사줬다. 생일 선물이라며.

 밥을 먹고 운동화까지 사고 나자 버스 막차 시간이 다가왔다. 함께 저녁을 보내준 누난 나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이제 안 우울하지?"

 집으로 돌아오는 막차 버스에 몸을 실은 채 품 안에 꼭 안긴 운동화 박스를 바라보았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줄기 소리가 내 어깨를 두드리듯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순간 울컥하는 것이 목 뒷덜미를 따라 차 오르며 심장이 따뜻함으로 번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내가 느낀 외로움이나 우울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감정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우울하다는 한 마디에 당장에라도 밖으로 나와 밥을 사주는 사람, 넉넉지 않은 사정에도 선물을 건네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거, 얼마나 벅차도록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지 못하면 어떠한가. 누군가 내 생일을 깜빡하고 잊어버리면 어떠한가. 그저 누군가의 가슴속에 내 자리가 있기만 하다면야,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하랴. 누군가의 가슴속에 내게 내어준 자리 한 켠, 그 자리가 내 자리라는 것, 그것만큼 벅찬 일이 또 있을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얼마 전에 이 노래를 듣고 울었다. 어렸을 적엔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노래인데, 지금 들으면 눈물이 흐른다. 내 얘기 같아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중략)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사랑받는 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지만 피부로 느끼기란 참으로 힘들다. 누군가 말로, 행동으로 확인을 시켜줘야만 조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생일이면 자꾸만 우울해지는 것 같다. 확인받지 않으면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자꾸만 의심을 하게 되니까.

 노래는 내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태어났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을 받고 있다 얘기한다. 또 내 존재가 미천하고 미비하더라도 누군가에겐 존재 자체만으로 큰 행복이며 기쁨이라 얘기한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나 같은 존재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얘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심장이 터질 정도로 고마웠기 때문이리라.


 '과연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예, 그럼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는 사랑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아요. 만약 사랑받는데도 자격이 필요하다면 그 자격은 아마 당신이 당신으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일 겁니다. 생일에 축하받지 못했다고 우울해하지 말아요.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느껴 초조해하지 말아요. 당신을 위한 심장 한 켠의 자리, 늘 비워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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