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인데도 가끔..
여자들이랑 일하기 싫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건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보다
이러한 사람. 저러한 사람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여자들과 일할 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눈물'이었다.
직장에서 우는 여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직장생활 4년차 즈음인가 어느 날,
신입사원들이 들어와 쭉 돌며 인사를 하는데
귀여운 한 여자사원이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안녕하십니까! OO기 신입사원 이요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애교 가득한 눈매에 여자인 나도 스르르 녹는다.
엄마 미소 살짝 보여주고 도도한 척 다시 일하는 나.
신입사원들이 들어와서 더욱 활기를 찾은 사무실 분위기.
그러나 대리급인 나의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코치코치 쫄래쫄래 묻고 따라다니니,
한 편으로는 잘 가르쳐줘야지 하면서도
바빠 죽겠는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
특히
이요미 사원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쬐그만한 체구에
베이베페이스로
애교도 많고 분명 착한 아이이긴 했다.
그런데 무슨 말만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회의록 정리가 허술하다며 꼼꼼하게 정리하라는 몇 마디에 눈물.
미리 리허설 시간을 출연진에게 안보내줘서 따끔하게 한 마디 했더니 또 눈물.
처음에는 눈물을 보이니 나도 마음이 약해져 멈칫했는데
반복해서 보니까 슬슬 염증이 날 정도다.
처음에는 마음이 여려서 그렇겠거니..했는데
이젠 눈물로 자신의 실수를 방어하려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가녀린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앉아 있노라면
"왜그래. 요미야..
그게 그렇게 속상해?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자자. 커피 사줄테니까 가서 진정하자"
라며 백마탄 왕자인냥 나타나는 남자 사원들.
어우...꼴비기 시러.
어찌저찌 시간은 흘렀다..
난 업계에서 독한 여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팀장까지 달았고,
요미는 대리를 달기 직전, 그녀를 귀요워해주는 남자와 결혼하자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페북에 가끔 음식 사진을 올리며
근황을 전하는 중이다.
팀장으로 있을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팀원으로 있던 32세 여성 윤대리.
그녀가 담당하고 있던 고객사 쪽에서 나에게
강력한 컴플레인 메일을 보내왔다.
나 - 윤대리, 내 자리로 와봐. OO 고객사 측에서
2개 내용에 대한 컴플레인 메일이 이렇게 왔는데..설명 좀 해볼래?
윤대리 - 1번은 제가 이러이렇게 정리해서 메일을 보냈는데,
걔가 지가 메일을 자세히 확인안해놓고 저러는 거구요.
2번은 제가 사전에 분명 인폼했는데, 그쪽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 - 음...확실해? 확실해야 내가 고객사 측에
제대로 디펜스할 것 같은데
윤대리 - 저는 잘못 없어요. 해달라는대로 다 해줬구요.
걔(고객사 담당자)가 지금 자기 일 많으니까
메일 잘 읽지도 않고 답답해서 저한테 히스테리 부려요
정말 미치겠어요 저도.
나 - 그래. 일단 알겠어. 내가 통화해볼께.
고객사와 통화를 해보니 그쪽은 나름의 그쪽 입장이 있었다.
그리고 1번은 윤대리 말대로 그쪽에서 잘 확인을 하지 않아 생긴 오해였지만,
2번은 확실히 우리쪽 과실이었다.
나 - 윤대리, 고객사랑 통화했고 컴플레인은 진정시켜놨는데
2번은 이거 사전에 우리가 미리 체크해야 했던 상황 아닌가?
윤대리 - 아뇨. 그건 다른 외주사에서 가이드 준 내용대로 전달한거구요..
나 - 그건 가이드고, 우리 고객사니까 토스만 하는게 아니라
고객사가 잘 이해하도록 체크해주는게 맞지.
윤대리 - 팀장님, 저 정말 이 담당자랑 일 못하겠어요!!
제가 쓴 메일 확인도 안하고. 피드백도 안주고.
급해서 전화하면 내용도 모르니까 짜증만 내고.
저 이것땜에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니깐요.
나 - ...윤대리, 그럼 어떻게 할까.
이쪽 담당자를 교체할까?
윤대리가 이 고객사랑 일을 못하겠다면 담당자를 바꾸는게 맞는가?
윤대리 - 그건 제가 오늘까지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께요..
나 - 윤대리. 난 지금 당신한테 선택권을 준게 아니야.
개인이 고객사랑 안맞다고 투정부리면 무조건 다른 사람을
붙이는 게 정답인지를 물어본거지.
윤대리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윤대리 - ........
나 - 고객사측에서 윤대리에게 일정 부분 히스테리 부린 것도 있는 거 같고
힘들게 한 점도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우리 고객사니, 우리의 과실을 인정할 건 하고
그들에게 당당하게 요구를 하자는 건데
우선 윤대리는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솔직하게 보고를 않했어.
그리고, 그동안 고객사랑 관계가 어땠는지 보고도 안하고
지금에서야 상사에게 극단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니 어쩌니 운운하면서 이렇게 감정적으로 구는 건
지금 본인 실수를 회피하려고 하는 대화방식 아닌가?
이 정도 일로 이런 말을 한 윤대리에게 나도 실망이야..
이때부터 울기 시작하는 윤대리.
그녀는 말없이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솔직히 나도 그녀를 아끼는 터라,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극단적인 발언으로
자신의 방어를 한 것은 나로선 용납할 수 없는 태도였다.
한참을 더 혼내킨 다음, 그녀를 옥상으로 데려가
그녀의 얘기를 다시 들어주었고..
나의 생각을 차분하게 얘기 했다.
나 - 윤댈.. 내가 화난 건 윤댈의 실수가 아니야
윤댈이 솔직하지 못했던 것. 그건 내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거라구.
고객사한테 나도 맞짱을 떠야되는데,
사실을 알고보니 우리쪽 과실인게 분명해졌을 때 내가 어땠겠어.
윤댈 편을 어떻게 들어줘?
그리고 아무리 감정적으로 화나도 그렇지.
회사를 그만두니 마니, 하는 건 정말 깊게 고민하고 결정했을 때
상의를 하는거지. 자신이 힘들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상사를 협박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나를 배신하는 행동이야..
앞으로 혼자 다 막으려고 하지말고 문제가 생기면 제발
그때 그때 나한테 공유를 해줘. 그래야 내가 알지..
윤댈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그쪽 고객사는 당분간 내가 커뮤니케이션 할께.
진정하고 내려와..
그녀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내려왔고, 결국 그 일은 잘 수습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회사를 잘 다녔다.
이번에도 나는 윤대리의 눈물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전 요미의 경험으로 인해 단호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요미처럼 시도 때도 없이 눈물로 자신의 무능력을 방어하려는
소수의 여성도 있겠지만,
윤대리처럼 혼자 다 해결해보겠다고 꾹꾹 참고 쌓아두다가
표현이 서툴러 억울하여 눈물이 터지는 마음 여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을 하다가 '눈물'을 터뜨리는 여자들을 볼 때면
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 저렇게 감정적이지?
저게 울만한 일인가..
이러니 여자들이 욕을 먹지..
사회생활에서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나는
직장에서 우는 모습이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더 냉정하고 프로페셔널해지기 위한 노력 속에
'눈물'이야말로 절대 보이지 말아야 하는
큰 죄악이라고 여겼다.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눈물'로서
감정에 호소한다는 말은 죽기보다
듣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사원시절,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팀장은 장기간 해외출장 중이고,
나혼자 고객사의 관련 부서사람들 10명에게 둘러싸여 시달리던 그 날.
이미 다 컨펌을 받은 내용인데, 임원들이 참석한다고 하니
이제와서 숟가락 하나씩 얹어보겠다며 요청사항을 막 얘기한다.
하루에 2-3시간씩 자는 생활을 꼬박 일주일을 했던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있었고, 멘붕이 오기 직전이었다.
그때 그 모든 것을 컨펌해주었던 한 담당자 홍과장이,
사람들 앞에서 윽박 질렀다.
"야! 그냥 좀 해줘. 너네가 하는 일이 그거 아니야??!!"
순간 나는 눈물이 울컥 쏟아졌고,
눈물을 보일까봐 화장실로 뛰어갔다.
울지말자 울지말자 자기최면을 걸면 걸수록 눈물이 더 나왔다.
운 티를 내기가 싫어 새빨게진 코를 몇번이고 찬물로 씻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나도 울었다. (나도 여자였군..ㅋ)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
어쩌면 나도 '강해'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눈물은 사회생활의 아마추어 같은 행동이라는 공식을 세워놓고
이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일을 하다가 거지같은 일도 많이 겪고
더러운 꼴도 많이 보지만
그때마다 눈물을 삼켰을 뿐. 눈물이 나지 않았던건 아니다.
그래...
누구나 나처럼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은 없으니까.
그리고 누구나 강하지는 않으니까..
너무 내 기준으로 생각했다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이해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눈물 콧물 짜며 배우는 것도 과정이니..
그래도 개인적인 부탁인데...
가급적 직장에서는 눈물은 거두어주길.
대한민국 직장인 모두
속으로는 피눈물 흘리며 사회생활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차라리 뻔뻔함과 당돌함으로 무장한
여성이 되길 바란다.
지금 보니
그게 훨씬 더 섹시하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