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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미련이 남을 때

                                                                                                                                                                                                                                                                                                               

여자는 남자와 헤어진 지 3개월이 지났다.

지난 3년간 남자를 정말 사랑했지만 

다들 그러하듯이 그들을 이별을 했다.

이별을 통해 마음이 힘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릴 때처럼 울고불고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쁘게 살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집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아무런 계기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했다.

괜찮다 싶었다가도 한번씩 가슴이 아려왔다.

다른 남자들의 접근이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 언제까지 마음이 힘들까...

사무치게 외롭고 그리운 순간에도 여자는 바쁜 일상으로

텅 빈 가슴을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렀고  헤어진 지 6개월.

정말 괜찮아질 무렵, 새벽 1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톡, 어디니ㅡ

그의 메시지를 보고 여자는 혼란스러웠다.

- 그도 나를 잊지 못한 걸까.

- 우린 어쩌면 헤어지면 안 되는 관계가 아닐까.

- 우리가 헤어졌던 건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에피소드 같은 건 아닐까.

여자는 남자의 연락을 받았주었다.

통화를 다시 하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안부를 물었다.

예전처럼 허물없이 친근하진 않았지만 약간의 낯선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 잘 될지도 모르겠다고.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만나 좀더 성숙해진 사랑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누구나 헤어졌다 만나고 하는 과정은 겪으니까.


이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는 불안 속에서,

남자는 술에 취할 때마다 전화를 했고

여자는 전화를 받았다.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혀가 꼬부라진 그의 음성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사람도 힘들었구나. 이 사람도 외로웠구나.

내가 너무 독했었나...


그런데 어느 밤부터 남자로부터 연락이 오질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기를 본다. 

혹시 새벽에 전화가 온 것은 아닐까.

부재 중 전화는 없었다.

하루는 여자가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

남자는 받지 않았고 여자는 자존심 챙기는 문자를 남겼다.

ㅡ 나도 술 좀 취해서 전화했어. 미안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길을 걷다

남자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사귈 무렵 함께 몇 번 본 사이다.

반갑게 인사하는 그로부터 남자친구는 생겼냐는 질문을 받았다.

남자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쿨해 보이고 싶기도 해서

가장 적당한 대답을 찾았다.

"아직 고르는 중이지 뭐"

친구가 말한다.

"역시~잘 나갈 줄 알았어. OO이도 여자친구 생겼던데"


가슴이 뛰었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눈은 쳐다보지 못한 채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 잘 됐네.."


여자가 관계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는 동안

남자는 저울질하다

과거가 후회스럽지 않을 여자를 찾은 것이었다.


여자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남자와 다시 잘 되지 못한 것이 화가 난 건지

혹시나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미련함에 화가 난 건지 모른채

여자는 그렇게 또 마음을 차갑게 꽁꽁 닫아버렸다.


이별을 하고 미련이 남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며,

함께 있던 익숙함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이별 후에 사랑했던 사람의 연락을 차단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의 감정, 마음을 차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끝을 경험한다.

어릴 적 학교 문방구 앞에서 산 병아리의 죽음부터

전학을 하면서 떨어지게 된 소꿉친구.

짝사랑하던 오빠가 여친이 생겨 접게 된 마음.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 뿐만 아니라

결국 맞게 될 부모님과의 이별.

우리가 끝내야 할 삶까지도.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우리는 모든 존재와 이별을 해야 한다.


우리가 떠나는 그 시점,

죽기 싫어 발악을 하며 생에 집착을 보이는 죽음

한 평생 잘 놀다 간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감사함으로 마무리하는 죽음

우리는 어떤 죽음, 어떤 이별을 택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별을 연습하는 이유이다.


이별해도 너무 슬퍼할 것은 없다.

죽는다고 해서 삶을 살지 않은 것이 아니고

의미 없는 것이 아니듯이

이별했다고 해서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만남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불가피하게 다가올 그 모든 이별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이별을 하고도 쉽게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금방 다른 사랑을 시작하므로써

이별의 고통을 생략하는 케이스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100% 감정을 정리하고 헤어지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미련이란 우리가 '사랑'이라는 걸

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아픔을 품은 채 살아가며

아픔에 무뎌지는 것 그것이 이별이다.

그래서 미련이 남는 것도 괜찮다.


마음 속 미련을 

술김에 다시 한번 상대를 마음을 뒤흔드는

발악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래도 내가 사랑을 하긴 했구나라며

나 자신을 위로할 것인가


서툴거나 멋지거나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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