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그리고 세잔 @노원문화예술회관 노원아트뮤지엄
멀리 불암산이 보입니다. 불암산 하면 떠오르는 일이 바로 불암산에 가면 명예주인 최불암씨의 멋진 자작 시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 죄스러움의 세월,영욕의 세월 /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중략)…터무니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 용서하십시오.”
https://love.seoul.go.kr/articles/3173
몇 년 전에 '서울 둘레길' 도전에서 불암산 둘레길을 걸었었는데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니 더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기는 중계동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노원문화예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는 작품이 있네요.
요즘 '케데헌' 때문에 이 호랑이가 인기 급상 중이긴 하죠~
표현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현천 호랑이, 조영철, 채색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 LED 조명, 200 × 122 × 70cm, 2025
〈당현천 호랑이〉는 전통적 상징인 호랑이를 오늘의 도시 풍경 속에 되살린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예술에서 호랑이는 잡귀를 막고 복을 불러들이는 수호자이자, 때로는 정의와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해 왔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성을 바탕으로, 당현천을 거니는 시민들이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친근한 동반자로서 '호랑이'를 구현했습니다. 금속과 빛으로 제작된 조각은 민화 속 호랑이가 지녔던 익살과 보호의 의미를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내며, 지친 일상 속 시민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전합니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 신화와 현실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기능하며, 오래된 상징이 새로운 공공 공간에서 공동체와 소통하는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 2025 NOWON MOONLIGHT WALK
입구부터 기대하게 만드는군요~
1870년대 프랑스, 예술가들은 찰나의 색과 공기, 그리고 물 위에 반사된 빛 속에서 눈앞의 현실보다 더 본질적인 '빛의 인상'을 포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형태의 재현보다, 눈으로 본 순간의 감정과 색의 떨림을 화폭에 담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The Israel Museum, Jerusalem) 소장품 중 모네,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세잔 등 11인의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원화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빛으로 세상을 본 화가들의 시선"을 노원아트뮤지엄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전시는 작품수가 많아야 좋은 전시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상징적인 작품들로 미술사를 이해 하는 방식도 설득력 있었다. 똑똑한 기획을 한것 같다.
1874년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드가를 비롯한 여러 독립예술가들이 (살롱)에 입선 못해 독자적인 전시를 열면서 '인상주의'가 탄생했다.
'후기 인상주의'는 1880년대후반 보다 지속적인 주제를 추구하며 구성과 표현에서 제각각 다른 접근방식을 취했다. 세잔은 분석적이고 구성적으로, 고갱은 더 상징적이고 감정적으로, 반고흐는 더욱 개성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874년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를 비롯한 여러 독립 예술가들이 공식 연례 공무 전 《살롱》에 연이에 입선하지 못하자 독자적인 전시를 열면서 탄생했다.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총 여덟 차례의 인상주의 전시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 속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들은 시골 풍경, 주거 공간, 근대적 일상을 그리며,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급격한 신업화와 도시화에 반응했다. 이들의 색채와 붓터치, 구성의 확신, 그리고 주제 선택은 미술의 이론과 실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으며 세기의 전환기에 회화 혁명을 이끌었다.
1880년대 후반에 이르자 인상주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제각각 다양한 방향으로 저 신의 예술을 이끌어갔다. 이들을 '후기 인상주의'라 부르며, 그 선두에 근대미술의 위대한 혁신가로 평가되는 폴 세잔, 폴 고갱, 반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가 자리한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보다 지속적인 주제를 추구하며, 구성과 표현에서 제각각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세잔의 경우보다 분석적이고 구성적으로, 고갱은 좀 더 상징적이고 감정적으로, 반 고흐는 더욱 개성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이번 전시는 인성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발견되는 세 가지 주요 주제 '수면 풍경과 반영', '도시 풍경, 자연, 인물이 있는 전경', '인물과 정물'을 탐구한다.
프랑스, 1839~1906
개인적 격변과 예술계로부터 단절 속에서도 세잔은 집요할 만큼 회화 실험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기법을 완성해 갔습니다. 1880년대는 세잔의 예술적 기초가 확립된 결정적인 시기로 평가됩니다.
1870년대의 어두운 색조를 밝히고, 평행선과 점선으로 덩어리감을 구축하는 구성적인 붓질로 형태를 안정화했으며, 점차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으로 조절된 빛과 그림자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강가의 시골 저택, 1890년경 폴세잔, 프랑스, 1839-1906, 캔버스에 유채, 81 × 65cm
세잔은 자연을 통해 받은 감각을 새로운 시각적 질서로 전환하며, 균형 잡힌 견고함을 신중하게 추구했다. 이 작품은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된 집을 화면 중심에 두고, 양쪽에 키 큰 나무들을 배치했다. 물줄기가 감상자와 풍경 사이를 가로막으며 장면을 관조의 대상으로 만든다. 겹겹이 쌓아 올린 사각형과 직사각형의 구조적 붓질이 깊이감과 부피감을 구현한다.
초대 바롱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의 딸 미리암 알렉산드린 드 로스차일드 컬렉션
예루살렘의 야드 하나디브 기증
프랑스, 1863~1935
폴 시냑은 파리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882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미술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인상주의를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과 직접 만나고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1884년 조르주 쇠라를 만나면서 쇠라가 개발한 작은 점들로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방법인 점묘주의를 배웠습니다.
1891년 쇠라가 세상을 떠난 후, 시냑은 규칙적인 붓질, 과학적인 색 이론, 옛 거장들의 그림 구성 방법 등을 저술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예인선, 사모아의 운하, 1901, 폴 시냑, 프랑스, 1863-1935, 캔버스에 유채, 82 × 66cm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익힌 화가 시냑은, 1884년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점묘주의) 기법을 받아들였고, 쇠라 사후에는 이 화풍의 핵심적인 옹호자로 자리했다. 그는 '과학적 회화'로서의 신인상주의가 인간의 진보와 기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반영한다고 믿었다.
이 빛으로 충만한 강의 풍경에서, 시냑은 산업 근대성의 상징인 증기 예인선(曳引船)을 물과 하늘, 빛의 유희와 결합시켰다. 순수한 색채를 모자이크처럼 분할해 그린 〈예인선, 사모아의 운하〉는 파랑과 노랑, 보라와 주황 등 보색의 생생한 대비를 통해 완성도 높은 신인상주의 화법을 보여준다. 화면 위에서 진동하는 색채는 황금비로 정교하게 구획된 대칭 구도 속에서 고전적 균형을 이룬다. 여기에 연기와 해안선의 리드미컬한 곡선이 부드러움을 부여한다.
텔아비브의 사라 마이어가 남편 모세 마이어를 추모하며 기증
수면에 나타난 반영(反映)과 빛의 유희는 인상주의 회화의 핵심 요소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현상의 찰나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대체로 밑그림 없이 직접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아카데미 화가들이 추구하던 역사적•종교적 주제나 매끈하고 완벽한 표면에 반발하며, 색채와 빛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일시적인 효과와 그것이 색깔과 부피를 인식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고자, 형태와 그림자를 작은 붓터치들로 분해했다. 또한 사물 고유의 색이 대기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기에 극적인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를 제한했다. 그들은 세상을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며 현실을 직접 인식하고자 했다. 이런 태도는 특히 동일한 대상에 집중한 채 시간대, 계절, 날씨 같은 요소에 따라 변주해 그리며 자연에 대한 현실의 감각을 전달한 연작에서 두드러진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을, 이상적 형태가 아닌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상과 감각을 재현하고자 했다.
퐁투아즈의 공장, 1873, 카미유 피사로, 프랑스, 1830-1903, 캔버스에 유채, 38 × 55cm
피사로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일하는 풍경을 자주 그렸는데, 이는 전통적인 이상화된 풍경화로부터 분명한 이탈이었다. 1873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우아즈 강변 퐁투아즈에 위치한 한 공장을 그린 것으로, 피사로가 새로 확장된 이 산업 현장을 그린 네 작품 중 하나이다.
목가적인 조화 대신 근대적 삶의 현실을 정면으로 그려내 산업화를 예견한 초기작인 셈이다. 이 작품의 구도는 자연의 요소가 아닌 세 개의 굴뚝이 리듬감 있게 배치된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힘찬 붓질로 표현된 굴뚝은 산업화가 농촌 풍경을 바꾸어놓는 양상을 상징한다. 단단한 건물과 흩날리는 연기, 실체와 반영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병치한 이 구도는 산업화가 자연을 재편하는 과정에 대한 피사로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는 넓고 생생한 인상주의적 붓터치로 자연의 유기적 형태와 산업 구조의 평면적 형태 사이의 긴장을 포착했다. 대다수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피사로는 근대화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현대 회화의 시각 언어 속에 통합했다.
캐나다의 이스라엘 박물관 후원회를 통해
몬트리올의 사이디 로즈너 브롱프만 재단 기증
프랑스, 1841~1927
아르망 기요맹은 1841년 2월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조금 나은 삶을 꿈꾸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물랭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열다섯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혼자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삼촌의 옷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기요맹에게 예술의 도시 파리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낮에는 생활비를 벌고, 이른 아침이나 주말에만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1857년부터 1880년대 후반까지 약 30년 동안, 그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당시 많은 파리 시민들이 주말이면 도시 밖으로 나가 자연을 즐겼는데, 기요맹도 그 시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센 강가의 풍경, 1882년경 아르망 기요맹, 프랑스, 1841-1927, 캔버스에 유채, 60 × 100cm
아르망 기요맹은 1880년대 후반까지 육체노동 일자리를 전전하며 여가 시간에만 붓을 들 수 있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그는 파리 아방가르드의 핵심 인물이 되어 1874년부터 시작된 대부분의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했다.
1882년작 《센 강가의 풍경》은 동료 인상주의 화가들과 구별되는 기요맹만의 '사회적 인상주의'를 보여준다. 그는 낭만적 고독이나 부르주아적 여가 대신 강가에서 화물 하역과 준설 작업에 매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했다. 이 장면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파리 외곽의 현실을 포착하여, 자연과 도시가 충돌하는 지점을 향한 화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미국-이스라엘 문화 재단을 통해 뉴욕의 조셉 메이저 부부 기증
강가의 풍경, 1890년경 아르망 기요맹, 프랑스, 1841-1927, 캔버스에 유채, 65.5 × 81.7cm
기요맹은 신인상주의나 상징주의 같은 새로운 예술 운동이 대두하던 격동의 1880년대에도 여전히 중도 인상주의 화가로 남아 있었다. 1890년경 제작된 〈강가의 풍경〉은 부르주아적 여가와 산업적 진보가 공존하는 장면으로, 공장 굴뚝이 자연을 정복해 가는 근대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식적으로는 일시적으로 변하는 빛의 효과보다 색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기요맹의 변화가 드러난다. 이런 밝음은 빛의 일시적 변화가 아닌 색채의 배열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인상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 기요맹은 결혼으로 개인적 안정을 찾았는데, 화가의 낙관적 정서 탓인지, 이미 근대로 향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상주의적 감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박물관 후원회에 뉴욕의 거 트뤼드 포이어링 유증
풍경은 그 자체로 있지 않다. 매 순간 변화하는 것이 풍경이므로
For me, a landscape does not exist in its own right,
since its appearance changes at every moment.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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