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알바를 하다가 모르는 할아버지와 친해져서 저녁을 얻어 먹고 왔다.
주에 한두번 정기적으로 와서는 테이블오더로 주문하기 전에 꼭 직원을 불러 오늘의 추천 메뉴를 소개해달라고 하던 그 할아버지는 여느 날 밥 한 번 먹자고 동생을 꼬여냈다. 이렇게만 들으면 사뭇 이상한 이야기인데,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는 예상을 조금 벗어났다.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의 상징인 동네에 얼핏 봐도 여든을 웃도는 연세에 깔끔한 매무새의 옷과 중절모를 쓰고 혼자 식당에 들어서, 착석과 동시에 모자를 벗어 곱게 두고 정중하지만 상냥한 말투로 오늘의 메뉴를 물어왔다고 한다. 초반에는 알러지가 있으신지, 씹기 불편하시거나 맵고 짠 음식을 싫어하시는지 등을 몇 번 묻다가 수 주 째 방문하시고부터는 동생이 알아서 저번 주에는 면을 드셨으니 오늘은 밥을 드시는 게 어떠냐며 겹치지 않게 다양한 메뉴를 추천했다.
항상 혼자 식사를 하시더니 수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친구분을 모시고 오셔서는 여느때와 같이 메뉴를 추천 받고 추천 메뉴를 그대로 시키신 후, 학생이 항상 너무 친절하게 대해서 밥을 꼭 한 번 사주고 싶다고 시간이 될 때 연락을 달라며 연락처를 남기고 가셨단다. 워낙에 흉흉한 세상이라 동생을 만류하고도 싶었지만, 몇 달을 지켜본 동생이 어련히 알아서 선택하겠지 싶어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고만 일러두고 약속에서 돌아오는 동생을 기다렸다.
약속을 마치고 들어온 동생이 제법 상기되었으면서도 다소 지친 기색을 보이길래 조심스레 식사는 어땠냐고 물었다. 동생은 할아버지는 너무 똑똑하고 멋진 분이셨고, 동시에 너무 불쌍한 분이셨다고 간단히 말하면서 또 동시에 너무 신나게 수다를 떨어 지쳤다고도 덧붙였다. 꽤 오래 사업을 하시며 부를 축적해 오셨던 할아버지는 자식들과 손주들의 유학, 이민 비용을 다 지원해주시면서도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내분 없이 혼자 한국에 남아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동생과 함께한 식사 메뉴는 (내겐 조금 의외였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였다. 해당 브랜드의 - 특히 그 메뉴-를 너무 좋아하시는데, 북적북적한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매장에 혼자 앉아 그 메뉴를 시켜 먹을 자신이 없어 수년 간 방문을 못하셨다면서 함께 밥을 먹으러 와주어 너무 고맙다며 신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댔다.
사회 초년생인 동생에게 초년생을 위한 투자 공부 방법, 사회생활 기본은 물론이고 자녀들에 대한 푸념과 부모님께 잘하라는 약간의 잔소리 등... 동생이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전해 듣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다채로운 주제들로 시간을 보냈길래 외로운 할아버지의 좋은 말동무가 되어드렸구나 싶어 새삼 전해듣는 나도 즐거웠다.
한가지 간과한 사실은, 우리 집에도 그러한 중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을 둔 아버지는, 동생이 친절을 베풀었던 외로운 그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점점 친구가 없어지는 외로운 중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조금 더 에너지가 넘치던 나는 퇴근하고 돌아와 직장에 대한 푸념, 대학 때 친구 누구가 어땠더라는 수다를 아버지와 종종 떨곤 했는데 어느새 퇴근하고는 기운이 없어진 나는 함께 하던 시간들을 줄여 '내 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점점 외로우셨으리라.
사실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직업과 연령의 특성상 젊은이들과의 접점이 적어지는 아버지는 한창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기 시작한 자녀들과는 조금씩 대화 주제의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 내가 너무 존경하던 총기는 예전만하지 못했고, 평생 안 보이던 고집스러운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감성적으로는 더 여려졌고 또 동시에 그걸 티내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도 보여 쉬이 말을 보태지도 못했다.
고백하건대, 너무 명백한 핑계지만,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충분히 해내고 증명해보이고자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들어온 욕심 많은 딸내미는 밖에서 가끔 보는 외로운 노인에게는 친절함을 베풀 수 있으면서도 평생 가정에 헌신한 아버지에게는 손을 내미는 것에 인색했다. 말도 못하던 갓난 아기, 혼자 힘으로 뭐 하나 해낼 수 없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세상을 모든 것에 불만이던 청소년기를 거쳐 이제 겨우 한 사람의 몫으로 세상을 살아내기 시작한 자식들은, 우습게도 청춘을 불태우고 한 풀 꺾인 아버지를 '더 이상 말이 안통한다'는 안일한 핑계로 덮어놓고 가끔 밥 한끼 하는 것으로 가족간의 정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힘이 필요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젊음을 불살랐다가도 언젠가는 저문다. 뭣도 모르고 성장하던 나를, 우리를, 묵묵히 지켜내던 아버지를 위해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천천히 저물어가는 그의 곁을 먼발치에서라도 꾸준히 지켜낼 힘이 필요하다.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