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 가운데 서서

by 전대표

아침 출근길에 아들이 "아빠, 가지 마" 하고 떼를 쓰며 울었다. 간신이 떼어놓고 가려는데, 이제는 "아빠, 가"하고 떠다 민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떠미는 아들을 두고 문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잽싸게 뛰어와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더 크게 울었다. 그런 아들을 품에 안고 한참을 다독이다가 귓가에 대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세상을 다스리러 가는 거야. 아빠가 세상과 싸우지 않으면, 아빠도 세상에 있는 수많은 바보들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될 거야. 아빠가 바보처럼 사는 것보다,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는 게 좋겠지?"

그리고 사무실에 왔는데, 동료의 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은 남편과 저녁밥을 먹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다가 갑자기 스르르 뒤로 넘어갔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54세. 한창 일해야 할 나이였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세요."

장례식에 다녀온 동료가 내게 이야기한 말이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참 허무하다."하고 이야기했다.

만일 내가 오늘, 혹은 내일 죽는다면 어떤 것을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하는지 잠자코 고민해보았다. 가족에게 손편지를 쓰거나, 아버지와 남편의 이름으로 책을 집필하거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써, 아들로서 해야 할 이야기들을 고이 담은 영상이나 노래를 남겨두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에 지인과 함께 시작하게 된 피트니스센터 사업을 이야기드렸다.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손자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그래. 사업도 좋고 일도 좋은데 자식이 먼저다. 우리 손자가 잘 커야 사업도 잘 되고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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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2009년 1월이었다.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수영을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수영을 하고 나와서 샤워하다가 쓰러지셨다는 거였다. 58년생이신 아버지가 52세 되시던 해에 발생한 일이었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계시던 주변분들이 신고를 하고 인공호흡을 해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뒤로 쓰러지셨으면 뇌진탕으로 위험했을 텐데, 다행히 앞으로 쓰러지셨다. 하지만 앞니가 모두 부러지는 바람에 50대 초반부터 틀니를 하셔야 했다.

"한 번 쓰러지고 나니, 다음에 쓰러지면 그때는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구나."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었다. 내 나이 26살 때 일이었다.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결제해서 이용하고 있다. 3개월 무료 이용 후 유료로 전환된다고 하는데도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3개월이 지나는 사이에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먹을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유료결제가 될 것이고, 알게 모르게 매달 만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소소하게 매월 자동 이체되는 돈은 일시불로 결제하는 큰돈보다 더 아깝다.

나에게 있어 유튜브는 간단한 정보 검색용 앱이다. 활자중독이 있어서 활용가치가 높지 않았고, 영상매체에 대한 관심도 적은 데다,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의 무대이므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튜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을 바에야 낮잠이나 한 숨 더 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보다 꽤 괜찮아서 잘 쓰고 있다는, '신뢰할 만한 지인들'의 권유로 한 번 써보기로 했다. 무료 서비스 기간이 종료되기 며칠 전에 알람 설정을 해둔 채 무료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의외로 광고 없이 쓰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검색하는 단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활용 전에 검색한 단어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광고 없는 뽀로로

뽀로로 1시간

뽀로로 키즈

맛있게 먹자

영화음악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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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리미엄을 이용하고 난 뒤 검색한 단어들의 순서다.

일리아드

하버드 수업

헬스 식단

세바시

성공철학

프린스턴 강의

일리아드 강해

고흐

오디오북


세상을 떠난 그분이 자신의 마지막이 오늘이 아닌 어제였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왔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매 순간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 모든 것들에 작고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통치란 법을 만드는 권한을 의미한다.(중략) 어떤 것이든 처벌을 가하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식만 가능할 것이다. 법원이나 법무장관에 의해서이거나 아니면 군대에 의해서. 또는 집행관의 강제에 의해서이거나 아니면 군사력의 강제에 의해서.

-페더럴리스트(연방주의자) 1장 15번


죽음은 만물의 통치권자다. 죽음 위에는 어떤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인간, 나아가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죽음이라는 법을 피할 수 있는 생명체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세상과의 단절, 나아가 가족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족은 모든 단위 중에서 가장 상위에 존재하는 최소의 기관이다.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더 정직한, 순수한,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에 순응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이처럼 함께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손을 잡고 담소를 나누던 수많은 시간들을 그저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는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차갑게 식혀주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변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마음의 상태는 없다.'는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죽음 이후에 남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애써 외면하며 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항상 죽음을 앞에 두고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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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의 권유로 공동경영을 하게 된 피트니스센터는 차후 한국을 넘어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꿈꾸고 있는 사업이다. 완벽에 완벽을 기한 사업계획서가 필요하기에 지인에게 사업계획서 작성을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응했다. 이제 2달여간의 사업계획서 기획 프로젝트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사업이라는 게 계획서대로만 진행될 리는 없으나, 사업계획서는 중요한 순간에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핵심 기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업에는 사업계획서가 있듯이, 살면서 필요한 기준점이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언젠가 흙으로 사라질 시간의 육체화라는 것을 안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의 '진아'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서 육체와 정신과 의식과 자각을 모조리 분해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생물을 생물답게 하는 속성, 즉 '존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만 남게 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 '존재의 핵'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꽃과 나비, 나무와 돌덩이 그리고 인간마저도 이 존재의 핵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수많은 연기가 모여 우주의 형상을 이룬다. '존재의 핵'이란 바로 우주의 중심인 '진아' 그 자체다.

이 존재의 핵을 제외한 모든 것은 실은 허상이다. 우리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육신과 감각, 사고와 지능, 돈과 명예, 능력과 재능까지도 모두 잠시 빌린 것이며 어딘가에서 우연히 얻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공적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라는 생각은 아무런 근거도 실체도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왜 리더인가 197P, 이나모리 가즈오, 다산북스


매일 감사 일지를 쓰는 동안, 이전에 없던 감사가 마음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억지로 적어 내려 가던 감사 일지가 지금은 진정한 감사가 되어 빼곡하게 노트를 채운다. 볼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피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죽음과 삶 가운데 존재하는 것들 중에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 감사 외에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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