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서 만난 가족의 소중함

함양 독채펜션 "백년전에"

by 전대표

지난 달이었던가.

가족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투병 중이신 아버지를 모시고 싶어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서 가족 모임을 가지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마땅히 좋은 펜션을 찾기가 어려웠었다. 그러다 누나가 주변에서 꽤 괜찮다 '카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봤다고. 사진으로만 봐도 분위기도 좋아 보였고,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2025년 12월 28일부터 2026년 1월 1일까지 '2년에 걸쳐' 진행된 우리의 가족여행 이야기. 함양 한옥 독채펜션 "백년전에"에서.


함양은 자주 간다.


거래처가 있는 곳이라서 매주 방문하는데, 주말에 방문한 함양은 꽤 조용했다.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 도시 자체가 원래 작고 조용한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마다 방문하는 곳이라 익숙한 느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휑하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약간의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안동에서 줄곧 살아온 나는, 함양의 한적한 느낌이 한편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들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에 무척 좋은 도시라고 느껴질 만큼.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용한 도시가 좋다.

가만히 걸으며 생각하기도 좋은 거리라고 느껴질 만큼.

도시의 크기, 활기,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상관없는, 그 고즈넉하고 아늑한 풍경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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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름이 좀 헷갈렸다.


백년동안?

백년후에?


백 년 전에 있었던, 백 년 전에 먹던, 백 년 전에 생활했던, 그 음식과 생활 양식을 현대식으로 재구성한다는 취지랄까. 음식도 건강식이었고, 직접 참나무를 잘라서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방식으로 생활이 가능했다. 작은 양계농장을 운영하시는데, NON GMO로 직접 건강식과 약재를 먹여서 키운 닭이 낳은 소량의 달걀을 유통하시는데 전국에서 가장 고급 계란이라고. 정말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렇게 생활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이름이 금방 외워졌다. (다음엔 안틀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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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이 넓다.

다들 숙박하는 곳 앞에 주차를 하다 보니, 차가 2대 있었던 우리 가족은 내 차만 주차장에 주차했다. 혼자 주차하니 주차 대란 문제가 없어서 좋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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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곳이 카페.

숙소 전체가 저렇게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날씨에 소나무가 푸르게 둘러싸고 있으니 어찌나 운치가 좋던지.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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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카페와 포토존.

오른쪽으로 가면 숙소가 있는 펜션과 산책로.

숙소마다 아궁이가 있는데, 거기서 고기를 구워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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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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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숙소.

바닥이 어찌나 뜨끈뜨끈하던지, 걸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뜨끈뜨끈했다.

이부자리 펴놓고 배 깔고 자니 온몸에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옛날 외할머니 댁에서 지지던 그 느낌을 간만에 느껴봤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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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 있던 나무 문과 똑같은 문이 있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문이었다. 지금이야 한옥에 있는 나무 문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불과 내가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런 문은 그리 낯선 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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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외풍이 있고, 종이로만 붙이면 추위를 견딜 수 없으니, 얇은 비닐? 커버?를 씌우고 위에 한지를 붙였다. 두꺼운 철문이 달려 있는 호텔의 따뜻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는 예상하고 방문한 건데 감안해야 하지 않겠나. 방이 따뜻한 데다 이불도 넉넉하게 챙겨주셔서 그다지 문제는 안되었다.


대신, 문고리 안쪽은 많이 찢어져 있어서 테이프로 붙여두었다. 안쪽에서 풀 먹인 한지를 붙이는데, 손등이 닿아서 찢어지기 일쑤다. (외할머니 집도 그랬는데, 여기도 역시나...) 그래도 정겨운 건 사실. 보기보다 침대도 편안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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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도 넉넉하고, 베개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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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굽기 위해 숙소 뒤편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는데, 굉장히 두꺼운 참나무가 있었다. 고기를 구워야 하니 불판을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나무를 주셨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불소리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정말,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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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궁이처럼 되어 있는 공간에서 고기를 구웠는데, 숯이 익기 전까지는 고기가 잘 익지 않아서 조금 낭패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아궁이의 속이 꽤 높아서 잘 익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나무가 숯이 되니 그야말로 숯 향기가 진한 고기가 구워졌다. 배고픈 아기들은 가스버너에서 후닥닥 구워서 주고, 엄마, 누나, 아내, 그리고 나는 숯불에 구운 고기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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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문도 직접 만들어서 달아놓으신 듯.


사모님이 너무 스타일이 좋으셔서 혹시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시냐고 여쭤봤는데, 남편분이 그림을 그리신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아드님이 오셔서 참나무에 대해 설명도 해주시고 불도 직접 지펴주시는 걸 보니, 아마 가족이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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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쌓여 있는 수많은 참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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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조용한 절의 분위기를 풍기는 듯한 저녁의 아름다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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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굽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숙소 뒤편.


여기에서는 흙판에서 테이블을 깔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두었는데, 말 그대로 흙바닥이었다. 시멘트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따뜻함, 왠지 모르는 포근함, 그런 느낌들이 무척 좋았다.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쩌나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던지, 너무너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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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와 장갑도 준비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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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아프리카에 있을 때 마시멜로를 처음 불에 구워 먹어 본 적이 있었다. 살살 녹는 달콤함이 맛있긴 했지만, 체지방으로 축적이 되면 잘 안 빠진다 '카더라'. 그렇다 보니 선입견이 생겨서 즐겨먹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주 간만에 불에 구워 먹는 듯한데, 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대단히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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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서 불을 쬐면서 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40대가 되어버린 나.

칠순을 바라보는 아버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법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쉽지 않다. 쑥스러운 것도 쑥스러운 것이지만, 안동에서 태어나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다가 은퇴하신 아버지와,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인 끼가 있어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내가 나누는 대화는 깊은 단계로 나아가진 못 했던 것 같다.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조잘조잘,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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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산수 쪽지 시험에서 남들은 다 80점, 90점을 받았는데, 나는 10점을 받고, 20점을 받고, 30점을 받았다. 리코더 실기 시험을 치는데 나 혼자 리코더를 불 줄 몰랐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7살, 8살이던 나는 5학년이 되어서도, 6학년이 되어서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늘 똑같은 고민 속에서 살았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왜 공부해야 하는가'


너무 어린 나이에 철학적인, 어쩌면 순전히 애늙은이 같은 생각만 하고 살았기에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공부를 포함해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가족끼리 아침밥을 먹는 식탁에서 아버지는 "이 새끼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하고 소리치셨다.


지금도 생생한 그때 그 장면.

그때 박힌 비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냈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아물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자존감이 낮았고, 마음이 약했으니까. 아버지도 그저 아들이 걱정이 돼서 하신 말씀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40을 넘은 지금도 나는 아버지에게 쉼 없이 내 자랑을 한다.


"아버지, 이번에 부장이 되었어요."

"또 책을 한 권 썼어요."

"어떤 회장님이 저보고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시네요."

"어떤 대표님이 저보고 회사를 맡아서 운영해달라고 제안을 하셨어요."

"이번에 어느 단체에 대표가 되었어요. 그냥 감투 하나 생긴 거죠, 뭐."


남들에겐 잘 하지도 않는 자랑을, 아버지 앞에만 서면 쉼 없이 떠들어댄다. 딱히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 자랑을 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그 속에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꼭 묻고 싶었던, 한 가지 질문이 숨어 있었다.

절대, 절대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질문.


"아버지, 저도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입니까?"

"누나는 공부 잘했잖아요. 노래도 잘했고, 인기도 많았고, 공부도 잘했고요. 저는 누나랑 반대였잖아요. 공부도 못했고, 학벌도 좋지 않고, 나이 들어서 하는 것마다 실패했고, 그저 책 몇 권 써서 작가가 되었다는 것 말고 대단할 것 없는 인생을 사는 아들이잖아요. 그런 저도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입니까?"




모든 것에 사람의 손길이 묻어 나왔다.

대단히 매끄럽게 만들어지지는 않은 듯한 이음새도, 흙빛의 발판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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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지은 집이라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아름답기에 부족한 단점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느낌이랄까. 직접 만든 듯한 싱크대의 문, 흙벽, 모든 것들이 나무와 흙으로만 지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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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이니만큼 인적도 드물었다.

인근 회관에서는 크리스마스 겸, 새해맞이 겸 멋지게 조명 장식을 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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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의 함양 거리는 서울과 부산, 혹은 울산과 같은 대도시의 새벽과는 많이 다르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간밤에 비까지 내려서 거리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조용한 함양의 거리는 쌀쌀하고, 한편으로는 따뜻했다. 겨울이지만, 겨울답지 않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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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앞으로 바라보이는 앞은 울창한 소나무로 가득하다.

겨울에 바라보는 소나무는,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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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없는 떡국.

아침에 부랴부랴 떡국을 해먹었다.

저녁엔 소불고기를 먹고, 남은 고기를 떡국에 넣어서 먹었다.

심도가 꽤 깊게 찍힌 사진인데, 지리산 가까운 함양에서 떡국을 먹으니 어찌나 맛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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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찍은 숙소. 한자로 月이라고 쓰여있다.

월, 화, 수, 목, 금 순으로 숙소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방 2개, 화장실 2개, 주방.

성인 5명에 아기 3명 정도는 충분히 지낼 만한 크기다.


1월 1일이 되자 날씨가 엄청 추워졌다.

-9도?

체감온도가 -15도라고 하니, 군대에서 훈련받던 때 날씨 정도 되는 듯했다.

그러려니, 하면서 카메라 들쳐매고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


숙소 바로 앞에 작업실이 하나 있었다.

공방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

사장님이 직접 나무를 자르고, 도구를 만드시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 하나 있으면 꽤 멋진 인생이 만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방에 딱히 관심은 없지만, 작품들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가만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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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소쿠리인 듯하다.

직접 짜서 만든 듯한데, 시계랑 절묘하게 색이 맞는다.

금속과 새끼를 꼬아서 손으로 짠 도구의 만남.

색감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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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이렇게 필요한 도구들도 걸어두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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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망에 걸려 있는 도구들이

그 사람의 성격과 전문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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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나무 패서 글씨도 쓰고, 다듬고, 깎고...

참 멋진 인생이구나.

평생 예술작품을 만드는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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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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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한 컷 찍어보았다.

투명한 슬레이트로 가벽을 만들었는데, 직접 보면 꽤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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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도 역시 한옥이다.

한약방으로 쓰였던 곳인지는 모르겠는데, 약재를 담아두었던 수납장? 약장? 도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소품을 직접 보니 신기했다.

한약방에서도 있는 것 같던데, 나는 잘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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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카페 앞.

시골에서 볼 법한 아궁이가 있다.

예전에 뮤지컬을 할 때 시대 배경이 과거인 작품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소품으로 쓰던 물동이가 여기에

서는 실제로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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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도 한옥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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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도 직접 제작하신 것 같다.

나무를 자르고, 글자를 새기고, 못을 박고, 걸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그 모든 행위들.

카페를 방문한 투숙객에게 향이 좋은 다크초콜릿과 직접 구워서 꿀을 바른 호두를 간식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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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이 숙소였는지, 사장님 내외가 거주하시는 집인지는 모르겠다.

참나무로 담벼락을 만들어 세워두었는데, 곳곳에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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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톱으로, 도끼로 잘라서 옮기고, 쌓고, 해머로 쳐서 고정시키는 그 모든 과정들이 모여서 지금의 담벼락을 만들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참나무의 향기를 가진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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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도 널 수 있도록 빨래 건조대도 설치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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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장점이란 이런 거겠지.

당연히 장단점이 존재하겠지만,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한옥 펜션이다 보니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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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설치한 빨래 건조대 너머로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꼭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나무와 같다.


25살 때 나는 아프리카에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노을이 지는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에서 항상 그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그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나무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면서 20대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내 인생을 꾸려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무 너머로 해가 지고 나면 숙소로 돌아와서 성경을 읽고, 책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영어 공부를 했다. "100년 전에" 펜션에서 바라본 나무와 그네가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그 사색의 시간들을 다시 보여주는 듯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것 같은 나무. 이 나무도 겨울이 지나면 또다시 푸르른 잎사귀들을 맺겠지. 그때까지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으련만, 내 바람이 어디까지 이루어질지는 오직 신만이 알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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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에는 오래된 나무그네가 하나 있었다. 약간은 기울어진 듯한 나무 그네. 누군가는 나무 그네에 앉아서 사랑을 속삭일 것이고, 누군가는 여기에 앉아서 인생의 마지막을 되새겨 볼 것이고, 누군가는 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과자를 먹고, 누군가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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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때 지리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경찰이 된 친구 J와 전국 일주를 갔다가 지리산에 올라갔는데, 지리산이 그렇게 힘든 곳인 줄은 몰랐다. 여행 중에 들른 곳이었기에 종주 개념은 아니었고, 그냥 들른 김에 올라가보자는 정도. 아, 힘들었다. 당시엔 싸이월드를 주로 사용해서 싸이월드에 그때 찍은 사진들을 다 올려두었었다. 싸이월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24살 크리스마스에 그 친구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다. 3일에 걸쳐 35킬로가 넘는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마지막 날 천왕봉 정상에 오르니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었다.


"혹시 특전사 출신이세요?"


젊은 대학생 두 명이서 쉬지도 않고 거의 뛰어오르다시피 지리산 종주를 하는 걸 보고 물어본 것이었다. 우리는 다만 길을 잃을까 봐 무서워서 빨리 올라간 것일 뿐이었는데, 그들은 우리가 특전사 출신인 줄 알았던 거다.


등산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풀 장착'을 해온 친구 J와 달리, 나는 등산의 ㄷ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리산 종주를 한다면서 흔해 빠진 등산 스틱 하나 없이 지리산에 갔다. 게다가 등산화도 아니고 트레킹화를 신고 갔던가. 지리산에 오르기 전 입구에서 3천원인가, 5천원을 주고 스틱을 하나 샀는데 당일 오전에 부러져 버렸다. 지리산 종주를 뒷산 오르듯이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천왕봉을 오르던 마지막 날 새벽,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거의 못 잤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다리가 심하게 부었는데, 그 상태로 천왕봉의 정상을 올랐다. 앞사람 뒷꿈치만 보면서 겨우겨우 움직이고 있는데, 앞서 올라가던 J가 외쳤다.


"뒤 돌아봐."


아.


2007년 12월 27일 새벽 4시 50분.

그 때 본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당연히 카메라로 찍었으나, 도저히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장면을 AI의 힘을 빌려서 이미지로 생성해봤는데, 그 때 봤던 장면을 거의 비슷하게 연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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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코스로 올라갈 때는 3일이었는데, 내려오는 데는 반나절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리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지리산에서 내려와 안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나의 무지 때문에 평생 불구로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는데, 몇 일 잘 먹고 잘 자니까 금방 낫긴 하더라.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이는 걸 보니 정말 지리산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은 3대가 덕을 쌓지 못하면 오르지 못하는 산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라고 생각했는데, 20대 때 오른 이후로 한 번도 지리산을 올라보지 못하고 있다. 기회가 없었다고만 이야기할 순 없다. 정말 지리산은 아무나 오르지 못하는 산인가 보다, 싶은 생각도 든다. 기회가 되면 또 올ㄹ...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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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을 바라보는 아버지.

가족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아내시는 아버지.


어제는 온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일종의 유언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셨다. 누나는 펑펑 울고, 나는 가만히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솔직히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억울한 마음도 있었고, 속상한 마음도 있었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억울한들, 답답한들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왜 신은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왜 신은 아버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봤자 운명이라는 말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만히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하루 종일 착잡한 마음이 들면서도, 막내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버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소망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돼서 감사한 마음도 있다. 작고 여윈 등을 보니 젊은 시절 강인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서 다소 어색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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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져 온 숙소 앞 소나무 풍경들. 새벽과 다소 다른, 조금은 따뜻한 풍경처럼 느껴지지만 이때도 -6도와 -7도를 왔다 갔다 하는 날씨였다. 대단히 추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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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벗겨진 신발들을 보니 우리가 참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는 마음이 든다. 저 작은 크록스가 점점 커지고, 한 켤레가 줄어들고, 또 한 켤레가 줄어들고. 이 녀석들도 친구들이 생기고, 여자친구가 생기면 친구랑 여자친구랑 끼리끼리 여행을 떠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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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종이를 접어서 사촌 동생에게 주는 아들의 손놀림을 보며 참 감사했다. 이제는 스스로 색종이로 미니카도 접을 줄 알고, 탱크도 접을 줄 알고, 장미꽃과 하트도 접을 줄 안다. 점점 자라나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아이가 자랄수록 나도 점점 나이가 들고 늙어가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내는 어머니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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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윷놀이판도 있다. 윷놀이를 한 번 못 해본 게 아쉬운 마음도 든다.

(자세히 보니 윷놀이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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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어가니 여행지에서 받아 온 듯한, 수많은 자석 스티커들이 칠판과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단지 장식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이 벽에 장식되어 있었다. 파타고니아, 네팔, 인도, 유럽 등등 다양한 국가의 장식품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여행을 다녀오신 것인지, 아니면 이런 장식을 좋아하시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을 반겨주는 듯한 이 모든 장식물들이 나에게도 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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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현판도 대나무를 깎아 직접 글자를 쓰셔서 장식해 두셨다. 모든 것이 사람의 손길로 이루어져 있다. 조각난 마룻바닥의 삐걱거리는 나무조차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척 아늑하게만 느껴졌다. 겨울이라 다소 추운 감은 있었지만, 여름이 되면 시원하게 음료수 한 잔 마시면서 바람을 쐬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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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를 튀겨서 꿀과 설탕을 묻힌 호두튀김이 무척 맛있었다. 다크초콜릿도 아주 맛있었고. 조카와 아들이 더 먹고 싶어 하니까 사장님께서 다크초콜릿과 호두튀김을 각각 통에 나누어 담아주셨다. 군고구마도 주셨는데, 쫀득쫀득한 것이 아주 맛있었다. 친절한 아드님과 어머님의 사이가 무척 좋아 보여서 우리도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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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유자차도 맛있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빈속을 채우고 마지막 여행을 마무리했다.


내려오는 길에 아들이 이야기한다.


"아빠, 우리 봄에 여기 또 올까?"


이번 여행이 너무 좋았단다.

사촌 동생들이랑 노는 것도 신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엄마, 아빠랑 좋은 추억도 쌓고.


그래, 봄에 또 오자.

봄이 올 때까지 다들 건강했으면.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많은 추억을 쌓기로 다짐해 본다.




언젠가 서양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의 지부장님께서 내게 시를 한 편 소개해 주신 적이 있다. "나는 오늘도 속옷을 갈아입는다"였던가. 불치병 진단을 받은 어떤 어르신의 이야기였다. 항암치료를 받다 보니 괄약근의 근육이 약해져서 자주 실수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속옷을 갈아입으면서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매 순간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 (찾아보니 안 나오던데... 역시 시는 어려워...)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밤, 나도 시를 한 편 써보았다. 이 시간이 조용히 흘러가기를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제목 : 비


아버지.

오늘은 비가 오네요.

하늘에서 촉촉한 비가 내려요.

비가 땅을 적시는 만큼,

딱 그만큼 깨끗한 세상이,

깨끗한 공기가

선물처럼 주어지겠지요.


아버지.


혹시 아버지도

아들이었던 적이 있으셨나요.

그럼, 아버지도

첫사랑의 풋풋함이 있으셨나요.

아버지도

목욕탕의 뜨거운 온탕 속에서

등에 물을 끼얹어 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나요.


아버지가 주무실 때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잘 자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하고 속삭여 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나요.


오늘은 유독,

아들의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세상의 전부인 아버지,

그 곁에서 곤히 잠든

아들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속삭여 봅니다.


너는 세계 최고의 아들이야.

엄마 아빠의 힘이고, 소망이고, 기쁨이야.

저도 아버지에게

그런 아들이었겠지요.


밤이 깊어갑니다, 아버지.


따지고 보면 죽음이란 것이, 사실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모른다. 죽음의 판정을 받는 순간, 그때부터 인간은 비로소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길가에 핀 꽃들의 향연을 기뻐하고,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지는 들풀을 보고도 생명의 존엄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그러나 때로는 너무나 신적인 인간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죽음의 심판인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교만도, 어리석음도, 부를 향한 갈망도 의미가 없다. 오직 숨결이 바람 되어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밖에 없다. 남은 가족, 친구, 친지, 동료들의 위로와 슬픔 가운데 죽은 자만이 영원한 안식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날 뿐이다. 마치 텔레마코스가 멘토르의 형상을 한 아테네와 함께 배를 타고 밤이 맞도록, 새벽에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듯, 죽음은, 감사를 알게 해주는 먼 여행을 우리 앞에 선사하는 위대한 선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