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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Jul 30. 2024

오직 한국에만 있는 육군 보사노바

어서와 조빔은 처음이지?

높은 산 깊은 골~


라떼는 이런 노래가 없었던 것 같은데... 2020년 즈음부터 육군훈련소에서 기상 음악으로 보사노바 Red Blouse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으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앨범 Wave (1967)에 수록되었던 곡입니다.


육군훈련소 스트레칭 노래 (Red Blouse - Jobim)


아마 육군훈련소 정훈실에서 누군가가 "경쾌하면서 잔잔한 연주곡"을 찾다가 보사노바를 고른 것 같은데 하필 훈련소라는 억압된 공간 그리고 이 곡만의 특이한 코드진행 두 가지 요소가 맞물려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요상한 결과물이 탄생했습니다. 더 킹받는 부분은 잠도 덜 깼는데 구령에 맞춰서 스트레칭을 하는 방송과 같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금부터 기상 후 스트레칭을 실시하겠습니다. 침구류를 정돈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하며, 무리한 힘과 반동을 주지 않고 설명에 맞추어 자유롭게 천천히 실시하겠습니다[…]



이 곡을 접한 신병들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것도 이해가 되는데, 조빔의 보사노바 중에서도 특히 불협화음을 많이 집어넣은 실험적인 곡이라서 그렇습니다. 코드를 뜯어보면 여느 보사노바처럼 Maj9 코드로 평범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복잡한 디미니쉬(dim), 서스펜디드(sus) 코드가 사용되며, B부분에 와서는 거의 불협화음만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팝이나 올드재즈에서 사용되는 진행이 아니라 그림으로 치면 근대미술 같은 진행을 사용했기 때문에, 화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어딘가 독특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Red Blouse가 수록된 Wave (1967) 앨범은 당시 재즈신에서 이름을 날리던 베이시스트 Ron Carter, 스트링 편곡자 Claus Ogerman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으며, Red Blouse에서 경쾌한 드럼비트를 담당한 사람은 Milton Banana라는 보사노바의 교과서적 드러머입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트리오를 결성해서 좋은 음반들을 여럿 남겼습니다. 감상하시면서 육군훈련소의 PTSD를 치유하시기 바랍니다.


Cidade Vazia - Milton Banana 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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