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고, 교회 찬양팀에서 연주하기도 좋고, 나중에 가족 밴드 세션이 되고 싶기도 해서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악기가 그렇듯 초보가 스트레스를 악기 배우며 풀긴 어렵다. 소리도 잘 안 나고 연습량은 생업 때문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드럼 쥐는 손가락에 힘도 없어서 자꾸 마이크 잡는마냥 새끼손가락이 들려 드럼스틱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신기한 건 힘을 빼야 드럼스틱을 더 잘 움직일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치는데 내 드럼 소리는 마치 '떽' 이런 느낌으로 울리지 않고 멈췄다.
선생님의 드럼 스틱은 나비처럼 날아서 가볍게 스네어드럼을 벌처럼 쏘았는데, 소리가 맑고 강렬했다. 그 드럼 스틱은 뭔가 스프링이 달린 듯 드럼 몸체에 닿자마자 가볍게 튀어오르는 반동을 보여줬다.
가벼운데 소리가 크게 나다니?
나는 '떽' 인데 선생님은 '탕' 또는 '쳉' 이라니?
Why?
게다가 나보다 두 달 먼저 드럼을 배운 아들은 자기가 나보다 더 잘한다며 으스대거나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허 참 나.
선생님한테 이르니, 아마 아이들이 더 잘할거라고 하셔서 풀이 죽었다. 어른들은 몸이 좀 굳어져서 쉬이 안 풀리는 반면에 아이들은 그대로 흡수하고 그릇된 습관이 없어서 더 빨리 는다는 거다. 요모조모 조합해 보면 우리 아들은 그런 면에서 박자천재 같아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반동은, 손목 스냅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유연한 연체 동물처럼 손목에도 힘을 빼고 드럼스틱의 헤드만 스네어드럼 중앙에 명중시켜야 했다. 오래 헤드를 대고 있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으니까 탕 탕 튕겨져 올라와야 한다.
물론 초보인 내가 그런 반동 효과를 단 시간에 볼 순 없었다. 어떤 일이든 시간과 노력이 투자돼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집에 와서도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사실상 드럼 레슨도 겨우 시간내서 가는거라 귀카피와 눈카피로 버텼다. 유투브를 보며 드럼 치는 사람의 스킬을 눈여겨 보고 음악을 들을 때도 드럼 소리만 찾아 들었다. 신기한 게 사람이 뭐에 꽂히니 그것만 들리더라. 선택적 필터링 효과는 대단하다.
한 15년전 나는 밴드보컬로 활동했었다.
무대를 사랑하는 체질이라 보컬 역할도 썩 맘에 들었었지만(내가 또 한 노래하니까ㅎ) 본격 연습에 돌입하기 전 세션끼리 오부리? 혹은 잼을 맞춰보며 합주하는게 너무 부러웠다. 뭔가 나는 끼어들 수 없는 그들만의 신묘한 세계가 참 궁금했다.
그 당시에도 피아노는 칠 수 있었으나 악보대로 카피하는 수준이지 뭔가 즉흥적인 애드립은 불가한 실력이어서 영 아쉬웠다. 그 때 느꼈던 나의 아쉬움은 왜 어릴 때 다른 악기(예: 바이올린)를 안 시켜주셨을까 하는 부모 원망으로 갔다가 내가 번 돈으로 해금을 배우고 국립국악원에서 공연 한 번 때리고 내려오는 3년의 몰입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그것도 벌써 10여년 전이다.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여하튼 악기에 대한 나의 욕망과 갈급함은 멈추지 않았다. 최근 2년간 남편이 일렉기타에 미치는 바람에 더 뽐뿌가 왔다.
'와~ 합주하고 싶다'
휴대용 조그만 드럼패드나 전자드럼패드도 구매했지만 연습이 쉽진 않았다. 그나마 힘이 되었던 건 선생님의 무한 칭찬과 인정이었다.
"밴드보컬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박자감각이 좋다"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너무 잘하니까 진도 쭉쭉 빼자"
"두 달 후에 하산하자"
등등 없던 실력도 이끌어내는 진정한 코치, 선생님의 우쭈쭈 장단 덕분에 중도 포기 없이 석달 가량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젠 얼추 리듬을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내 고개가 건들건들하고 애드립도 시도해보려는 모양새가 그 반증이다. 아직은 여전히 필인이나 솔로 탐탐 리듬을 연습하는 초보수준이다. 하지만 드럼 좀 때리고 나면 이제 스트레스는 풀리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드럼을 치며 내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조금씩 빼는 방법을 익혀가는 것이다. 나는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면 자꾸 숨을 멈추는 경향이 있다. 숨은 적게 쉬며 몸에 힘은 잔뜩 들어가니 늘 뭉치고 피곤하다. 하지만 악기 연주, 특히 드럼 칠 땐 박자와 함께 호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