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평소처럼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오빠한테 카톡이 하나 와있었다.
- ㅇㅇ아 아빠 아프시니까 전화 매일매일해요.
반쯤 감긴 눈으로 답장을 했다.
- 아빠 왜?
- 아프셔 요즘
- 왜?
- 몸 안 좋으시잖아
- 감기 같은 거 아니고?
- 응
이보다 애매할 수 없다. 경황이 없었지만 내 몸은 자동으로 화장실 앞에 서있었다. 세수를 하려는데 눈물이 계속 나와서 한참이나 울고 세수하고를 반복하다 정신을 차렸다. 아, 회사 가야지. 그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기계적으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런 내모습이 생경하고 속물적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현생은 살아야지. 우선 운전을 하며 회사를 가는 15분여간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왜 얘는 말을 애매모호하게 해서 사람을 더 걱정시키는 거야? 얼마나 아픈 건지, 왜 내가 매일 전화를 해야 되는데? 오늘 내일 한다는 건가?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전화를 많이 해놓으라는 말인가? 엄마는 역시나 연락이 없군.’
결국 생각이 정리되긴커녕, 어느 곳에서도 답을 얻을 수 없는 나 혼자만의 끊임없는 질문들로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외할머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내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말하지 않았고 그때도 오빠만 내게 짧은 카톡을 보냈다. 부모님과 그 일로 전화를 한 건 가족들이 상을 다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준비를 하고 나서였다. 남들은 이해 못 하는 우리 집의 이상한 배려심 같은 건데, 하도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학업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 보니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걱정하고 신경 쓰일까 부모님이 그저 무슨 일이든 알아서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나와 언니 오빠도 부모님이 걱정할 만한 일은 굳이 알리지 않았다. 결국 서로 고통받는 유해한 문화지만 우리는 이미 혼자 속 썩이는 게 익숙하다.
회사에 도착해서 머릿속을 비우고 일에 집중하려는데 두어 시간이 지나자 다시 생각이 났다. 아빠한테 전화를 할 자신은 없어 우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무척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엄마는 갑작스러운 내 전화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안부를 물었다. 엄마가 먼저 아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게 분명해 보여 내가 먼저 물었다. 아빠 괜찮냐고. 오빠가 얘기해줬다고 하자 엄마는 걘 뭐 그런 얘기를 너한테 하냐며 잠깐 구시렁거리더니 금세 자연스럽게 화두를 돌렸다.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의도가 너무 뻔해서 나도 그냥 넘어갔다. 사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인 걸 알기에.
짧은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 앉아 한국행 비행기 표를 검색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야 한다면 티켓을 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렇게 나는 일어나서 오빠의 문자를 본 지 4시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 최악인 건 아직도 아빠가 얼마나 아픈지, 정확히 어떻게 안 좋은지 아무도 내게 사실대로 말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지만.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서 일에 집중했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회사에 혼자 남아 잔업을 했다. 일을 하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지지만 집에 가면 계속 아빠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그렇게 일주일 내내 일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집에 오면 바로 잤다. 유난히 잠이 엄청 오고 많이 피곤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우울하거나 걱정이 많아지면 그렇단다.
오빠한테 연락을 받은 그날 아침 제임스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제임스는 평소 성격답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는 것보다 쓸모없는 건 없다며, 우선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 괜히 혼자 골머리 썩이지 말라는 나름 건설적이고 뼈아프게 현실적인 충고를 해줬다. 그날 저녁엔 존에게 똑같이 내가 처한 상황을 얘기했다. 짧은 문자를 나눈 후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존은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때부터 거의 10년을 알고지내기도 했고 제임스와 성격이 정반대라 이 문제에 대해 굉장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으로 접근했다. 자기가 열여덟 살 때 의붓 아빠를 잃었던 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얘기해줬다는데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아빠를 싫어해도 우린 피가 섞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는 내 아빠라는 것. 사실 무엇보다 내가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던 걸 기억하는게 제일 신기했다. 그리고 50여 분을 잠결에 비몽사몽 통화를 했다.
“내가 진짜 속상하고 화나는 게 뭔지 알아? 아빠가 아픈 건 솔직히 신경 안 써. 아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때(만큼 어린 나이)부터 아팠고 우리 가족들은 다 아빠 병수발에 익숙해. 근데 내가 정작 자길 필요로 할 땐 없더니 이제 늙고 아프니까 나를 자꾸 찾잖아. 엄청 이기적이지. 난 그걸로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는데. 졸업하고도 한국에 오라고 비행기 티켓까지 다 사놨었어. 근데 난 여기서 내 커리어 쌓고 싶고 여기 있고 싶어서 지금까지 안 간 거야. 아빤 아직도 틈만 나면 나에게 돌아오라고 설득을 하고. 근데 난 걱정돼. 내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고등학교 때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엄마가 날 데리러 온 적이 있거든. 아빠는 그때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있었어. 조퇴를 하고 엄마가 날 식당에 앉혀놓고 하는말이, 너네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세근이 안 나서 아빠 없이 엄마가 혼자 너희를 키워야 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래. 그게 내 wake up call이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난 그 후로도 철이 안 들었지. 그때 내가 정신 차리고 아빠에게 잘했어야 하는데. 아빠가 너무 싫어서 한때는 아빠가 내 인생에서 없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어. 지금은 주말마다 전화도 하고 사이도 좋지만 이런 적이 처음이야. 이번에 한국 갔을 때 처음으로 아빠랑 시간을 많이 보냈어. 근데 당장 아빠가 지금 죽는다면 난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잖아. 아마 아빠는 알았을 거야 자기한테 남은 시간이 많이 없다는 걸. 그래서 나한테 자꾸 한국에 오라고, 얼른 결혼하고 아기도 낳으라고 그런 건데 나는 싫다고 그걸로 매일 싸웠어. 난 여기서 일하는 게 좋아서 한국 가기 싫고 결혼도 하기 싫고 애도 낳기 싫다고. Does it make me a bad daughter? I don't know.”
제임스랑 전화할 땐 차분했던 감정이 갑자기 북받쳤다. 가쁘게 숨을 내쉬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존은 더 감정적으로 달랬다. 그 후로는 다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전화를 끝날 때쯤엔 하도 웃어서 입가가 뻐근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미루고 미루다 용기를 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 연결음이 지루하리만큼 길게 울리고 나서야 아빠가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목소리가 훨씬 안 좋아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싫어 아프냐는 얘긴 꺼내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걸 걱정하는 아빠와 내가 걱정하는 걸 걱정하는 아빠를 걱정하는 나. 언제부터 우리 부녀가 이토록 애틋했던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메어지는데 아빠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대답에도 성의가 없었다. 그렇게 짧은 전화를 끝내고 나니 후련함과 동시에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나도 안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물론 나는 오억만 리가 떨어진 타지에 있어서 그마저도 못하는 아쉬운 딸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난 밖에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마시는 술이 좋았고,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가출에, 경찰에, 학교도 몇 번이나 잘릴 뻔했다. 내가 담배 피우는 걸 엄마에게 처음 걸린 날 아빠가 들어오면 넌 끝이라는 엄마의 말에 잔뜩 쫄아있었는데 아빠는 그날 결국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아빠는 내게 담배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술은 좋아했지만 비흡연자인 아빠가 담배 피우는 걸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내가 처음 유학을 간 초등학생 때였다. 짐을 싸 들고 집 밖을 나서는데 마당 구석 그늘에서 아빠가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줄담배가 뭔지도 모를 만큼 어린 나이였음에도 나는 땅에 떨어진 무수히 많던 담배꽁초들을 보고서 어린 딸을 비행기로 11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에 두고 와야 할 아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남들에게 내 얘기를 할 만큼 한 것도 같고 가족들 중 그 누구도 나에게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을 마냥 걱정하고 있을 수도 없다. 다만 오랜만에 겪는 이 무력감과 우울감이 낯설다. 술 담배와 약이 없이 맨 정신으로 겪으니 그 깊이가 더하다. 그래서 더 내일 출근이 기다려진다. 얼른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내일도 기계적으로 눈을 뜨고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면 길고 긴 주말이지. 이토록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던 때가 있던가. 할 수만 있다면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싶다.
울긴 왜 울어? 니가 뭘 잘했다고 울어? 부모 죽었어?
사고 치고 혼날 때 항상 엄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