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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 Jan 28. 2021

예술가를 알면 작품이 보인다,
<방구석 미술관 2>

예술가를 알고, 작품을 이해하고, 미술관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임을 밝힙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기 전, 박물관학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삼청동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해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를 관람했다. 관람하는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낯설다’는 것이었다. 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한 데 모아놓은 전시장에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라고는 고작 한두 점에 불과했다. 


나름 미술에 관심이 많고 미술사나 화가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해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미술에 한한 것이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벽에 걸려 있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고 전시 의도와 내용을 찬찬히 살펴봐도,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외에 작품에게서 다른 감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한국의 화가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반 고흐는 아는데 김환기는 왜 모를까?”로 시작하는 이 책 <방구석 미술관 2>는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책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이중섭과 나혜석, 백남준 정도를 제외하면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이우환과 같은 화가들은 나에게 이름 정도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들이었다. 


미술관에서 이들의 작품을 마주쳤을 때 ‘아! 이게 김환기의 그림이구나!’ 하고 반가움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깊이 있는 감상을 하기엔 너무 낯선 이들이었다. 작품에는 화가의 인생과 가치관이 녹아들어있기 마련인데, 가치관은 커녕 전반적인 삶의 궤적에 관해서도 알고 있지 못했으니 작품을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환기, <론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



이 책은 얼핏 화가의 이름은 들어본 것 같지만 작품도, 인생사도 잘 알지 못하는 한국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아주 편안한 톤으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해준다. 김환기가 ‘환기’로, 나혜석이 ‘혜석’으로 불리는 이 책은 우리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이 유명한 예술가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란 가까운 삶이었음을 깨닫게 하고, 그만큼 그들이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이중섭이 정성을 들여 그려낸 수십 장의 ‘편지 그림’에서 가족을 자신의 인생의 전부로 여길 만큼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생계를 위해 두 차례나 꿈을 접고 생업에 뛰어들었던 유영국의 삶에서 꿈보다 현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책을 읽다 보면 이들에게 친밀함을 느끼다 못해, 전쟁과 같은 시대 상황에 휩쓸리고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맞서면서,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본인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험난한 환경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며 그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들의 열정이 절로 전해져 온다. 


예술을 위해 삶의 기반이 되었던 것들을 전부 포기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김환기, 제대로 된 예술 교육을 받을 돈이 없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며 끝내 자신의 특색을 구축한 박수근, 일평생 시련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그 시련을 도리어 예술로 승화해낸 천경자의 인생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다 보면 가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워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응노, <군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



이토록 친밀하게 다가온 예술가들의 인생 이야기는 뜨겁게 남아,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마디로, 그들의 작품에서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에 분명히 담겨 있는 것들을 알아보고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책을 다 읽은 후,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에 걸려 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이 책에서 소개된 화가들의 작품들 중 다수가 있었고, 그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의 작품에서 그들의 일생과 세계관이 읽혔다.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여기 있다. ‘모르는 사람’이었던 예술가들을 ‘잘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작품을 작품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작품에 담겨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게 되는 순간 미술관의 재미와 매력을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니, ‘방구석’ 밖의 진짜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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