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심을 전하는 법

이슬아,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by 담화

솔직히, 이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조금 많이 웃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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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격식 맞춰서 제대로 잘 써야 하는 게 맞지. 요즘은 정말 ‘형식’이란 게 왜 필요한지를 애써 가르쳐줘야 하나 봐. **년 전, 학교에서 학생들을 보며 일할 때만 해도 요즘 애들은 왜 이러나 싶었는데 그 요즘 애들이 어른이 된 지금은 더 심한가 보네. 이런 지극히 밥맛 없는 어른의 눈으로 편견 잔뜩 담은 평가질을 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토로부터 해 두어야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다.

그래도 확신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이슬아 작가잖아. 분명히 형식의 필요성 그 이상을 이야기하겠지. 이슬아라는 이름은 보험이 아닌 보증수표 같아서, 어떤 책을 골라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준다. 그건 그가 쭉 지속해 온 성실한 글쓰기와 자신의 태도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자신감 있는 문장 덕분이다. 수많은 글에서 발견하곤 하는 추측의 보조 형용사가 그의 글에는 현저하게 적다. 아니, 아예 없는 것… 같기도 하고(나부터도 내가 하는 말에 자신이 없…).

여하간 자신이 하는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확실하게 보이는 문장이 희귀한 시대라, 이슬아의 문체가 유달리 힘 있게 느껴진다. 건조하고 쨍쨍한 가을의 볕처럼.


전화 예절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아마 나와 동년배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는지, 사회에 나가 제 몫을 하게 되어서는 상사와 거래처와 기타 등등을 상대하며 하루에도 몇 시간씩 전화를 붙잡고 있게 됐는지…)

이메일은 제법 쓰기는 했고 지금도 쓰고는 있지만, 궁금해지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메일 쓰기, 메일링 서비스로 자신의 설 자리를 만든 이슬아가 이메일 잘 쓰는 법에 대해서 가르침을 전수해 주겠다는데 어떻게 안 듣죠.


총 열여덟 개의 챕터를 통해 자신의 필승 비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복희 여사님은 어떻게 이렇게 자녀를 잘 키웠지부터 시작해서, 어쩜 이렇게 알아서 잘 컸지라는 탄식으로 맺게 되는 이 허술한 감상을 어쩌면 좋을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10대의 패기로 자신이 끌어다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와서 노희경 작가와의 실제 만남을 성사시켰던 경험담이다.

그의 말마따나 네가 유명한 사람이어서 누구나 네 섭외에, 메일에 긍정적인 답을 하지,라고 비딱하게 응수할 미래의 독자를 향해 이슬아는 경쾌하게 수긍한다. 정말이지 일리 있는 말이라고. 그래서 자기가 뭣도 아니었을 때 어떻게 섭외(?)에 성공했는지를 수치사의 위기를 기꺼이 감당하며 공개한다. 자신의 진심을,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의 치부마저 공개하는 용기와 패기라니. 존경스럽다. 나라면 절대 못 한다. 안 한다. 그러나 이슬아는 한다. 그런 이슬아를 어떻게 안 좋아하고 안 존경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쓴 문장은 단순히 유려한 필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습관적인 역지사지와 수신자에게 먼저 주는 애정까지가 한 세트다. 내 길목이 아닌 그대의 길목까지 미리 가서 서 있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게 좋은 문장이란 말이다. -14쪽


그해 여름 나는 당신에게 열광하다가, 급기야 말을 걸다가, 이메일 주소를 수소문하다가, 말을 고르고 또 고르고 지우고 새로 쓰다가, 답장을 기다리다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당신 쪽에 가까워지고 싶은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당신이 응답해 주기 전에도 그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70쪽


그래서 복희님의 미감에 맞는 특수문자를 함께 고민해 주었다.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 그의 피드백을 들어가면서 ^^를 지나치고(중년들이 너무 흔히 써서 싫어) ^.^도 지나치고(얼굴이 너무 홀쭉한 느낌이야) :)도 지나치고 (뭔지 모르겠어) 결국 ^_^에 다다랐다(딱 적당히 예쁜 것 같아). 그날 이후 복희님은 미소를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문장 끝에 ^_^를 사용한다.

이게 다 이메일에 소리가 없어서 하는 짓들이다. 소리 없는 문자언어에 어떻게든 뉘앙스를 담아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애처롭고 귀엽다. -258쪽


이 책을 읽고 나도 업무상 주고받는 메일을 다시 한번 열어보았다.


늘 그렇듯, 상대를 호명한 뒤 추운 겨울날 무탈히 지내고 계실까요, 로 시작하는 안부를 묻고 작업의 현재진행형과 스케줄을 주고받은 뒤 또다시 다시 연락드릴 때까지 부디 건강히 잘 지내고 계세요, 로 마무리짓곤 하는 평범한 메일이었다.

마침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마음이 좀 말랑말랑해져서일까. 때마침 보내야 하는 메일을 조금 다르게 써 보았다. 혹여라도 제 마음이 다칠까 봐 늘 상냥하게 다듬은 리뷰를 주시는 *** **님, **님의 사려 깊은 조언 덕분에 훨씬 좋아진 ***를 보면서 이런 성장의 계기를 주심에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집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신이 도착하면 굉장히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메일함을 열어보게 될 것 같다.



뱀발. 이건 정말 쓸데없는 사족이 맞지만, 그래도 웬지 덧붙여 두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귀인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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