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갈 수 있지만 언제나 갈 수 없는 제주민속오일장
나에겐 장모님의 땅 제주.
매해 수차례 제주를 찾는다. 제주의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가 보았다.
하지만 얼마 전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언제나 갈 수 없다는 그곳을 집사람과 함께 가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런 곳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서울 사위에게 가장 큰 충격 쇼크를 안겨준 '제주민속오일장'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가고 싶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매월 2, 7로 끝나는 날에만 열리는 오일장이다. 옛말대로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다. 2, 7, 12, 17, 22, 27일 에만 온다.
장날에 차를 가지고 간다면 주차를 위해 꽤나 시간을 소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제주를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시간은 투자할 만하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시장에 들어선다. 시장 양쪽 끝으로는 음식점이 들어서 있고 야채부, 수산부, 종합부, 청과부 등 품목별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었다. 집사람은 이게 뭐 신기하냐고 물어보는데 서울에서 태어나 군대까지 서울에서 보낸 나에게 이곳은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더군다나 제주시에 상설시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동문시장, 서문시장 등 규모 있는 상설시장이 있고 오일장 근처에 대형마트도 즐비한데 이런 재래식 오일장이 지금도 유지되고 사람들이 몰리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반찬집을 보니 시장에 왔다는 실감이 확 든다.
시장에선 장모님, 장인어른과 똑같은 말투로 이야길 나눈다. 신기하다.
제주 사람들은 어쩜 저리 제주 방언을 잘 할까?
배우고 싶어서 집사람에게 몇 번 물어봤으나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
이래서 부모들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나보다.
빨리 제주어를 마스터해서 제주도 내려가 살아야 할텐데...
멜(멸치의 제주 방언)을 보니 집사람과의 멸치와 멜에 대해 토론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 (무슨 대화를 하다가) 멸치가 멜이 자나
집사람: 아니야! '멸치'랑 '멜'이랑 달라! 시장 가면 '멜'이라고 완전 큰 생선이 따로 있어!
나: 아닌데... 멸치 제주 사투리가 '멜'인데...
그런데 실제 '멜'을 보니 멸치와 '멜'을 헷갈리는 게 이해가 된다.
난 멸치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진심이다.
구경하다 설마 저런 걸 팔아? 하고 생각되는 곳도 보인다.
굼벵이, 지네...
진짜로 굼벵이 및 각종 곤충(?)들을 팔고 있다.
도시남자는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디다 쓰는 걸까?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허기가 살짝 온다.
시장표 튀김으로 허기를 채운다.
약간 허기만 채운다는 게 먹다 보니 한 끼 식사를 해버린다.
집사람과 예전에 데이트할 때도 간식 사러 편의점 갔다가 2~3만 원어치 먹을걸 사서 나오곤 했다.
엥겔지수가 높은 집은 다 이유가 있다.
탐라 아스파라거스 아이 탐나
순대 하면 역시 제주 순대!
나는 사람들에게 제주도에 가면 꼭 제주 순대국밥을 먹고 오라고 한다.
서울에서 먹는 영혼 없는 당면 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육감적인 색감의 돼지 껍데기와 머리 고기를 보자 이미 입이 반응한다.
시장 여기저길 안내해주던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어렸을 때 시장에 오면 닭도 팔고 개도 팔았는데...
그런데...
진짜 닭도 있고 개도 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저 닭들은 산채로 사가는 걸까?
잡아서 손질해서 가져가는 걸까?
산채로 사간다면 어떻게 가져갈까?
손질해서 잡아가면 저 닭장에 닭들은 가족, 친지가 도살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걸까?
닭들의 트라우마는 누가 책임질까?
개들은 식용일까? 애완용일까?
애완용이었다가 식용으로 전환되나?
도축된 개고기도 팔 텐데 키워서 먹는다면 어떤 기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키워먹게 할까? 등등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얼마 전 집사람한테 자기네 집에서도 어렸을 때 집 베란다에서 닭을 키웠다는 말을 들었다.
베란다에서 신문지 깔고 쉬아하고 있으면 옆에서 닭이 지켜보고 있었다며...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그 닭을 잡아 백숙을 해놔서
어린 마음에 울면서 맛있게 먹었다는 그녀의 회고는 나 같은 도시남자에겐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이다.
곳곳에서 관광지에선 느낄 수 없는 제주만의 모습이 넘쳐난다.
픽미픽미픽미업!
재료를 고르면 뻥튀기로 만들어주는 오더 메이드 뻥튀기부터
노래방 정품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어른팟까지...
그 어떤 관광지보다 함축적으로 제주를 보여주는 장소라 생각한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제주민속오일장
제주시 민속오일장 말고도 세화, 서귀포, 대정 등 지역별로 오일장이 열린다.
하지만 어느 곳도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언제나 열려있진 않다.
바로 이 점이 오일장이 갖는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