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관찰기> 폴바셋편
브랜드 로고타입이 매체와 적용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건 맞는걸까?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고 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이라고 측면에서 봤을 때, 상황에 따라 예외를 두고 로고타입이 변화하는 건 괜찮은 걸까? 이러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고 기준을 제시해야하는 브랜드 관리자들과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항상 고민되는 문제다. 브랜드의 일관성과 유연함 사이에서의 고민들이 최근 폴바셋의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몇 달 전 코엑스 삼성역 지하에서 폴바셋 간판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던 폴바셋의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기때문이다. 빨간색 크라운 모양의 마크와 핸드라이팅한 로고타입이 조합된 개성 강한 브랜드 로고의 이미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곳이 ‘폴바셋’이 아니라, ‘폴바넷’같은 짝퉁 커피 브랜드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전에 느꼈던 브랜드 이미지와의 격차가 너무 컸다.
관련 뉴스를 검색해보니 작년 11월에 리뉴얼을 단행했다고 한다. 고객이 보다 쉽게 매장을 찾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적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규모감이 느껴지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건 장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반대로 독특하고 차별화되고 독특했던 이미지는 많이 약화될 것 같았다. 물론 폴바셋 측에서 문제라고 느꼈던 매장 간판의 시인성과 디지털 기기에서의 적합성은 분명 개선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변화의 이유가 명확하고 합당하지만 기존 이미지에서 바뀐 이미지로의 자연스러운 변환이 아쉽기는 하다.
이렇게 폴바셋의 브랜드 리뉴얼에 대한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이번 주말 이른 아침 강남역에서 폴바셋 매장을 다시 만나고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일정이 있어 부근 커피 전문점을 찾아다가 삼사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PAUL BASSETT라는 대문자 로고타입이 보였다. 리뉴얼 전의 조그맣게 적용된 핸드라이팅 로고타입이었다면 절대 눈에 띄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도심의 빌딩 사이에서 힘있는 고딕계열의 로고타입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객에게 보다 가까이'라는 브랜드 리뉴얼에 대한 설명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었다.
물론 내부 매장에 들어서면 외부와는 적용 상황이 많이 다르다. 외부에 썼던 PAUL BASSETT이라는 고딕 로고타입이 들어 간곳이 거의 없다. 앞으로는 어떻게 적용성을 넓혀갈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테이크아웃 종이홀더 정도가 유일해 보인다. 머그컵 등의 굿즈 제품에도 일부 적용이 되긴 했지만, 그걸로 전체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진 못한다. 그 외에 패키지 디자인, 냅킨, 주문을 위한 키오스크 등 내부 각종 사인물 또한 기존의 크라운 마크와 핸드라이팅형 로고타입이 시각적 중심을 이루면서 사용되고 있었다.
리뉴얼된 크라운 마크의 경우에는 마크 안의 문안을 삭제하고 핸드라이팅 로고타입과의 비율을 축소해 크라운 마크의 상징성을 강조할 수 있게 조정했다. 기존에는 로고타입의 크기가 컸다면, 리뉴얼되면서 크라운 마크가 훨씬 커졌다. 이는 새롭게 추가된 PAUL BASSETT 대문자 로고타입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핸드라이팅 로고타입도 고딕형 로고타입도 둘 다 도드라진다면 시각적으로도 무척 혼란스러울 것이다.
폴바셋이 2009년 론칭했으니 벌써 십 년이 넘어간다. 2014년 스타벅스 리저브가, 블루보틀이 2019년에 국내 처음 론칭했다는 걸 감안하면 스페셜티 분야의 국내 선도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여전히 폴바셋이 외국에서 건너 온 브랜드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매일유업이 만든 순수 국내 커피 브랜드다.
스페셜티라는 커피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바리스타의 이미지를 브랜드화하는 전략만큼 효과적인 게 있었을까 싶다. 바리스타가 자신의 사인을 손으로 휘갈겨 쓴 듯한 로고도 의도한 컨셉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런 브랜드를 대표하는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는 아우라 있는 브랜드는 주로 디자이너 브랜드가 많은 패션분야에서 많이 사용한다. 폴 스미스나 페레가모, H&M 정도가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명 바리스타의 이름을 쓰고 있는 폴바셋(Paul Bassett)또한 그런 맥락에서 핸드라이팅 계열의 로고를 썼고 타 커피 브랜드와는 확연한 차별화를 두고 있다. 스페셜티라는 크라프트한 감각을 손글씨로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패션브랜드 말고도 떠오르는 핸드라이팅 계열 로고타입은 캘로그나 코카콜라, 크리넥스 같은 식음료나 생활 소비재 브랜드다.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표현법이다. 디즈니나 버진처럼 엔터테인먼트나 여행 분야도 로고의 동적이고 리듬감 있는 곡선들이 브랜드의 감성을 잘 표현한다.
하지만 폴바셋이라는 커피브랜드가 핸드라이팅의 로고타입을 썼을 때의 한계는 확실해 보인다. 커피전문점은 기본적으로 매장이라는 공간을을 가진다. 특수하고 독보적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매장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할 프랜차이즈 브랜드이기도 하다. 패션 브랜드라면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의 근거리 매장에서 적용되면 충분한 상황이지만, 전국적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감안한다면 핸드라이팅 로고타입은 시인성과 적용성 등 굉장히 불리한 점이 많다. 물론 브랜드의 개성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고, 타 브랜드와의 확실한 차별점을 가진다는 건 그 어떤 점들보다 강력한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된 폴바셋이 리뉴얼하게된 이유에는 분명 핸드라이팅된 로고타입의 한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사실 소수의 마니아층만을 목표로한 커피전문점으로만 남고자했다면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해 매장을 넓혀가려는 비전을 가진 야망이 있는 브랜드라면 기존의 핸드라이팅 로고타입만을 고집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로고타입의 표현에 있어서 브랜드의 성격이나 가치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가 펼쳐갈 사업의 특성이나, 적용성과 활용성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가령 네이버나 구글의 로고타입이 그 브랜드들의 성격을 잘 표현한다는 이유로 필기체나 세리프가 있는 장식성에만 포인트를 두어 디자인됐다고 가정해보자. 브랜드가 전달하고자하는 의도는 충분하고 개성은 강할지 모르겠지만, 모바일이나 디스플레이의 적용성에는 치명적일 것이다. 표현보다는 기능이 오히려 브랜드 로고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폴바셋의 리뉴얼을 보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유연성과 일관성에 대해, 표현성과 기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한해 쓰고 말 것이 아니라면 더욱 더 신중해져야겠다. 폴바셋이 10년 전 론칭할 때 이런 판단을 미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브랜드가 이렇게 커지고 환경이 변화될 거라는 고민까지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더 멀리 보고 더 좋은 판단을 했다면 새로운 리뉴얼을 위한 고민의 비용도, 디자인시스템 교체를 위한 비용도 훨씬 줄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삼성역에서 처음 리뉴얼된 매장을 보고 느꼈던 당황스러움도 없었을 것이다. 어색한 변화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 온 브랜드의 이미지 자산이 흔들릴 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 브랜디는 일주일에 한번 이메일로도 무료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maily.so/bran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