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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un 11. 2021

래미안브랜드 리뉴얼 관찰기

진화냐 혁신이냐

지난 2021년 5월에 래미안 아파트 브랜드가 리뉴얼을 단행했습니다. 세로로 긴 막대형 바안에 있던 한자 '來, 美, 安'가 사라졌습니다. 편안함(安)과 아름다움(美)의 가치를 담은 미래지향적(來) 아파트라는 최초의 네이밍이 가진 의미을 넘어, 이제는 'RAEMIAN' 그 자체로 하나의 독자적인 의미와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20년 전에 3개의 세로막대가 세워진 심벌이 만들어졌다면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는 어느덧 20년차의 파워 브랜드로 성장했고 익숙한 브랜드가 되면서 과감한 생략을 통한 단순미 넘치게 브랜드 리뉴얼을 할 수 있었겠죠. 2000년 삼성 '三星'이 더 이상 한자어의 뜻으로 해석되지 않고 'SAMSUNG'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된 상황과 유사해 보입니다. 



래미안 브랜드 리뉴얼을 보고 두가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이제 아파트도 정말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제품이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느날 올림픽 대교를 건너다가 눈앞에 아파트 측면에 라벨처럼 붙은 'I PARK'의 빨간색 브랜드 로고를 보고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아파트 브랜드 로고가 마치 전자제품 모서리 한면을 자치하고 있는 제품 로고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파트처럼 키가 큰 냉장고나 에어컨같다는 착각도 들었어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높고 크고 비싼 제품에 붙은 라벨같은 거였죠. 그러고 보니 브랜드 리뉴얼된 래미안 로고는 영문이 중심이라 그런지 'RAEMIAN'이라는 로고타입을 냉장고에 붙여도 그리 어색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번째는 수년전 브랜드 리뉴얼을 했던 호반건설의 브랜드 마크가 떠올랐습니다. 이번 래미안의 리뉴얼이 심벌마크에서 한자를 걷어낸거라면, 호반건설은 심벌마크에서 영문을 걷어냈습니다. 사각면 안에 들어있던 문자들 때문에 시각적 개성이 생겼지만, 복잡해 보이는 측면도 있었죠. 이런 과감한 생략과 요소를 제거하는 방안을 처음부터 제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각의 단순하고 명확한 조형도 살리고, HOBAN이라는 영문의 커뮤니케이션도 수월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훨씬 깔끔해지고 세련되게 변했습니다. 더구나 베르디움이라는 아파트 브랜드까지 CI의 시각적 연계성을 가져가 전반적인 브랜드 시스템이 한층 개선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호반의 브랜드 리뉴얼은 그 동안 쌓아 온 시각적 자산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감각에 맞는 방안을 잘 찾아낸 모범사례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보수적인 건설 브랜드들에 비해 IT나 패션 브랜드 분야는 래미안과 같은 단순하고 평평하고 명확한 조형으로의 변화를 한참 앞서 진행하고 있었죠. 나이키는 NIKE라는 로고타입이 스워시 마크 위에 힘겹게 타고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한결 가볍고 멋스러워졌습니다. 더 이상 NIKE를 몰라도 스워시라는 마크만 나와도 이제는 충분하니 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스터카드 또한 합쳐진 두개의 비좁은 원안에 끼어있던 MasterCard가 밖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래미안이나 호반의 리뉴얼 사례와 무척 유사하네요. 네이버도 NAVER가 작은 사각 박스에 다 들어가 있다가 대표되는 'N'만 남았습니다. 그 동안 네이버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푸른색과 'N'만으로도 네이버를 떠올리기 충분할 것입니다.  






브랜드 로고의 리뉴얼 과정은

순수 회화의 추상화 과정과 닮았다 


래미안, 호반건설, 나이키, 마스터카드, 네이버의 리뉴얼에서 볼 수 있는 조형의 단순화의 과정은 1946년에 발표한 피카소의 'The Bull'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실제 소처럼 세밀한 묘사가 들어간 이미지에서 몇 개의 라인만으로 표현한 최종 아트웍입니다. 생략과 상징화의 과정이 정말 잘 표현됐습니다. 꼭 남겨야할 특징과 요소만 남기고 불필요한 표현들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스타벅스와같은 전통이 있는 브랜드 로고의 진화 과정과도 닮아있네요. 스타벅스의 처음 마크는 굉장히 묘사적입니다. 사이렌의 모습이 마치 잘 그린 그림 한장같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도식화, 단순화돼 가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파워가 점점 늘어날수록 단순화하기 마련입니다. 긴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브랜드를 잘 아는 사람들이나 충성고객들에게는 그러한 친절이 오히려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일 수 있습니다. 잔가지를 다 쳐내고 오로지 브랜드의 가장 특징적인 본질만 남긴 브랜드 리뉴얼을 하는 게 그 이유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작업들의 이점은 어떤 구체적 이미지에 한정시키지 않고 고객들이 브랜드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브랜드 이미지 확장의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브랜드 파워가 증가할수록,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브랜드 로고의 추상성과 단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 매거진 브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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