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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Nov 18. 2024

[5년 차]1.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사내 폭행 사건, 그리고 사라진 애사심

나는 어딘가에 그렇게 정을 주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애사심'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해 4년째 몸 담고 있었던 회사에 나는 나름대로 많은 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지방 영업소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지방 영업소의 소장은 윗 보고 라인이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에 지방의 왕처럼 군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광주영업소에서 회식이 있던 날,

소장 X가 던진 소주병에 막내 영업 직원 A가 맞아 눈 밑에 피부가 찢어졌다.

(A는 훤칠한 키에 미남형이었는데, 그 얼굴에 흉이 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와 동기면서, 광주에 발령받아 영업소 생활을 하고 있던 직원 B, 그리고 원래부터 광주 영업소에서 오랜 기간 소장 X와 합을 맞춰온 직원 Y, Z가 있었다.


나는 어떤 이유에든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당방위나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 순간 소장 X는 내 눈에는 범죄자였다.


문제는,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 크게 불거졌다.

함께 자리해 있던 사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기였던 B는, 소장 X가 A를 향해 소주병을 던졌다고 자신이 본 대로 진술했으나

Y와 Z는, 소장 X가 순간 욱해서 병을 던졌으나, 벽을 향해 던졌고 그 파편에 맞은 거라고 진술했다.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두 술을 마신 상태였고 그 이후 조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소장 X를 넘어서 Y와 Z까지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깊이 느꼈다.


사내에서 사건 처리 역시 지지부진했다.

밖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더 나아가 소장 X를 감싸기에 급급한 것 같았다.

철없는 막내 영업사원 A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가 아는 A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A와 입사 동기이면서 그 당시에는 나와 같은 마케팅 팀에서 일했던 대리가

게시판에 익명도 아닌 실명으로 글을 썼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쓰러졌습니다"라는 제목에

사내에서 일어난 폭행사건에 대한 참담한 심경, 회사의 안일한 처리 방식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그리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는 글을 올렸다.  


그 글에 나의 입사 동기 중 누군가 한 명이 실명으로 댓글을 달았다.

"깊이 공감합니다"

나도 소심하게, 실명으로 댓글을 달았다.

"깊이 공감합니다"


이 일로 나는 팀장과 면담을 했다. 팀장은, 가해자 소장 X와 동향이며, 가까운 사이었다.

"팀장님, 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폭행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폭행을 저지르는 순간 인간이길 포기했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나의 말에 팀장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앞으로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니?"

나는 무척이나 무책임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있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무기력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아는 기자에 이 사건을 찌를 용기도, 공론화할 용기도 없었다.

고민하던 내 입에서는

"저는 소장 X와는 직접적인 1:1 대화는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비겁한 결심이 흘러나왔다.


피해자였던 A는 퇴사했고, 가해자인 소장 X는 감봉 처분 3개월을 받았다.

소송까지 갔었지만, A의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신 상황이었고, 어떤 형태로 마무리되었는지까지는 누군가의 피해와 아픔을 들쑤시는 것 같아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 이후 가해자 X와 1:1 대화는 하지 않았다.

나는 감정적인 이유로 이직을 결심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이 사건이 이직의 사유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으로 회사에 대한 마음이 아주 차갑게 식은 것은 사실이다.


가해자 X는 그 이후로도 회사를 아주 잘 다녔다.

그를 회사에서 볼 때마다 마음에 작은 가시가 내 양심을 찌르는 것 같았다.

몇 년 후, 피해자 A가 다른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해 결혼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가끔 궁금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내가 더 적극적으로 A를 도왔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차피 회사는 회사일뿐, X와도 업무 측면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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