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4.무더운 여름, 시원한 졸업
드디어, 나에게도 석사학위가
혼자 허튼짓의 허튼짓을 거듭하던 와중에
나의 삽질이 가여워 보였던 연구실 언니가 의과학과에서 여는 수업 하나를 소개해줬다.
의과학과 교수님 수업으로 빅데이터 연구 실습을 실제로 해 보는 과정이었다.
교수님은 가정의학과 교수로도 부임 중이셨기 때문에, 임상과 빅데이터 연구 양쪽에 대한 이해가 높았으며, 건강보험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를 이미 진행해 보신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일단 수업을 신청했다.
원래 가던 관악 캠퍼스가 아니라 의과학과가 속해있는 연건 캠퍼스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했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한다고,
나는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보건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은 나 혼자였다. 그 당시 연구목적으로 건강보험 데이터를 신청하는 연구자가 많아지면서, 데이터를 받는데 시간이 너무나 많이 소요되어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실제 데이터가 아닌 심평원에서 제공하는 모의 데이터를 갖고 실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사전에 데이터를 받아 둔 덕에 실제 내가 논문을 작성하고자 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수업의 실습을 따라갈 수 있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장점을 발휘하여 해당 수업 때도 조교님들에게 끊임없는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물론, 수업 시간에 하는 질문은 다른 수강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수업 끝나고 나머지 공부를 열심히 한 샘이다.
코딩, 분석과 관련되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실제 임상의 앞에서 내 연구 주제를 설명하고, 피드백을 받는 경험은 내 연구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수업의 도움을 받아 논문 작성을 마무리하고, 논문 심사를 받는 날, 나의 지도교수님과 다른 연구실 지도교수님이 함께 들어오셨다. 타 연구실 지도교수님은 전공의를 마치진 않았지만 일반의 자격이 있는 교수님이었다.
"아니 근데 이 질병이 유병율이 얼마나 된다고 이게 big data로 볼만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조금은 놀랐다. 전공의 과정은 하지 않았어도 일반의라면, 내가 연구 주제로 잡은 질환의 유병율이 매우 높다는 정도는 알 것 같았는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거지?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대로 성실하게 대답했다.
"교수님, 이미 잘 아시리라 생각 되지만, 해당 질병의 유병율은 50대는 50%, 60대는 60%, 70대는 70% 라는 속설이 있을만큼 유병율이 높은 질병입니다"
만약 내가 수업을 통해 임상을 실제로 보고 있는 교수님의 피드백을 구하지 않았다면, 나는 논문 심사에서 타 교수님이 쏟아내는 질문에 멘털이 엄청 털렸을 것 같다.
어쩌면 어버버 하다가, 심사에서 탈락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의 지도 교수님은, 통계 전문으로 임상에 대한 배경이 없다 보니 타 교수님이 쏟아낸 이어진 질문들에, 심사가 끝나고 나서 나한테 덜컥
"이거 전체를 다 바꿔야겠다"라고 하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내가 이해한 타 교수님의 질문과 코멘트의 의도를 설명하고, 추가 분석을 이러저러하게 진행하면 될 것 같다고 답변드렸다.
논문 작성으로 매일매일을 하얗게 불태웠던, 뜨거운 봄이 끝나고 그렇게 장장 2년 반에 걸친 대학원 생활의 마침표를 무더운 여름 졸업식과 함께 마무리했다.
그렇게 나는 지도교수님과 나와의 인연이 아름답게, 졸업과 함께 끝이 날 줄 알았다.
교수님이 나에게 논문을 publish 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내시기 전까지는...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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