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만 비춰지는 나의 조금은 어두운 면모
내 브런치 활동 초창기 때 썼던 '카타르시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글들 중 하나이다. 잘 얘기하지 않는 내 어두운 모습을 써 내려갔던 내용이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어떻게 해소하고 간직해 가는지 노래를 통해 얘기했었다. 오늘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얘기를 해보려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어두운 모습을 간직하고 산다는 말,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고 나 역시 그렇다.
사실 '카타르시스'에 썼던 에피소드, 그 시기 이래로 내게 이렇다 할 우울한 일이나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의대 도전에 두 번 실패한 것이 그나마 좀 좌절할 만한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금방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이전의 경험으로 생긴 내성 덕분인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운 분위기를 담은 음악들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더 집중하게 되고 끌리게 된다. 그 가사들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일까. 그런 곡들을 들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가사에 관련한 내 에피소드나 그에 상응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듣고 그 곡 끝 서사에 해소되는 가사를 들으며 전율을 느끼곤 한다.
아무래도 힙합곡들의 특성상 여느 노래들보다 말이 빠르다 보니 가사가 길다. 그의 이점은 보다 풍부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곡 속에 담을 수 있고, 보통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을 때가 많다 보니 진솔함이 더욱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 소개할 곡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고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힙합곡들이다.
1.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 에픽하이
'In My Playlist' 시리즈에서 매번 언급하지만 나는 윤하와 에픽하이의 오랜 팬이다. 이 곡은 에픽하이의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앨범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의 명곡으로는 연애소설, 빈 차, 그리고 노땡큐가 있다. 이 곡의 가사가 유난히 내게 처절하게 들렸다. 지금까지 겪어온 타블로의 역경을 이 곡에 모두 쏟아내리라고 결심이라도 한 듯, 녹음된 목소리에서도 잔잔하게 이야기를 읊어가는 것이 아닌 가사를 소리치듯 부르는 게 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익은 걸 썩은 취급하는 이 시대에 뭘 바래?
고개 숙인 벼는 베이기만 해 숨을 쉴 수가 없어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아빠의 장례식에 와 죽음이 치유라는 둥 떠들며 웃던 목사
좆까 네 신이 병가 중 하늘엔 하늘뿐이었어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위 문단은 내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만약 내 가족이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장례식에 와서 나한테 저런 말 혹은 하늘의 뜻인 거라고 말한다면, 뭐 나랑 주먹다짐하고 의절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일지도...
"아무도 믿을 수 없어
Cuz you are fucked if you think that it's gonna be okay
상상은 자유인데 자유는 상상도 못 해
이 세상이 무서워"
위 문단 역시 요즘 살고 있는 세상에 대입해서 생각해 봤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법 이민자 추방이라는 명목하의 살인, 그를 덮고자 하는 거짓된 메시지. 정말로 이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소리 아닌 상처 내서 만든 노래들
피투성이지만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실로 소리 아닌 상처들에서 비롯된 가사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버텨내고 싸워내서 피투성이가 된 영광스러운 모습. 이 피날레에서 오는 전율을 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느낄 수 있다.
2. 불행했음 좋겠다 - 산이, Bee
'아는 사람 얘기'라는 엄청 유명한 노래로 알게 됐던 산이. 이 곡 다음으로 알게 된 것도 레이나와 함께 부른 '한 여름밤의 꿀'인지라 산이는 감미로운 발라드래퍼로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쇼미더머니에서도 산이를 접하고 이래저래 산이의 노래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 언젠가 한번 산이의 디스코그래피를 쭉 훑었던 적이 있다. 불행했음 좋겠다는 그 속에서 찾은 산이의 몇 되지 않는 아주 강하고 악랄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다.
"착각하지 마 너 없이 더 잘 살 수 있어
반복하지만 니가 없어야 나 살 수 있어
추억? 그딴 건 개나 줘버려 욕 나오기 전 꺼져버려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려"
"이 노래 듣고 있어? 바로 니 얘기야
기도 말고 저주해 용서치마 복수해
시간낭비 할 시간 없어 다시는 연락치마"
"I’m sorry so so so sorry 신사답게 굴지 못하고 나 욕해서
이따위밖에 안되나 봐 못돼서
I’m sorry so so so sorry 행복 빌 정도로 착해 주지 못해서
하지만 어떡해 안 그러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나는 누군가를 전심으로 증오하거나 저주해 본 적은 없다. 애초에 진심으로 화를 잘 내지 않으며 화가 날 상황까지 나를 밀어 넣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질투하거나 미워해본 적은 당연히 있다. 이 곡에서 흘러나오는 산이의 처절한 외침은 가사의 저주의 내용이 자신의 온 맘 다한 진심인 듯 느끼게 해 준다. 그렇기에 전에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되새기며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산이가 당시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노래해 준다. 그러다 보면 예전에 흐지부지 없어지게 놓아두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시 올라와 완벽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3. 20 - 아웃사이더
내가 아는 노래들 중에 단연코 가장 파워풀한 분노가 느껴지는 곡이다. 이 곡은 아웃사이더의 '오만과 편견' 앨범의 타이틀 곡인데 아무래도 아웃사이더의 힘겨웠던 서사가 담겨있는 앨범이다 보니 그동안의 감정을 농축해서 이 앨범에 담은 듯싶다.
"편견에 맞서 싸우는 법 자신을 바로 세우는 법
세상이 만들어 놓은 새장을 박차고 날아가
자신의 신념을 믿고 따르는 것 그 신념을 지키며 산다는 것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끝까지 신념을 버리지 말 것"
"돈 좀 벌더니 변했다는 등등
듣보잡 스토리나 듣고 살다 보니까
돈이 남기는커녕 오히려 욕만 나와
인생 뭐 같아 씨발"
이 곡은 아웃사이더가 노래한다기보다는 포효한다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가사 한 자 한 자 내뱉을 때마다 에너지가 담겨있고 농도 짙은 분노가 느껴진다. 하지만 비교적 강한 내용의 가사에 비해 실제 욕을 하는 건 딱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욕을 하는 그 순간 터져 나오는 카타르시스는 말 그대로 짜릿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종종 답답하거나 짜증 날 때, 혹은 강도 높은 운동을 할 때 이 노래를 찾곤 한다.
4. 외로운 동물 - 매드클라운, 산이
지금까진 강한 어조, 독한 가사의 힙합곡들을 다뤄봤다면 지금부턴 비교적 부드러운 느낌의 곡을 공유하겠다. 부드러움과 카타르시스라는 단어가 모순된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이런 곡들도 위로와 해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생각한다. '외로운 동물'은 2015에 출시된 싱글 앨범의 수록곡으로 더 잘 알려진 곡은 '못 먹는 감'일 것이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타이틀 곡이었던 못 먹는 감보단 이 곡을 더 좋아한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가사에 정확히 짚어줬다 생각한다.
"사회와 수학 어따 써먹냐 묻던 나인데
커 보니 세상 온통 정치와 그걸 올려놓은 계산대"
"진심 보이지 말 것
누군가는 진심을 약점 잡아 이용키에 진심과 숨바꼭질해"
"행복은 오늘도 표시되지 변함없이 이 도시에서 숫자로
비슷한 희망 비슷한 눈 비슷한 꿈 사랑에 서툰 외로운 동물"
힙합이란 꼭 으르렁대듯이 표독한 가사들만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잔잔하고 덤덤하게 인생 얘기를 해주는 것도 충분히 힙합이라 생각한다. 보통 퇴근길에 운전하면서 자주 듣는 곡이다. 수없이 들어도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곡이다.
5. 구린 예술가 - 매드클라운
내 기준 가장 어둡고 희망찬 진정한 힙합곡이다. 어두우면서 희망찬 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이 곡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곱씹어보면 매드클라운이 얼마나 암담한 옛 시절을 극복하며 살아왔는지, 혹은 여전히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곡이다. 그리고 몇몇에게는 본인에게도 대입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곡 또한 멜로디를 넣어 노래하는게 아니라 본인의 일기를 소리내어 읽듯 읊조리면서 곡이 진행된다. 멜로디에 부재에 의해 곡의 몰입감과 긴장감이 배가 되는 듯하다.
"술자리에서 동료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잔을 깨야 한다
취해서 그런 거라고 얼버무린다
감기처럼 올라오는 질투로 얼굴이 빨개지면 둘러댈 변명은 그것뿐이니까
남에게 그 속 보여줄 수 없으니까"
"당신의 나태함과 열등감과 자기 연민에 지쳐 떠난 옛 연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새벽에 연락하는 병신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 없이 모두 잘 살고 있다
아니 진짜로, 너 모르는 거 같아서 한 번 더 말하는데 모두 잘 살고 있다"
"아무리 춤을 추고 노래해도
아무리 세상을 향해 재롱을 떨어도
박수받고 칭찬받지 못한 어린애였으므로
당신은 늘 고아였다 사랑받지 못했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암울하고 절망적이었던 가사의 톤이 신념 가득한 메시지로 전환된다. 특히 막바지의 육두문자 몇 글자가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터트려주는 느낌이다.
"모든 걸 걸지 못했다고 후회해도 좋고
짱개 와리가리 치듯 약 올리는 삶에 화를 내도 좋다
인생 완전히 조져도 좋다
예술은 어딘가 모나고 비루한 당신을 사랑한다"
"얼마나 대단한 걸 남기겠다고 이 유난을 떠는지 우스워야 된다
이미 오래전 당신의 재능이 평범하다는 건 알아차렸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에 있어서 누구보다 천재다
그렇기 때문에 다 상관없어진다
그걸 믿기 때문에 다 씨발 좆까라고 할 수 있다 "
"그리고 결국에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어 무서워 너무 무섭고 막막하고 막 씨발 막 돌겠는데
아직도 난 이게 존나 재밌어"
자신이 진정으로 재밌어하고 행복해하는 일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이런 곡을 쓸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있는 것이고 이에 동감할 수 있는 영혼들이 있는 것이라 믿는다. 부엉이나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도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동물들에 비해 사람은 빛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앞을 볼 수 있다. 만약 신이 존재하여 우리를 이렇게 설계한 것이라면, 우리를 한평생 칠흑 속에서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난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아름다운 가시광선이 인생에 드리우는 타이밍을 알 수 있다면 덧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인간으로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알고 그걸 해소하는 느낌을 알 수 있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렇기에 나도 여전히 여느 날처럼 낮과 밤이 반복해서 드리우는 인생을 살고 있고, 난 이게 퍽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