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세비니에게 편지를
2021년 3월 26일
세빈 안녕!
지금은 밤 12시 50분.
조금이라도 빨리 자고 싶은데, 그래도 하나 남기고 자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이게 내 일기같긴 하다만, 진짜 내 일기였으면 그냥 안쓰고 말았을 것 같아.
너한테 오늘의 기록을 전해준다는 명분이 있으니 하나라도 더 쓰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일요일에 네가 처음으로 아팠다고 지난 편지에서 말했잖아.
그 이후로 월요일부터 너는 쭉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너한테 첫번째 편지를 보낸 날은 화요일이었어.
그날 네가 우리집에 있을 줄 모르고 밤 늦게까지 카페에 있다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너희 엄마의 전화를 받았지.
왜 안오느냐고.
"세비니 못보겠네 오늘은 - "이라고 말하던데, 난 네가 우리집에 있는줄도 몰랐던거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집에 도착했는데, 네가 있더라.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너는 모를것이다 ~
아무튼 그 이후로 이래저래 너는 우리집에서 지내는 중이야.
아직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유의미한 이유가 있지.
다음주면 우리는 이사를 가거든.
지금은 너랑 나(?)랑 차로 15분정도면 될 거리에 살고 있어.
근데 이제 곧 차로 1시간은 가야하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
이 집은 너희 엄마가 무려 고등학교 2학년, 18세때부터 결혼 전까지 쭉 살았던 집이란다.
집이 10년 되었는데도 굉장히 깨끗하고 단지도 조용해.
무엇보다 초역세권이다. 역에서 도보 2~3분정도 될거야.
그리고 너희 엄마 포함 5명의 가족이 살았으니 평수도 꽤나 넉넉한 편인데, 이 집을 떠나게돼서 모두모두 아쉬워하고있다.
음.. 너희 외할아버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
외할아버지가 팔고자 하셨지.
사유는.... 비밀! ㅎㅎ 얘기가 길어지므로 패스.
너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신혼때부터 줄곧 수원에 사셨는데 처음으로 수원을 벗어나는, 개인적으로는 혁신적인 이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야.
아무튼, 결론은 우리 모두 이 집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있어서 이곳에서의 네 추억도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너는 우리집에 4일째 머물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주 1~2회는 꾸준히 방문했었고.
네가 기억하지는 못할 집이 될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도 하다.
(너희 엄마가 꽤 아쉬워했음)
요즘 출퇴근시에 네가 있어서 마음이 좋더라!
출근할 때엔 아쉽기도 하지만, 퇴근할 때엔 집에 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더 들뜬다.
그래봤자 너는 나를 크게 알아보지는 못한다.
나는 너의 이모라고 100번 이상은 소개를 한 것 같은데, 과연 인지를 하고있는지는 모르겠다.
너는 나를 보고 웃기도 하고, 내 옷을 보고 웃기도 한다.
사실 주로 내 옷과 휴대폰 케이스를 보며 웃는게 90% 이상일 것 같다. (졌다)
너는 무늬를 좋아한다.
디자인, 색감, 패턴 등에 반응을 보인다.
그건 50일도 이전부터 그랬다.
잘은 몰라도, 너의 손수건이 시초일것이다.
알록달록한 땡땡이 손수건.
너는 그걸 펼쳐 보여주면 금방이고 웃는다.
가끔은 뭐가 그리 좋은지 '헤 - , 헤헤 -'하고 목소리까지 내어 환영한다.
그 이후로도 소파의 가죽무늬, 벽지의 은은한 패턴, 외할머니 옷의 문양, 이모 잠옷의 각종 무늬 등 너는 많은 섬유의 패턴에 관심을 보였다.
아, 그중 내 휴대폰케이스도 꽤 인기가 좋다.
내 케이스의 일러스트는 굉장히 화려하고 색감이 쨍하다.
호랑이와 토끼가 있고, 붉은 꽃과 푸르고 커다란 잎이 있다.
배경은 검정색이다.
강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쩌면 무서울법한 이 케이스를 너는 굉장히 즐긴다.
늘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는 그림인데도, 새로운가보다.
항상 궁금한건.. '다른 애기들도 이럴까, 우리 애기만 이럴까?'라는 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나는 그래도 객관화를 잘 하는 편이고 팔불출은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네가 좋아하는 그것들이다.
각종 무늬, 일러스트, 디자인...
내가 잘 알지는 못하는 것들이지만 나도 좋아하긴 한다.
어릴적에 마스킹테잎을 종류별로 사들이곤 했다.
나도 각종 무늬를 좋아하고 디자인에 나름 취향과 고집이 있다.
설마 날 닮은건 아니겠지..?
어쨌든 앞으로도 네가 꾸준히 관심을 갖는지, 혹은 가질 수 있도록 나는 무언가를 제공할 참이다.
손수건 하나를 유독 좋아하는 너를 보고 후에 전시회를 같이 가는 상상을 해봤다.
너가 걸을 수 있고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을때 쯤 뭔가 흥미로운 그림이나 사진 전시를 같이 가보고 싶다.
혼자만의 계획이다.
벌써 1시 11분.
나는 이만 자야겠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나름 신나는거 너는 알까! ㅎㅎ
오늘 밤 부디 깨지 말고 푹 자면 좋겠다 ( 나 말고 너.. 나는 늘 너무 잘 자서 탈이다; )
자다가 앙 ~ 하고 깨지 말고 울 모찌애기 잘 자렴!
내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