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니모#4 퇴근길에 너에게
언젠가 '퇴근길의 너에게'가 되겠지
21년 4월 15일
안녕 리세빈~
나는 요즘 너를 '리세빈 또는 세빈리'라고 부르곤 한다.
이사 전후로 너랑 나름대로 진한 날들을 보낸 걸 넌 모르겠지.
그 이후 넌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집에 오고 있고, 오늘은 그 두 번째 주 이다.
사실 지난주에 널 만났을 때, 네가 조금~은 낯가림을 하는 것 같았어. 날 바로 알아보진 못했거든. 그날 너희 엄마랑 외할머니가 나를 데리러 회사 앞까지 왔었단다!
니모의 회사 앞 도로는 최소 8차선은 될 거야.
크고 넓지만, 복잡하고 차가 많단다.
그래서 퇴근 후 이모를 데리러 온 외할머니의 차를 타기까지가 쉽진 않았어.
넌 앞좌석에 앉은 네 엄마품에서 콜콜 자고 있었지.
난 네가 있어서 신나기도 했지만, 그냥 그 상황이 너무 들떴어.
어쨌든 외할머니도, 너희 엄마도 니모의 회사 앞까지 날 데리러 온건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들뜬 바람에 널 깨우고 싶었다...ㅎ
얼마 안 가 넌 일어났지.
난 만발의 기대감을 품고 천천~히 너를 향해 빼꼼 빼꼼 모습을 드러냈어.
내 마음이나 친밀감은 지난번 우리의 만남과 같은 온도에 머물러 있었다는 거 넌 모르겠지.
나만 한껏 부푼 마음으로 널 쳐다봤지만, 넌 '누구신지 모를 일이다'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어.
짙은 녹색 후리스를 입고, 머리엔 핑크색 핀을 꽂고 새초롬하게도 나를 쳐다보았지.
역시나 당장에 웃어주진 않더라.
물론 내가 너의 웃음을 구걸하는 건 아냐.
(물론 그러면서 늘 너에게 큰절을 하거나 네 앞에서 율동을 하곤 하지. 네가 웃어줄까봐서....ㅎ....)
그래도 넌 날 계속해서 쳐다봤어.
마치 기억이 날듯 말 듯 하다는 듯...
계속 쳐다보면.... 기억이 나니?
ㅋㅋ
그래도 누군일지 생각해보려 노력해줘서 고마워.
불편할 텐데도 굳이 몸을 일으켜서 뒷좌석을 연속적으로 돌아보는 너를 잊을 수 없다.
내 기억이 정정해서 좋아.(?)
기분좋은 기억이기 때문이지.
이번 주는 어땠는지 말해줄게.
어제야. 네가 도착한 건!
난 당연히 네가 오는 날인걸 기억하고 있었지만, 퇴근하고 무려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갔어.
너를 보는 시간은 좀 늦어지지만, 대신 좋은 점이 있어.
운동 마치고 씻고 가기 때문에 집에 가서는 너를 계속 볼 수 있는 거야!
너랑 있다가 씻으러 화장실 가야 하면 그 시간 아깝거든.
어쨌든.
그렇게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네가 있음을 너무나 느꼈지만 바로 네게 가지 않았어.
이성을 차리고 화장실 가서 손부터 씻고 옷부터 갈아입었어.
왜냐, 그냥 일단 너부터 만나면 어차피 다시 손 씻고 옷 갈아입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지.
아무튼 매우 사소한데 내 마음 이해하겠어~?
(대충 너를 보다가, 잠시라도 흐름 끊기기 싫다는 뜻)
그래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네 앞에 등장했다!
흠.. 근데, 넌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더라.
한층 물오른 시크함으로 날 바라봤지.
안돼, 이렇게 너에게서 나의 존재의 비중을 잃을 순 없어.
네가 클수록, 자주 못 보게 되니까 넌 나를 잊게 돼 ㅠㅠ 그건 정말 슬픈 일이야.
그래서 둥가 둥가 하면서 놀아주니까 네가 조금 반응했어.
넌 자극적인걸 좋아해! 웬만해선 웃지 않지~
특히 요즘의 넌, "하나~ 두울~ 셋!" 하면서 뭔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걸 좋아한다.
관련된 동작이 없어도, 그 소리만으로 좀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예전에는 소리만으로 반응하는 것 중에 "까꿍", "냠냠냠냠냠냠" 등이 있었지.
이건 음성파일을 첨부해주고 싶다.
까꿍의 경우 3가지 정도의 성조가 있다.
너희 아빠 버전, 엄마 버전, 외할머니 버전 등..
냠냠냠냠냠은 작은 소리가 점점 커져야 해.
그래야 네가 반응을 한다.
어쨌든
우린 너의 찰나의 웃음, 1초 웃음을 보고 듣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가끔 네가 빵 터져서 연속적으로 웃을 때
우린 큰 성취감을 느끼고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게 뭐든 간에.
갑자기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누군가 내게 니 사랑과 행복 중 하나만 고르라면 택하라면
한치 망설임도 없이 언제나 난 니 행복이고 싶어
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널 사랑하니까 남자니까
우는 건 아픈 건 내가 할게
넌 웃어줘."
어휴.. 참고로 난 여자야.
소름 돋겠지만 좀만 참아줘.
언젠가 지금 니모가 느끼는 마음을 가진 짝꿍이 세비니에게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음.. 사실 갑자기 뚝딱 나타나길 바라는 건 아냐.
그건 소설이고, 우리 비니도 노력이 필요해.
근데 뭐든 세비니가 필요한 게 있다면 되도록 갖출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방금 전 전화 왔다!
너희 엄마야.
오늘은 지하철 역으로 날 데리러 왔거든.
만나기 100m쯤 전이고, 니모는 참지 못하고 위의 노래를 재생시켰다.
너도 기회 되면 꼭 들어봐.
김형중 - 그녀가 웃잖아.
그럼 안녕! 만나러 간다 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