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싫어하는 여행지란
세 번째 행선지는 두마게티, 혹은 두마게테였다.
수밀론에서 꿈같은 이틀을 보낸 뒤 항구로 이동했다.
두마게티로 들어가는 배는 어마어마하게 컸고 로컬들 뿐이었다. 오토바이 50여 대가 갑판에서 부릉부릉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배.
두마게티에 대한 내 사랑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장황하게 여러 번 쓸 예정.
두마게티는 외지인이라고 낮잡아 보거나 호구 삼으려 하지 않았던 유일한 도시였다. 거의 모든 순간에 우리는 배척당하지 않고 존중받았다. 호의로 가득한 웃음이 주변을 종일 맴돌았다. 이유 없이 도움을 받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모든 순간에.
매일 저녁, 숙소 앞 시장에 질 좋은 연유를 끼얹은 찰밥을 사러 갔다. 나중엔 우리가 시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주인이 알아서 포장해 놓고 잔돈 준비해 줄 정도. 총일주일을 두마게티에서만 머물렀는데 7일째 되는 날 찰밥 포장하면서- 혼자 헤어지는 연인 보듯 아련한 눈빛으로 주인 분을 한참 보았다.
파인탄이라고, 찰밥에 엄청 진한 다크초콜릿을 끼얹어 먹는 음식이 두마게티에 유명한데(근처에 초콜릿 농장 즐비), 그 음식 하나만 전문적으로 파는 파인탄 거리가 숙소 바로 앞에 있었다.
저녁마다 사람들이 가판대에 모여 초콜릿과 찰밥을 먹고 있는데 볼 때마다 괜히 흐뭇.
로컬 할아버지들이 혈당 걱정 없이? 뜨거운 초코에 밥을 막 말아 드셨다.
sansrival 은 내 인생 디저트를 먹은 곳이다. 실바나스라고, 구름에 설탕 뿌려서 압축한 것 같은 과자를 판다! 입에 들어가면 바로 녹는 질감. 이거 먹으러 두마게티 다시 가야 할 정도다. 내 맘대로 미슐랭 3 스타를 주었다.
두마게티를 떠나기 전 날 저녁, 시눌록 행사로 동네 모든 사람이 나와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기도하며 행진했다. 초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한강을 떠올렸다. 초를 켜는 마음. 어두운 곳에서 초를 켜 두는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했고...
두마게티 대성당이 집 근처에 있었는데, 성당 근처 골목마다 서서 초 대여섯 개를 켜두고 기도하는 청년들이 정말 많았다. 헬멧을 쓴 젊은이들이 몰고 온 오토바이를 성당 벽에 기대 세워 두고 흰 초에 불을 붙여 한참을 기도했다.
그들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도 따라 기도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이 천천히 떠올랐다.
두마게티에는 사실 아포섬 때문에 간 곳이라, 아포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포 섬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섬으로, 산호 군락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고 다양한 해양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해양 보호 때문에 반드시 가이드가 있어야만 해당 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아포 섬 투어 때문에 두마게티 가자마자 설렜는데 어린이들은 자연을 그냥 멀리서 구경하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포섬까지 이동하는 내내 납작 엎드려서 빌었음. 제발 한 번만 불평 말고 바닷속에 들어가자!
마침 날이 맑아서 시야가 놀랍도록 잘 나왔고. 바다가 완전 장판이었다. 파도 한 점 없었다.
배우자랑 나는 진짜 신났다. 산호 정원이 어마어마했다. 희귀한 산호가 마구 널려있었다. 얼마나 색이 화려한지 바닷속에 네온사인 켜 둔 것처럼 느껴질 정도. 복어랑 거북이랑 랍스터랑 물뱀이랑 니모는 기본아이템이었고. 여기서 처음으로 오징어 군집을 봤다. 쪼끄맣고 미끈한 발로 아주 바쁘게 돌아다녔다.
다이빙 횟수제한이 없어서 나랑 배우자는 계속 물에 들어갔는데, 애들은 한 번 들어가곤 심드렁~해져서 모래놀이만 했다. 아이스크림 언제 사줄 거냐고 징징 짜증만 내고. 눈으로만 보는 게 뭐가 재밌냔다. 그래..... 너네는 그렇구나.
암튼 나는 이 날 얼마나 기운을 뺐는지 네그로스 본섬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완전 정신 놓고 잤다. 엔진 소리가 천둥 치는 것 같았는데도.
+)
바다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은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는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은 자연을 가지고 노는 건 좋아하지만(풀을 뜯어서 소꿉놀이를 한다든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든가) 멀찍이서 감상하기만 하는 것엔 별 감흥 없어한다. 막 모래를 뿌리고! 쌓고! 구멍을 뚫고! 이런 것만 좋아함. 그래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어린이에게 최적화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론 집에 돌아갈 때쯤엔 애들이 프리다이빙이 가능하게는 되었지만... 여행 내내 바다에 들어가는 거 매우 싫어했다. 바닷물 짜고 맛없다고 아우성.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