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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Dec 01. 2023

46. 전국 경찰 직장협의회 준비위원

밀양경찰서 초대 직장협의회장이 된 후 많은 활동을 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공무원 직장협의회법 법률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을 찾아다녔고, 자치경찰 법 수정에 대한 기자회견 및 1인 시위 등 외부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 부분이 눈에 띄었는지 경남청 직장협의회 회장단 모임에서 '홍보국장'을 맡게 되었다. 24개 관서에서 임원진은 6명이었는데, 그중 하나를 맡게 된 것이다. 별다른 활동을 하는 것은 없었지만, 임원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책임이 무거워졌다. 경남청 직장협의회 회장단 모임이란 말을 쓴 이유는 법적으로 연합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남청 직장협의회 연합회'란 말을 쓸 수 없어서다. 하지만, 모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고, 경남청 지휘부와 1년에 두 번 정도 정기회의를 가졌다. 그때마다 각 경찰서에서 직원 복지를 위한 안건을 제출했고, 지휘부에선 적극 수용하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2022년도에 좋은 소식이 들렸다. '공무원 직장협의회법'이 수정되어 경찰도 전국 직장협의회 연합체 구성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연합체 구성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의 회장단이 바빠졌다. 정관(회칙)을 만들어야 하고, 준비위원회 구성,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연합회장 선발 등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장 시급한 일이 준비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전국 경찰관서 직장협의회(당시 220명 정도) 회장이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모이기로 했다.       

 

경남청 회장단은 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이동키로 했고, 나는 부산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기차를 이용했다. 인재개발원 대강당에 회장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안면 있는 이들끼리 인사 나누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한 서를 대표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강당이 사람들로 가득 찼고 더 이상 올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이자 임시로 지정된 사회자 두 명이 앞으로 나왔다. 먼저, 준비위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지에 대한 안건을 취합했다. 그 후 투표로 결정키로 했다. 두 가지 안이 나왔다. 첫 번째는 이전에 활동했던 비공식적 전국 직장협의회 모임의 임원진들이 그대로 준비위를 이어받는 것, 두 번째는 각 지방경찰청에서 대표 한 명씩을 선발해 준비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투표 결과는 10표 차이로 두 번째 안이 선정됐다. 준비위 구성방식이 결정되자 일주일 이내에 각 청별 준비위원 한 명씩을 선발해 명단을 통보키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다시 기차로 내려오던 중, 40분 정도 지나 대구쯤 지날 때 스마트폰 진동음이 '위잉 위잉'하고 울렸다. 누군가 하고 보니 경남청 연합 대표였다. '전화올 일이 없는데' 살짝 불길함을 느끼며 받았다.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그가 다짜고짜 나에게 경남청 대표 준비위원을 맡아달라고 했다. 나보다 더 열정적인 분들이 많았기에 거절했지만, 그의 다음 말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로 이동하던 경남청 직장협의회 대표 21명 모두 만장일치로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뭔가 음모의 냄새가 풍겼지만 어쩌겠는가.      

 

일주일 뒤 준비위원이 구성되었고, 그다음 주 경찰청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부산청 대표는 세 번 정도 본 일이 있어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안면이 없어 어색했다. 몇몇은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 데 그것을 보니 더 위축되었다. 한 사람씩 얼굴을 뜯어보니 뚝심이 보였고, '내가 난데'라는 자신감이 보였다. 나이도 내가 제일 어린것 같았다. 하지만, 경남청을 대표해 이 자리에 온 것이기에 처음부터 기죽을 순 없었다. 나를 추천해 준 회장단들을 위해서라도 당당하려 했다. 첫날부터 기싸움이 팽팽했다. 어딜 가나 파벌이 있듯 준비위원에도 두 개의 파벌이 존재했다. 일단 간을 보며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라는 것을 내비쳤다. 임원진 구성에 대해 논의했고, 어찌나 다들 할 말이 많은지 의견이 산으로 갔다. 오늘 중에 하나라도 합의할 수 있을까 싶어 답답했다. 결국 다수결로 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제야 회장과 임원진을 정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 고성이 오갔지만, 결국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 치열한 현장에 있는 것에 활력을 느꼈다.       


2주 뒤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지난번 논의한 대로 회장과 임원진을 선발했다. 회장 1명, 부회장 2명, 사무국장 2명 이렇게 다섯 명이 정해졌다.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사무국장 한 자리를 맡게 되었다. 사무국장은 온갖 잡일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회의 때는 회의록을 작성했다. 사람들이 발언할 때마다 노트북에 발언내용을 기록했고, 혹시나 빼먹을 까 싶어 녹취하기도 했다. 회의가 끝나면 집에 가서 회의록을 정리한 후 밴드에 회의록을 공개했다. 그 회의록은 전국 회장단에게도 공개되었다. 두 번째 모임부터는 사회자를 지정했다. 워낙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인지라 발언에 제한을 두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사회자가 있으니 회의가 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경찰청, 대전경찰청, 서울 기동단 사무실 등을 번갈아가며 5번 정도의 모임을 가졌다. 정관 작업이 가장 주된 일이었고, 정관이 마련되면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우리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정관 마무리 작업은 천안의 한 수련원에서 1박 2일 동안 합숙하며 진행했다. 그 이틀이 그동안의 여정 중 가장 치열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고, 합의가 가능한 부분부터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합의가 되지 않는 부분은 회비, 임원진 구성, 회장 선발 방법, 각 지역별 연합체 구성에 대한 것들이었다. 공방이 치열하고 고성이 오갔지만, 전국 연합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목표는 모두 같았기에 결국 한 발씩 양보해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4개월간 달려왔던 길이 스쳐 지나갔고, 이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 후련했다. 


경찰 직장협의회 전국 연합체가 설립되는데 한몫을 했다는 것이 영광스러웠고, 뿌듯했다. 경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만 같았다. 정관이 완성되고 전국 직장협의회 설립추진위원회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발 빠르게 연합회를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선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중요한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준비위원회 임기가 끝날 때쯤 밀양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의 임기도 함께 끝났다. 솔직히 좋은 일보단 속상하고 아픈 일이 더 많았지만, 2년의 경험은 나를 한층 더 성장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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