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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df Jun 10. 2019

13. 할머니는 매일 죽고싶다 말씀하신다.

하고싶은 것을 다해 이제 더이상 삶에 미련이 없다며.

맏며느리답다.


할머니는 한평생 ‘맏며느리'다웠다. 그 외형은 현재 시대가 선호하는 모습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항상 통통했고, 두꺼운 손을 갖고 있었다. 맏며느리는 대체 어때야 하길래 외형으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고 형용사처럼 쓰인걸까? 짐작컨대 자식을 낳고, 일을 해야하니 체력적으로 준비되어 있음을 뜻할 것이다. 난 1928년에 태어난 할머니의 맏며느리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그 뜻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건강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뼈만 남은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 할머니, 여기 살 다 어디갔어?


할머니의 무릎에는 뼈와 근육에 간신히 붙어 쪼글쪼글해진 살만 남았다.   


- 아휴. 나도 우리 할머니 손에서 컸잖아. 외할머니 말이야. 우리 할머니가 살이 내려가면 곧 죽는다고 했는데, 그것도 아니네? 빨리 죽고 싶어. 지겨워 죽겄어 아주.


죽고싶다. 할머니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후부터 매일같이 말씀하신다.  


- 왜 이렇게 명이 기니? 내 할머니도 꽤 오래살았는데, 그 명이 나한테도 내려왔다.

-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그만 살아도 여한이 없어?


20대의 나에게 죽음은 멀고 낯설다. 언젠가 찾아오겠지만 당장은 아닐꺼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제 그만 살고싶다 하신다. 자식들은 듣기 벅찬 죽음을 매일같이 당신의 입으로 말씀하신다.  



- 난 죽고싶다. 어서 죽고싶어. 사는게 지겨워. 지겨워 죽겄고, 귀찮아. 몸까지 성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정말 죽겄다.

- 할머니는 살아온 거 미련 없어? 아쉬운 거 말이야. 이거 하고 싶었다. 이런거 없었어?

- 응 없다. 하고싶은거 없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하고싶은 것을 다 하셨다고 하실줄은 몰랐는데, 뜻밖의 대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 할머니는 하고싶은거 다 하면서 살았어?

- 그래. 내가 일을 좀 잘했잖아. 실 꿰매고 밭 매는거 부터 어디가서 일하는 데 빠지지 않았다. 일을 참 잘했어. 그래서 내가 먹고 살긴 했어. 그리고 극성맞아서 하고싶은건 다 했다.


열심히 노동하면 그만큼 모을 수 있는 시대였다. 할머니는 번 돈으로 땅을 샀다. 그렇게 돈을 모아 자식들을 키우셨다. 할머니는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감사하면서도 할머니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모았지만,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할머니가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이건 얼마니?’ 다. 어느날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할머니에게 보여드렸다. 한참을 빤히 보시다가 물어보셨다.


- 요새 이렇게 사진 찍어서 바로 나오니? 이건 얼마니? 아고, 이렇게 많이 찍어?


할머니는 스마트폰의 화면에 사진이 떠 있는 것 자체로도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고 계속 걱정하신다.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한평생 돈을 벌었지만 쓰는 것엔 너무나 박한 삶을 살아오셨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극성맞게 하고싶은 걸 다 하며 살았다. 그래서 미련이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어디에 어떻게 그토록 여한 없이 돈을 쓴 걸까. 문득 할머니가 지금보다 더 정정할 때가 떠올랐다.


아마 내가 중학생때 일 거다.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흰색 돌맹이를 잔뜩 사오셨다. 그리고 그걸 꼭 가족들 소지품에 넣어놓으셨는데, 내 방에 들어오셔서는 가방과 베개 밑에 잔뜩 넣어놓고 가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 이거 잘 갖고 있으면, 건강에도 좋고 공부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대.



난 잔뜩 짜증을 내며 등교하기 전에 그 돌맹이들을 다 빼서 버렸다. 대체 이런건 누가 순진한 노인들 속여서 파는건지 화도 났고 이런 거에 속는 할머니도 답답했다.


또 내가 고등학교 때였다. 아빠가 갑자기 아프셨는데, 할머니는 아주 용하다는 무당을 모셔와 집에서 굿도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쓰셨다. 때로는 사기꾼에 속고 때론 미신에 기대며, 자식들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 “극성맞게" “쓰고싶은 만큼" 돈을 쓰신거다.

그럼 할머니는 당신 자신을 위해선 뭘 하셨던 걸까?  


- 그럼 할머니는 살면서 아쉬운 게 하나도 없어?

- 글 못배운건 아쉽고 원통하다. 나만 그런건 아니고 우리 동네 내 또래는 다 학교를 못갔다. 나만 못간게 아니고 다 못갔다.


글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할머니는 오늘도 깊은 한숨을 쉰다. 하고싶은걸 다 했다는 할머니의 마음 속엔 깊은 미련이 남아있다. 어쩌면 할머니는 욕망조차 지워진 채 살아오신게 아닐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기에 바라지조차 않으셨던 걸지도 모른다. 그 시대는 그런 시대 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당신의 삶 안에서 충분히 극성부리며 최선을 다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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