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택해 집을 떠난 엄마가 떠오른 건 해남 대흥사로 달려가는 차안이었다. 서해안과 남부지방에 화이트크리스마스가 예보된 성탄 이브 밤이었다. 엄마는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뭐하긴, TV 보지.
목소리 톤이 높고 가벼웠다. 별 근심 걱정 없이 연말을 보내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번 달에 가스비가 30만 원 정도 나왔는데, 다음 달에는 40만 원은 나올 거 같네. 날 추워지는데, 넌 별일 없지?”
엄마가 “나는 내복 입고 전기장판 키면 된다, 니들이 따뜻하게 지내면 더 바랄 게 없다” 식으로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이 엄마를 덮치지 않았다는 걸 뜻하니 말이다.
“이번 달은 30만 원, 다음 달은 40만 원” 멘트처럼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필요를 디테일하게 말한다. 참고로 저 금액은 아파트 관리비가 아니라, 순수 난방비다. 추우면 보일러 온도를 ‘이빠이’ 올리는 게 엄마고, 훗날의 청구서 따위는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게 진짜 우리 엄마다.
‘엄마 생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집 앞 언덕에 앉아 울며 엄마를 기다리는 5,6살 무렵의 내 모습이다. 그 이전의 엄마 기억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최초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언제나 그 언덕의 푸른 여름 풍경이다. 옆집 총각과의 사랑을 택해 어린 2남2녀와 아버지를 남기고 집을 떠난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46년 전, 당시 엄마 나이 고작 서른 셋이었다. 삶을 건 사랑이 깨진 이후에도 엄마는 ‘빽 스텝’을 밟지 않았다. 목욕탕 때밀이로 돈을 벌어 홀로 삶을 꾸리고 담배를 피우며 끊임없이 연애를 했다. 자식을 위한 희생과 헌신도 많았으나, 엄마가 인생에서 가장 중시한 건 늘 자신의 욕구였다.
5~6세였던 내가 쉰이 되고, 서른 셋의 여인이 팔순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엄마의 일관된 모습.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와 통화를 마친 후, 하필이면 그 순간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늑대아이> ost 엔딩 곡 ‘어머니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영화 <늑대아이>에서, 아내 ‘하나’는 남편을 잃고 ‘늑대이자 인간’인 두 아이를 홀로 키워낸다. 엄마 하나의 모습은 도덕 교과서에서 튀어 나온 것처럼,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헌신-감내-인내하는 엄마의 표본이다. 한마디로, 우리 엄마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내 엄마와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 노래, 유튜브로 ‘어머니의 노래’를 재생했다. 단순한 피아노 반주에 오직 목소리 힘으로 밀고 가는 노래가 차 안에 퍼졌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는지 차창 밖은 어두웠다. 땅끝 해남까지 가려며 3~4시간을 더 달려야 했다.
이 밤을 시작으로 해남 대흥사 인근에 체류한 2박3일간 같은 곡을 여러 번 재생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엄마와 내 삶이 분리된 5~6세 무렵의 그 언덕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 나이에도 다른 삶을 모색하는 게 가능할까? 삶의 방향이 출렁이던 지난 가을, 조금은 충동적으로 해남 대흥사를 찾았다. 처음엔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는커녕 해안가의 모래 한 알 구경하지 못했다. 대신 꽃향기가 천리, 만리를 간다는 대흥사 앞의 금목서 한 그루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동행했던 사람은 그 금목서의 향기를 맡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겐 금목서가 처음이었고, 나는 그 가을날 자체가 새로운 출발선이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긴데,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12월 24일 대흥사 앞 숙소부터 예약했다.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 가을이 갔다. 겨울 한복판에서 돌아보니, 지난 가을에 선명하게 해둔 건 대책 없이 예약한 숙소 하나였다.
이번 해남 행은 그 명확한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다른 삶을 향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고, 나는 다시 엄마와 유년의 언덕을 떠올린 것이다. 모태 신앙인이 세례를 받듯이, 패키지 여행 상품의 필수 코스처럼, 그 기억 또한 피할 수 없는 여정인 듯했다. 언젠가부터 감히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나도 결혼이란 걸 해볼까?’
‘나도 아이를 한 번 낳아볼까?
마치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오랫동안 내게서 두 결심을 틀어 막은 건, 언덕의 기다림으로 대표되는 유년의 경험이다. 엄마, 아버지처럼 실패할 거면 차라리 시작을 말자. 잘 키울 수 없다면 아예 낳지를 말자….
근데 금기를 깨고 감히 저런 생각을 하다니. 내 생각을 밀고 나가 구체적인 상상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엄마라는 존재가 나의 내면에서 올라왔다. 그때의 엄마 얼굴은 이전과는 다른 낯선 표정이었다.
그동안 여러 글을 쓰면서 엄마에 대한 이해와 재해석을 끝냈다. 많은 사람, 특히 내 주변의 엘리트 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아이 넷 딸린 여성이 사랑을 택해 과감히 집을 떠나다니, 정말 멋있네요. 그 이후에도 자식에게 무조건 희생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 욕구를 솔직히 말하고 추구하는 삶이 참 좋습니다. 우리 엄마도 희생, 헌신만 하지 말고 당신 어머니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마웠다. 내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엄마를, 엄마 이전에 한 독립된 여성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엄마를 향한 이해의 길이 열렸다. 남들이 뭐라 하든 꿋꿋하게 자기 삶을 밀고 나간 여성으로 말이다.
그렇게 다 끝나고 정리됐다고 생각한 엄마에 대한 해석이 공교롭게도 다른 삶을 꿈꾸기 시작하자, 그동안 활짝 열려 있던 이해의 문이 조금씩 닫히는 듯했다.
문득, 묻고 싶다.
/내 엄마가 당신의 엄마라면, 당신은 계속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 넷을 두고 옆집 총각과의 사랑을 택한 여인이 당신 사돈댁이 된다면, 당신은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다는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집을 비우고 밖으로 떠도는 아버지가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 ‘안진진’은 그런 아버지를 연민과 관용의 눈으로 바라본다. <모순>만이 아니라, 많은 문학과 영화, 드라마는 ‘바람난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 관용과 이해의 시선으로 다룬다. 현실에서 너무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일 거다.
여기서 잠깐, 바람난 아버지를 엄마로 대체해 보자. 아이를 버리고 가족을 책임지지 않으며, 자기 마음대로 술과 도박과 자유연애를 즐기다, 담배에 쩐 냄새를 품기며 어느 날 느닷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 말이다.
그 숱한 아버지들에게 작동했던 연민과 포용, ‘뭐 남자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관용의 마음이 과연 엄마에게도 작동하는가? 뭐 여자가 살다보면 자기 욕망도 좀 내세우고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 생기는가? 생각과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바람난 엄마는 상상 자체가 쉽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다 지난 일이다, 하면서도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오래전 그 언덕의 꼬맹이처럼 말이다.
요즘 타인의 관점에서 엄마의 과거를 살펴 보며 이전에 없던 원망과 얄미움이 올라온 것도 사실이다. 엄마를 향한 원망과 부담, 슬픔과 연민의 교차점에 내가 강제로 올려진 기분이다.
엄마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재해석을 모두 마쳤다는 것도 오만한 생각이었지 싶다. 그저 그 시절의 이해와 재해석이 내려졌을 뿐이었고, 살아가는 내내 다른 차원의 해석은 반복될 듯하다.
크리스마스 내내 대흥사에서 ‘어머니의 노래’를 여러 차례 들었다. 최근엔 <늑대아이>를 다시 봤다. 영화는 엄마 ‘하나’의 사랑과 헌신의 이야기지만, 두 늑대아이 유키와 아메의 독립에 관한 여정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의 핵심 테마는, 인간이 아닌 늑대의 길을 선택하는 아메의 성장 과정이다. 인간과 늑대의 갈림 길, 아메는 늑대의 본능으로 먹이를 쫓아 겨울 계곡에 뛰어 들었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다. 겨우 구출된 뒤 아메는 이런 말을 한다.
“오늘은 나도 (먹이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신기하게 평소랑 다르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갑자기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이런 아들을 보며 들었던 공포감에 대해 엄마 ‘하나’는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앞에 두고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느낄 때, 부모의 내면에선 생애 최고조의 공포가 올라온다. 품안의 자식이 드디어 완벽한 타인이 되어가는 순간, 어찌 무섭지 않을까. 부모의 자식의 갈림길, 둘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이보다 간명하게 설명할 순 없지 싶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최고 명장면은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늑대의 모습으로 산으로 달려간 아메가 산 정상에 서서 크게 포효하는 모습이다. 부모와 자식이 완벽한 타인으로 서로 분리, 혹은 독립하는 순간이다.
삶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내가 유년의 언덕으로 자꾸 돌아가는 건, 어쩌면 홀로서기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나뉘고 분리돼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스스로의 독립을 의심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 말이다.
지난 가을에 이어 2개월 만에 찾은 겨울 대흥사에선 금목서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의 금목서가 궁금해 크리스마스 당일 애써 찾아갔다. 주황색 꽃은 지고 없었으나 검푸른 잎은 여전했다. 예보된 대로 하늘에서 흰눈이 쏟아졌다. 지난 2개월간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그 시간은 타인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기간이도 했다. 돌아보니, 진정 내가 부담스러웠던 건 엄마에 대한 타인의 판단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 나는 이게 두려웠다.
다소간의 부담이야 있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엄마가 부끄럽지 않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또 달라질 수 있으나, 지금 이 순간 엄마에 대한 나의 재해석은 그러하다. 우리는 그저 서로 일찍 분리돼, 각자 빨리 독립했을 뿐이다.
엊그제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상규야, 날이 추워져서 가스비가 40만 원은 넘게 나올 거 같네. 너 요즘 직장 잘 다니고 있지?”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삶을 선택해, 두려움 없이 가더라도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길에서 무참히 무너져도 나 또한 엄마처럼 ‘빽 스텝’ 따위는 밟지 않을 거다.
정말이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