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업무가 끝났을 땐 오후 4시였다. 미세먼지 낀 찌뿌둥한 하늘에선 가끔 흰눈이 떨어졌다. 바람은 3월 치고 제법 차가웠다.
오후 6시 미팅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았다. 뭔가를 하기엔 짧고, 스마트폰을 보며 지워버리기엔 아까운 어정쩡안 시간. 불러 낼 사람도, 갈 곳도 없었다.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었다. 딱히 살 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할 일은 없는데 시간은 남을 때, 서점만큼 좋은 곳도 없지 않은가.
정기간행물 코너에서 주간지 <시사인><한겨레21>을 샀다. 딱히 봐야 하는 콘텐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며칠이라도 가방에 넣고 다니면 읽겠지, SNS 기웃거리는 것보다 한 줄이라도 읽는 게 낫겠지, 딱 그 마음으로 샀다.
서점을 한 바퀴 돌다 그 어느 ‘스팟’보다 한산한 공간에 멈췄다. 시집 코너였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는 이런 게 있다.
“당신, 도전이란 걸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는가?”
빽빽하게 꽂힌 얇은 시집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 시집을 산 게 언제가 마지막이냐?”
떠오르지 않았다. 온전히 시 한 편에 집중해 끝까지 읽어내려간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도 까마득하다. 그래, 오랜만에 시집을 사보자... 딱 이 마음으로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을 집어 들었다.
서점을 두 바퀴 돌아도 시간이 남아 <시사인>을 대충 펼쳤다. 하필이면 펼쳐진 페이지가 ‘장정일의 독서일기’였다. 또 하필이면 소설가 장정일은 시집을 소개했다. 해당 글에서 시인 이문재가 쓴 ‘죄와벌’이란 시를 읽었다. 한 대목은 이렇다.
“좋은 시를 읽고 나서도 친구에게 알려주지 않는 사람 / 이런 사람이 죄인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계속 읽었다. 그러다 치매를 앓는 아흔 살 노모를 홀로 돌보다 힘에 부쳐 요양원에 모셨다는 양애경 시인이 쓴 ‘면회2’를 읽었다.
너무나 하고 싶은 말
‘사랑해요’보다
백만 배 무거운 말
엄마 집에 가자
오늘도 ‘사랑해요’만 하고
혼자 돌아왔네
서점을 나왔을 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바람도 여전히 찼고 올 때처럼 흰눈이 가끔 날아왔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광화문을 걸었다.
이렇게 울며 걸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