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카와구치 박병은을 기억하는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글
고백하건대 스타 감독이나 배우를 첫 대면할 때면 여전히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흠모했던 배우나, 인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 작품의 만든 이를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마주 보는 일. 아마 해가 가고 연차가 쌓여도 떨리는 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흥분이 아닌, 조금 미지근하더라도 오래가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이미 명장이고 이미 핫스타인 영화인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누가 봐도 성실하고, 재능 있고, 매력 넘치지만, 왠지 모르게 아직 '때'를 못 만난 것 같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가장 즐겁다. 얼마든지 더 '기대할 것'이 남아있는, 덜 알려진 '레어템'을 발굴하는 기분 덕일 테다.
'나만 알고 싶은'을 넘어 '나만 알기 아까운' 배우, 같이 안다면 함께 응원하고 싶은 배우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레어템'은 영화 '암살' 속 임팩트 있는 연기로 더는 '레어템'이 아니게 돼 버린 듯한 배우 박병은이다.
박병은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3년, 노덕 감독의 영화 '연애의 온도' 인터뷰에서였다. 영화 속 지질한 민차장 캐릭터가 충분히 매력적이라 냉큼 인터뷰를 신청했었다.
첫 만남, 서글서글한 눈매에서 얼핏 넉살이 보였다. 그가 내 앞에 놓인 헛개수를 보곤 "어제 과음을 하셨군요"라며 크게 웃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무장 해제됐고, 우리는 영화 이야기에 더해 온갖 쓸데없는 사담들을 잔뜩 나눴다. 대학 재학 시절 학교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 경비원에게 혼이 난 이야기라든지, '절친' 오정세와 무명시절 겪었던 오디션 비화 같은 이야기들.
낚시를 좋아한다고 했던 그는 첫 인터뷰 이후 종종 안부를 묻는 메시지에 긴 말보다 그날 잡은 해산물들의 사진을 보내며 자랑하곤 했다. 어떤 계절엔 생선이었고, 언젠가는 실해보이는 꽃게였다. 확실히 엉뚱한, 동시에 선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간이 안부를 묻고 지냈지만, 한 영화의 VIP 시사회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외엔 통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그새 박병은은 이원석 감독의 영화 '상의원'에 우정 출연하기도 했고 김기덕 감독이 제작을, 이주형 감독이 연출을 맡은 '붉은 가족'에선 남한 가족의 아빠로 등장하기도 했다. 황인호 감독의 '몬스터'에도 깜짝 놀랄 외양으로 출연했었다. 영화 '악인은 살아있다'를 통해 주연으로도 나섰고, TV 단막극이나 미니시리즈에서도 연기를 했다. 볼 때마다 반가움을 담아 간단한 평을 보냈는데, 답하던 그는 대부분 동네 영화인들과의 소소한 술자리나 어느 시골 어촌 마을에 있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배역을 맡는지까진 묻지 않았기에, 이만큼의 임팩트를 남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시사를 통해 일찍이 영화를 본 뒤엔 이 영화에 얼만큼의 관객이 들건 배우 박병은을 제대로 알아보는 눈이 확실히 많아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하얀 피부, 로봇처럼 멍한 눈, 군데군데 엿보이는 살기, 무심히 핸드크림을 꺼내 바르는 손짓. 그가 연기한 일본군 장교 카와구치는 온전히 '박병은표'였다. 무려 세 단계의 오디션을 거쳐 카와구치 역에 발탁됐던 그는 감독의 눈을 배반하지 않았다. 카와구치라는 배역을 두고 최동훈 감독이 의도한 건 "쟤 뭐하는 놈이지?"라는 인상이었다. '암살'을 본 관객이라면 그런 의도하에 이 캐스팅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긴 설명 없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암살'이 흥행가도를 달리던 즈음 그와 두 번째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가 제안한 장소는 여느 카페가 아닌 홍대의 한 세계맥주전문점이었다. 서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인터뷰인 듯 인터뷰 아닌 인터뷰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딱히 기록본을 들춰보지 않아도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박병은을 소개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가까운 친구와 나눈 대화를 기록 없이도 복기할 수 있는 것처럼, 그와의 대화도 꼭 그랬다.
첫 리딩 이후, 2차 오디션을 위해 그는 '암살'의 모든 스크립트를 외워 갔다. 일어의 '일' 자도 몰랐지만 카와구치의 일어 대사를 위해 일본어에 능통한 친구를 소환, 녹음을 부탁해 매일 들었다. 일주일 만에 일어 대사는 물론 대본의 전 분량을 암기했다. 카와구치가 핸드크림을 바르는 설정을 위해 집에서 핸드크림도 챙겨갔다. 1930년대 화장품이 어떻게 생긴 용기에 들어있었는지, 당시 어떤 브랜드가 있었는지도 미리 알아봤다. 최 감독으로부터 "같이 합시다"란 말을 들었을 땐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담담한 척 "감사합니다"라 답했지만 가슴은 쿵쾅쿵쾅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약 5개월 남짓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촬영한 '암살'이 '천만 영화'가 됐다. 박병은으로선 더없이 벅차고 기쁜 일일 것이다.
'암살'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쉼 없다. 하기호 감독의 '극적인 하룻밤'과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로도 관객을 만난다. 출연을 확정했거나 조율 중인 쟁쟁한 차기작도 있다. '암살'의 흥행으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두 번째 인터뷰 날, 컬러풀한 팬츠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쓴 채 배낭을 멘 그는 일산에서 광역 버스를 타고 홍대에 왔다고 했다. 버스 맨 뒷자리에선 두 명의 여성이 '셀카'를 부탁했단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 속 카와구치의 모션을 흉내내 세 손가락을 펴며 "맞죠?"라고 묻거나, "'삼백 명' 맞죠?"라는 말로 반가움을 표하지만, 그를 박병은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분명 많아질 것이다.
더 유명한 배우가 된다고 해서 자유롭게 캠핑을 하거나 낚시를 즐기는 그의 여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그의 자유분방함은, 그의 재치는, 그의 소탈함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배우 박병은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작품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