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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이야기1] 수업에 필요한 시간

저는 우연한 기회에 논술 선생이 됐습니다. 기자 생활을 10년을 했지만, 선생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거든요. 양평 문호리라는 곳에 우연찮게 놀러를 왔고, 가을의 멋진 풍경에 매료돼 1년 가까이 집을 알아보러 다녔어요. 물론 1년 내내 다닌 건 아니었고요. 그러다 작년 가을에 이사를 왔어요. 동시에 북카페를 열려고 했는데 시골이라 생각만큼 좋은 임대 매물이 없었어요. 자그만 1층 동네서점을 하고팠는데 여의치 않아 3층 건물이 임대로 나온 걸 보게 됐어요. 부동산에게 서점 얘길 했더니 손사래부터 치더라고요. 여기 서점이 되겠냐며. 곧, 학원을 추천했죠. 정확하게는 '공부방'. 글쎄. 애들을 가르치는 건 좋긴 한데, 공부방이라는 걸 처음 듣기도 했고, 왠지 그건 아닌 거 같아 학원을 고수했죠. (학원 허가를 받는 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이건 다음 편에 설명할게요.) 


그래서 학원을 차리기로 했고, 종목은 이 동네에 없는 논술로 하기로 했어요. 대박이 났나고요? 차린 지 두어 달쯤 됐는데 이제 수강생이 11명쯤 돼요. 주변에서는 이 정도면 엄청 선방하고 잘하고 있다고 해요. 시골이라 학생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주변에 초등학교는 3개, 중학교는 1개 있는데 큰 곳이 270여 명 정도, 작은 곳은 70-80명 수준이죠. 대중교통이라고 해봐야 버스 밖에 없는데 사실 한 시간에 한 대 아니면 세 시간에 한 대라 저희 학원 다니는 애들 버스 시간에 맞춰서 시간표를 짜야합니다. 제 고향이 경남 통영인데 통영도 사실 이렇지는 않았어요. 아마 제가 터를 잡고 산 지역 중에 제일 시골로 온 거 같긴 해요. 그래도 문호리라는 동네가 익숙하게 들리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건 아마 배우 이영애 씨 덕인듯해요. 이영애 씨가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사신 뒤에 감우성, 김수로, 김용건(하정우 부친) 씨 등도 여기 사시거든요. 잠실까지 40분이면 가는 교통 덕도 있는 거 같고. 하루 3만 명이 다녀가는 문호리 리버 마켓도 인기 상품 중에 하나죠. 문호리 동네 소개는 조선일보 바람 부는 날 훌쩍 떠난다, 문호리에서의 반나절 기사를 보시면 더 자세히 아실 수 있어요. 



저는 기자 시절, 허프포스트 코리아라는 매체에 있었어요. 이 동네 와서 전 직장에 대해 100번 이상은 말한 거 같은데 아는 분은 정말 딱 한 명도 못 봤어요. 나름 온라인에서는 유명한데 ㅎㅎ. 중3 수강생 언니가 "왜 거길 몰라"라고 해서 체면치레를 하긴 했습니다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그런지 수업 시간에 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아요. 아이들도 기자를 처음 봐서 신기하다고도 하고요. 제가 기자 시절, 페이스북 라이브를 꽤 했는데요, 수업 시간에 그걸 보여줄 때도 있어요. 그럼 진짜 신기해하죠. 경상도 사투리 막 쓰는 사람이 방송 진행을 하다니! 저는 이런 경력으로 언론사에서 특강을 제법 하고 다녔어요. MBC, EBS, 동아일보, 대학교, 대학원 등에서 뉴미디어 강의를 했어요. 대략 2-3시간 강의를 하게 되는데 피드백이 꽤나 괜찮았어요. 그런데 첨부터 반응이 좋은 건 아니었어요. 목소리 톤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강의가 첨이라 준비도 어설펐고. 그럴 때마다 애드리브로 때우고 넘어가곤 했는데, 그래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요. 2시간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20시간의 준비는 족히 필요하겠더라고요.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하고 취합하고 그걸 쭉 쓰고. 파워포인트로 따지면 대략 40-50장은 준비해야 2시간 강의가 되겠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10번 정도 계속 읽어보고 미진한 부분을 계속 채워 넣는 과정을 반복하고 나야 비로소 안심이 되더라고요. 



학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쓰는 해법 논술 교재는 교사용 지도사가 있어서 그나마 수업하기가 좀 낫긴 하지만, 2시간짜리 수업을 하려면 꽤 많은 시간을 공을 들여서 준비를 해야 해요. 애들에게 미리 읽으라고 나눠준 책을 읽고, 관련 문제를 찾아보고, 또 나눠줄 자료가 없는지 찾아보고, 관련 동영상까지 찾고. 그러다 보면 1주일이 정말 빠뜻하게 시간이 흘러가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만족인 거 같아요. '완벽'으로 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교재에 어느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는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준비는 돼야 비로소 강의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줬다고 봐요.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의외로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에 임하는 분들도 더러 있을 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생부터 중3, 그리고 70세 성인까지 가르치고 있는데 늘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늘 새로운 걸 채워 넣고 공부한다는 데 만족하고 또 즐겁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글로 풀어낼 글감이 있는 건 또 어디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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