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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은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른바 칼 찬 선비로 불렸다. 무장 투쟁론을 불사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고려시대 묘청의 서경(평양) 천도 운동을 가리켜 “일천년 이래 역사적 사건”이라 칭했다. 중앙문벌귀족인 개경(개성)파 김부식을 상대로 지방향리 출신인 묘청이 금나라(여진족) 정벌을 내세우며 수도 이전을 불사했으니 말이다.

고려 문벌귀족은 기득권 세력이었다. 아빠가 최고의 스펙이었던 문벌귀족은 음서제도(아빠가 5급 공무원이면 나도 5급 공무원)를 통해 과거 없이 특별채용으로 관직에 나갔고, 공음전(5급 공무원 보너스 토지)을 통해 토지를 세습했다. 통일신라 시대 골픔제의 모순을 지적하며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데 일조했던 지방 호족과 6두품 세력들은 자신들이 주축이 되자 기득권을 놓치 않았다. 이른바적폐 세력이 된 거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이들이 골칫거리였다. 개국 공신들인 동시에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잠재적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사성정책(왕씨 성을 하사)이나 정략결혼을 통해 회유하기도 하고, 때론 사심관 제도(관리에게 자신의 출신 지역을 통제토록 한 뒤 진압에 실패하면 죽임)나 기인제도(자식들을 인질로 삼음)를 통해 겁도 줬으나 이들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혜종과 정종의 왕위 다툼을 거쳐 광종에 이르러서도 세력을 누르기는 쉽지 않았다. 광종은 노비안검법(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풀어줌)과 과거제를 실시했다. 언뜻 보기에는 사회 개혁적 제도인듯 하지만 비대화된 호족들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가진 노비들은 호미를 들면 농민이요, 칼을 들면 군인이었다. 이들에게서 노비를 최대한 빼앗기 위한 것이 노비안검법이었고, 신구세력을 교체를 통해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것이 바로 과거제였다. 광종의 정책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결국 문벌귀족은 사고를 친다. 젊은 문벌귀족 한뢰는 나이가 지긋한 무신 이소응을 뺨을 때렸고, 이 일을 계기로 극도로 천대를 받던 무신들이 들고 일어나 난을 일으킨다. 무신집권기가 시작됐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을 보고 있노라면 곳곳에 권력을 뿌리내리고 백성들을 착취해 온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개혁(골품제도 타파)을 부르짖고 새로운 사회(고려)를 개척했지만, 기득권이 된 뒤 권력을 틀어지고 철저하게 진보적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한 이들. 한국 남성들은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면서도 ‘꽃뱀’ ‘무고죄’ 가능성을 운운한다. 내심 되치기가 있기를 기대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본능적 속성이다. 권력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페미니즘에서 미투로 들불처럼 번지는 이 운동, 어쩌면 고려와 조선,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남성 기득권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일천년 이래의 역사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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