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 Art Museum Koo House
문호천이 호젓하게 흘러가는 개울가에 미술관이 하나 있습니다. 눈이 동그래 질만한 거장의 미술품들이 즐비한 구하우스KOO HOUSE는 구정순 관장이 실제 거주하는 곳이란 뜻에서 ‘집’이란 명칭을 썼습니다.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 참가할 일이 있었다. 일정이 하루가 남아 주변 지인들과 근처 니스에 있는 앙리 마티스 미술관에 들렀다. 마티스는 처음 접했다.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의 대가라는 건 나중 일이었다. 작품에 매료된 나는 그의 작품 엽서, 포스터를 쓸어 담았다. 드골 공항 검색대에 깜빡 놔두고 온 걸 찾느라고 공항 경찰에 사정을 얘기하고 다시 들어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지난 10년간 숱하게 이사를 해도 앙리 마티스 엽서와 포스터부터 챙겼다.
이후에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꼭 그 지역에 있는 미술관에 들렀다. 여행 경비 30만 원을 들고 간 일본 나고야에 가서도 꼭 시립 미술관에는 들렀고, 신혼여행을 간 호주에서도 미술관엔 갔다. 스페인에 가서는 피카소 미술관까지 갔는데 이제는 내가 마치 미술을 좀 아는양 어깨가 올라가기도 했다. 집 냉장고에 엽서들을 붙여놓고 뚫어지게 보고 있노라면 그때 여운이 다시 생각나는 것도 같았다.
미술이 또다시 나의 영역으로 들어온 건 아이들에 논술을 가르치면서부터였다. 최근 대학 입시 논술 지문에는 예술사, 예술 철학 관련 지문들이 종종 등장한다. 2012년 모 대학 사회계열 논술 문제는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이 나왔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파이프 그림. 이 작품은 통념을 배신하는 동시에 언어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소변기를 거꾸로 둔 ‘샘’으로 유명한 마르쉘 뒤샹. 현대 미술을 태동시킨 그는 회화와 조각, 풍경화와 정물화 위주였던 미술을 일상의 사물로 ‘낯설게’ 하는 뒤틀기를 시도했다. 현대 미술이 어렵게만 느껴진 건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 자체가 부족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가을, 문호리로 이사 오게 된 근사한 이유 중 하나는 집 근처에 ‘구하우스’라는 미술관이 있는 것도 한 몫했다. ‘침실엔 앤디 워홀, 서재엔 마그리트 미술관이 된 집, 집이 된 미술관’이라는 중앙일보 기사(2016년 12월 14일자)에는 미술품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려는 구 관장의 철학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마치, 현대미술이 뒤샹에게 빚을 진 것처럼 말이다.
“원래는 이탈리아 도무스나 미국 파슨스처럼 디자인 학교를 들여오려 했는데 국내 학제가 꽤 복잡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미술관을 떠올렸습니다. 학교 대신 교육의 장으로 여기면 되는 거였죠. 그래서 꼬마 손님들이 오는 게 좋습니다.”
학생들에게 작품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미술관 의자에 놓고 현대미술의 개념과 정의를 설명한 뒤 ‘구하우스' 작품들을 1시간 동안 관람했다.
인간의 관음증을 포착해 열쇠 구멍 사이로 방 안의 상황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키 홀' 등을 보며 현대 미술을 정수를 체험했다.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지위를 보여주는 'Clock'과 같은 작품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작품 감상 후 구현진 큐레이터와 일문일답의 시간도 가졌다. 어유나 학생(서종중2)은 "현대 미술이 실생활과 밀접하다는 걸 깨닫고, 현대 미술의 개념까지 정립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감상평을 내놨다. 구 관장은 "이 아이들이 벌써 이런 작품을 보네요. 얼마나 성장할는지”라고 감탄했다.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 아이들을 데려갈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