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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선 May 07. 2023

비무장 지대 다크투어

무장애여행

비무장 지대 다크투어     


                                                                                                                           글, 전윤선     


휠체어 타고 비무장 지대를 여행 한다고? 다들 의아해 했다. 그러나 휠체어 탄 사람도 비무장 지대 여행이 가능하다. 비무장 지대 안보여행지는 편의시설 등 접근권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한반도 허리를 중심으로 비무장 지대는 동부전선, 서부전선, 중부전선 등 여러 곳이 있다. 이번 여행은 중부전선인 철원 비무장 지대로 무장애 여행을 떠나본다. 철원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 이어서 오지 중에 오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지역 주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는 웃픈 농담도 오가는 곳도 철원이다. 그렇다보니 철원은 자연유산과 안보 여행지가 많다. 철원으로 떠나는 안보 무장애 여행을 하려면 신분을 확인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DMZ 여행을 하려면 두루미 평화타운에서 먼저 접수를 해야 한다. 접수를 마치고 오전10시가 되면 모든 차량 지붕에 긴급 광경 등을 달고 관계자의 지휘 차량을 뒤따라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해야 한다. 십분정도 이동하면 첫 번째 검문소가 나온다. 검문소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신분증에 사진과 여행객의 얼굴을 대조하며 확인하는 절차를 마치면 통과 된다. 그 이후 또 다시 오 분 정도 달리면 철원평화전망대에 도착한다. 평화전망대 까지는 짧은 구간의 모노레일이 운행된다. 모노레일은 휠체어 탄 여행객도 탑승 가능해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올라간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철원평야와 강산 저수지다.      


평야가 어찌나 넓은지 지평선 끝이 어딜까 궁금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 평야를 사수 하려고 수많은 남북한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결국 철원평야는 남한 땅이 돼 김일성이 철원평야을 잃고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를 기억이라도 하듯 DMZ 군사분계선에는 아직도 서슬 퍼런 철조망이 당시의 아픔을 잇고 있는 것 같다. 철조망 너머로 북한 땅이 유관으로 확인 가능하고 큰소리로 얘기하면 들릴 것 같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나라를 구한 6사단의 청성부대의 활약이 전시돼 있다. 청성부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초선지구 전투와 춘천 홍천지구 전투까지 많은 전투에 참여해 승리를 거뒀다. 남침을 위한 땅굴의 흔적도 전시돼 있다. 제2땅굴은 실제의 모형을 본떠 만들어 체험 할 수 있게 했다. 땅굴이라도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데 충분한 공간이다. 이렇게 큰 땅굴을 여러 곳에서 발견됐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영화 ‘강철비’에서 쿠데타로 인해 북한의 1호가 총을 맞고 남한으로 우연히 이송되게 된다. 쿠테타 세력들은 1호를 제거하려 땅굴을 통해 남침 계획한다. 영화에서 땅굴은 탱크나 차량도 다닐 정도로 엄청나게 큰 규모 이었지만 실제 제2땅굴은 그렇지 않았다. 1층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2층 전시관을 둘러보려면 위험한 리프를 타고 올라가야 해서 포기하고 밖에 전망대 주변을 둘러봤다. 전시관 바로 옆에는 1971년 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사한 필승교회가 있다. 교회는 작고 소박한 건물이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간부급 되는 군인이 나와 승리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지금도 일요일이면 병사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교회에 온 병사들에게 초코파이를 주냐고 물으니 지금은 샌드위치나 빵 등 초코파이보다 더 좋은 것을 줘야 예배를 보러 온다고 한다.      


바로 아래는 성모마리아 상이 철원평야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는 사찰도 있어 3대종교가 한곳에 다 모여 있다. 거대 종교가 모든 사람을 다 품으면 얼마 좋을까. 그렇지 못해 소수의 종교 시설도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종교가 만들어 지는 것은 거대 종교라고 해도 모든 사람을 다 품지 못해서 일 것이다. 어쩌면 사람 숫자만큼 종교도 다양하지 않을까.      


관계자 차량을 선두로 월정리 역으로 갔다. 월정리 역으로 가는 동안도 훈련하는 차량이 줄지어 이동한다. 군인들의 탄 차량이 수없이 오고가는 것을 목격하니 군사분계선의 긴장감을 실감하게 한다. 월정리역은 하얀 간이역 건물에 월정리역‘月井里駅’ 간판이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다. 월정리 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현재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철원 안보 관광의 대표적인 경유지이다. 월정리역은 보는 것만으로도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역 뒤쪽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 아래 한국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가 녹슨 체로 철길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의 화물열차도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지금까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분단국의 현실을 반증한다. 


경원선은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의 강제동원과 당시 러시아의 시월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들을 고용해 1914년 8월 강원도 내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역이다. 서울 원산간 227Km를 연결하는 산업철도로 철원에서 생산된 곡물 등 생물자원을 수송하는 간선철도 역할을 했다. 분단이후 지금까지 철마는 녹슬며 버터 왔지만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녹슨 잔해마저도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철마가 시간 속에 사라지기 전에 철길이라도 다시 열린다면 원산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철길로 기차 여행할 수 있는 날을 꿈꿔 본다. 그때도 난, 휠체어를 타고 경원선 레일을 따라 대륙을 여행 할 거다. 월정리역 정면은 계단뿐이어서 휠체어 탄 여행객은 역 뒤쪽으로 가면 역 안까지 샅샅이 둘러 볼 수 있다. 월정리 역 주변에도 군인들이 상시 지켜보고 있어 수상한 행동은 바로 제지 된다.      


다시 선두차량을 필두로 출발했다. 십분쯤 달려 마지막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돌려받고 나오면 노동당사 건물이 있는 철원역사문화공원이다.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인근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주민들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한 곳이 노동당사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됐지만 철근 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상처가 남았지만 그럼에도 전쟁의 참상을 증명하고 있다. 노동당사가 유명해진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타이틀 곡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하면서다 노동당사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경사가 급해 앞에서만 보다가 바로 앞 철원역사문화 공원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철원의 근대 역사를 재현해 만든 역사문화 공간이다. 철원의 경제발전에 원동력이었던 옛 철원역은 소이산 모노레일 역으로 새롭게 지워졌다. 철원평야 한가운데 있던 철원역은 1912년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연천, 철원간 개통으로 문을 열었다. 1931년에는 금강산전기철도의 개통과 함께 철원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원선을 통해 서울 용산에서 철원역까지 2시간, 철원역에서 내금강까지 4시간 반이 걸리면서 철원은 강원 북부의 교통, 물류,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만 해도 원주, 춘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원도 3대 도시의 위상을 갖춘 지역으로 급성장했던 때 이었다. 철원역에서 모노레일을 타려면 전동휠 탄 여행객은 역사네 비치된 수동 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 난, 수동휠체어 바꿔탈 수 없는 장애 이어서 모노레일 타는 건 포기하고 역사문화공원만 둘러보기로 했다. 역사문화공원에는 사진관, 여관, 방앗간, 은행, 등 옛 철원지역 읍내를 재현해 놨다. 카페와 식당도 모두 접근성은 좋다.      


철원역 앞에는 커다란 철탑이 위엄 있게 서있다. 철탑의 용도는 철원에 울려 퍼진 사인소리‘오정포’다. 시계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정오인 낮12시가 되면 포를 쏴 시간을 알렸다. 이것을 오정포 혹은 오포(午正砲,午砲)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한양 보신각종을 울려 시간을 알렸던 것처럼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포를 이용해 시간을 알리다가 포 대산 사이렌을 소리를 이용했다. 시간 알리는 것 이외에도 화재발생과 비행기 공습 등 위험한 사항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됐다. 일반적으로 오정포 옆에는 소방서 차고가 있어 소방서에서 관리하며 다양한 소리로 상황에 맞게 소식을 알렸다.      


분단은 오천년 한반도 역사의 가장 큰 아픔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오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식물들이 살기 좋은 자연환경으로 변해 생태계의 보고로 남아 있다. 이념의 갈등으로 서로를 증오하며 죽고 죽이던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철원 중부전선 DMZ는 여전히 휴전의 시간에서 멈춰 있다.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DMZ가 이젠 안보관광의 척도가 된 철원. 고통은 때론 사람을 강하게도 만든다. 삶의 질곡에서 그것을 배우며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해 본다. 어스름한 하늘이 붉어지면서 철원 평야 들판이 고요해 진다.  

   

⦁가는 길

DMZ 두리미 평화타운에서 안보여행 신청

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역→노동당사     


⦁접근가능한 식당

철원역사문화공원 내 다수     


⦁접근가능한 화장실

철원평화전망대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장애인콜택시

강원도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즉시콜 1577-2014


http://www.imedialif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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