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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선 Jan 13. 2024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꿈

#항공박물관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꿈     


                                                                                                                   글, 전윤선     


겨울의 강을 건너고 있다. 기후변화로 지구의 속내를 알 수 없지만 겨울의 심장을 지나는데도 널을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추운 것보다 따스한 계절이 생존에 용이 하지만, 지구의 생태계가 인간에게만 맞출 수 없는 지라 자연이 순환하는 대로 적응하며 살아내야 한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휠체어를 타는 내게도 가끔 온화한 날씨가 그립다. 미세먼지가 걷힌 겨울 하늘은 온통 파랗고 새들이 자유롭게 날고 있다. 저 새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휠체어타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면서 항공박물관으로 무장애 여행을 떠났다.     

항공박물관은 실내 여행지라 춥지도 않고 수도권에 있는 곳이어서 당일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게다가 김포공항 바로 옆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도 가기 편리한 곳이다. 항공 박물관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항공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둘러볼 수다. 편의시설도 워낙 좋아서 휠체어 사용인 등 관광 취약계층도 박물관 관람에 편리하다.

     

일제 강점기 국내 최초 항공 비행사


옛 사람들은 하늘은 신성한 신들의 공간이고 인간에게는 간절한 염원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추앙했던 인간이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거다. 나도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항공박물관이 궁금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하늘을 날기 시작해서 지구촌 곳곳을 날아다니고 우주까지 오가게 됐다. 항공 박물관에서는 인간의 꿈이 현실이 된 전시물로 가득하다.     

  

인간이 언제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됐는지 궁금했다. 인간이 최초로 하늘에 띄운 것은 연 이었다. 연은 새가 하늘을 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바람을 이용해서 물체를 하늘 높이 띄우는 것에서 비행의 기본적인 원리를 알게 됐다.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욕망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동서양 모두 15~ 16세기를 지나면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드다빈치’가 새를 직접 해부해서 날갯짓 운동 구조를 파악했고 사람도 날갯짓 운동을 한다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항공 박물관 전관

조선 시대에도 “정평구” 라는 사람이 하늘을 나는 “비거”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포위된 소식을 외부로 전달하기 위해서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를 만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비거”는 큰 날개를 바탕으로 바람을 이용했고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고 한다. 이처럼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꿈은 “공상”에서 “기술”로 발전해 본격적으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됐다.      


본격적으로 비행하기 시작한 것은 항공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케일이다. 조지케일은 영국인으로 비행체에 작용하는 힘을, 뜨는 힘과, 앞으로 나가는 힘으로 분리하는 생각을 한 최초의 인물이다. 고정날개 형태를 디자인한 후에는 수평 꼬리 날개와 수직 꼬리 날개가 있는 간단한 글라이더를 개발한 사람이다.

삼국사기 김유신은 허수아비를 연에 매달아 띄웠다

조지케일은 추진력, 공기역할, 안정성과 구조 등 4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했고 3겹에 고정 날개 라이더인 “올드, 플라이어”에 소년을 태워서 비행하는데 성공하면서 그의 항공 이론으로 고정 날개를 가진 비행장치가 개발됐다. 당시만 해도 어마어마한 항공기술의 진보였다. 전시물 중에는 1909년 출판된 자동차 관련 전문서적인 “모토바겐”에서도 “항공기술” 내용의 책에도 라이트 형제가 고안한 첫 번째 모델의 제작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최초의 유인비행 열기구

국립항공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가면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관 접근성이 워낙 양호해서 누구나 이용하는데 불편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항공모형에 푹 빠져 자리를 뜨기가 버거울 정도다.      

항공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도전정신이 무기가 된 전시이기도 하다. 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비행기는 도전 정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신, 문물 이었지만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각국은 대포의 사정거리 확장으로 비행기를 이용하게 됐다. 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해서 전투기가 출현했고 전투기끼리 싸우는 공중전이 시작됐다.   

  

조선시대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

하늘을 향한 인간의 꿈을 위해 발명됐지만 인간을 죽이는 전쟁에 쓰인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전쟁을 계기로 각국의 비행 산업과 과학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됐다. 1차 세계 대전당시, 비행기 개발 국가들 대부분이 오늘날까지도 항공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항공과 과학의 선구자가 있다. 임시정부의 항공 독립 운동가가 대한민국의 하늘을 열었다. 임시정부 역시 일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작은 전력으로도 일본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비행대 창설을 결성한 거다. 비행기 구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당시 국방장군, “노백린”을 미국에 급파하고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설립한 윈난 육군 항공 학교에 권기옥, 이영무, 장지일, 이춘, 등 4명의 청년을 보냈다.     

항공의 개척자 비행인간 오토릴리엔탈

빼앗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이 있었기에 국내 항공 산업도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미국에 도착한 “노백린”은 현지에서 이미 조종 기술을 배우고 있는 한인 청년들이 있음에 놀랐다. 노백린은 임시정부에 연락해 미국에 비행 학교를 설립하는 것으로 방문 목적을 변경했다. 하지만 비행학교 설립에 드는 막대한 자금이 걱정이었다. 이 자금은 김종림 이라는 한인 청년에 의해서 해결됐다. 김종림은 캘리포니아에서 쌀을 재배해 판매하는 농민이었다. 1차 세계 대전당시 군량미로 유럽에 수출해 큰 부자기 됐다. 당시 김종림의 별명은 “백미대왕‘이라고 불렸다. 덕분에 1920년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학교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 학교‘가 설립됐다.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지금의 대한민국 항공기술이 발전해 왔다.     

 

한국전쟁때 쓰인 최초의  제트기 공중전

2층에도 전시실과 비행과 관련된 체험 실이 있다. 블랙 이글스 에어쇼 조종석 탑승 체험과 조종관 체험, 기내 훈련 체험, 항공 레포츠 체험까지 다양한 체험이 마련돼 있다.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이 현실이 되긴 했지만 휠체어도 하늘을 날아 자유롭게 이동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기가 지속되는 겨울. 야외활동에 제악으로 햇볕 사워가 필요하지만 겨울은 역시 겨울이다. 몸도 마음에도 광합성이 필요 할 때 정서적인 탈진이 오기 쉽다. 탈진한 정서를 회복하는 데는 겨울여행 제격이다. 여행은 바싹 마른 마음의 정서연금이다     


박물관내 장애인 화장실

-가는 길

김포공항 국내선 1건물 오른쪽으로 끼고 

5백여 미터      


-접근 가능한 화장실

박물관 내 다수.     


-접근 가능한 식당

김포공항 내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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